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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논픽션으로 그린 국가폭력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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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때로는 현실의 얘기가 소설보다 더욱 소설 같다. 미국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그랜은 신간 '플라워 문'을 펴내며 1920년대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을 고발한다. 무대는 1920년대 미국 중남부 지역이다. 미국이 대공황 직전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그때 이 지역은 유전 개발 광풍이 몰아쳤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유전을 개발한다며 쫓아내면 하릴없이 밀려났다. 하지만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 가운데 하나인 '오세이지족'에게 행운이 닥친다. 이들은 1870년대 삶의 터전이던 캔자스주에서 오클라호마주 북동부로 강제 이주됐다.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역설적이고 야만적인 이름이 붙은 이 땅은 바위투성이로 백인에게 가치가 없는 땅처럼 보였다. 수십 년이 흐르고 상황은 달라졌다. 이 땅에 엄청난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오세이지족은 채굴업자에게 엄청난 임대료를 받았다. 오세이지족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거듭났다.

백인들은 오세이지족을 가만두지 않았다. 수상쩍은 죽음이 잇달아 벌어졌지만 경찰은 무성의한 수사로 일관한다. 그렇게 죽은 인디언만 24명에 이르렀다. 모두 부유했고 한 명도 빠짐없이 인디언이었다. 경찰은 물론 검사, 판사, 정치인까지 연루되며 인디언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때 막 문을 연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특수요원 톰 화이트가 사건에 투입된다. 화이트 요원은 이미 꼬일 만큼 꼬인 사건을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작가는 철저한 고증으로 1920년대 미처 사법 시스템을 완비하지 못한 미국의 상황을 실감나게 그린다. 권력이 폭력 조직과 연계하면 어떤 비극으로 이어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 이 책은 호평받았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집단 폭력은 현대에도 유효한 문제이기도 하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논픽션이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플라워 문'은 2017년 아마존 '올해의 책' 종합 1위를 차지했고 가장 많은 매체에서 '2017년 최고의 책'으로 꼽혔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영화로 만들기로 계약해 조만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미국 유수 언론에 정기적으로 기고할 만큼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 그랜의 내공이 돋보인다. 폭력은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할 때 더욱 잔인하고 교활하게 이뤄진다. 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저항이 중요한 이유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시스템을 보유한 미국조차도 불과 100년 전 이런 모습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 책을 통해 오늘날까지 미국 사회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폭력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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