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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안희경의 일상과의 대화]성차별보다 민주주의? ‘억압의 틀 깨기’에 선후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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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샌프란시스코 북부 해안가 젠센터에서 마지막 아침수업을 마치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 일요일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수강해온 다섯 번의 생태 강의였다. 한 시간 반을 달려 해를 맞았고, 골짜기에 내려앉은 해무를 어깨에 묻히며 연결된 생명들의 부지런하고 꾸준한 일상을 몸으로 감각하던 시간이었다. 그날은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을 늦췄다. 빈 도심의 언덕길을 올랐다. 한 달 반 전에도 들렀던 건물의 건너편 언덕에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 내 마음속 체기로 얹힌 위안부 소녀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15분에 4달러나 하는 주차비에 허둥대며 일을 마치고 떠나온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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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현지시간) 브렛 캐버노의 미국 연방대법관 취임에 항의하는 한 시위자가 연방대법원 내 정의의 여신상 위에 올라 “생존자를 믿어라”라는 글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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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수증기를 죄다 말려버린 태양은 최초의 위안부 피해 증언자 강덕경 할머니의 오른쪽 어깨를 덥히고 있었다. 그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필리핀 소녀는 엄지발가락에 힘을 실어 단상의 경계 너머 세상으로 진일보하려 한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의 소녀와 양 갈래 머리를 땋아 내린 중국 소녀의 발목으로 바람이 지나갔다. 원통형 단상의 경계에 발끝을 밀어 넣은 세 소녀의 무게중심은 발뒤꿈치가 아니라 발가락이 시작되는 앞꿈치에 있다. 그들의 가슴은 활짝 젖혀졌고 서로 맞잡은 손은 이제 세상으로 뛰어내릴 순간을 알리듯 손아귀에서 내려온 힘을 손가락에 걸고 있다. 용기를 장착한 전사가 비상의 순간에 마지막 사랑을 전하듯 다섯 손가락에 힘을 모아 서로에게 인사한다. 그랬다. 그녀들은 잃어버린 시간, 아프고 처절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들을 보듬고자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남은 삶까지 내던져 거짓의 시간, 잔인한 세상을 휘저어 옳고 그름, 인간 생명의 동등한 가치를 이뤄내고자 모든 것을 던진 것이다. 강덕경 할머니가 두 손을 맞잡고 소녀들과 눈 맞춘다. 샌프란시스코 빌딩 숲 사이, 에워싼 빌딩들의 허리춤 높이로 하늘을 불러들여 깨우침의 공간을 만들어낸 낮은 건물 옥상 공원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에 쏠려 캐버노 청문회를 안일하게 ‘관전’했다

뒤늦게 성폭력 피해자 진술 영상을 보며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삶의 자세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완성되지 않는다

온 몸으로 역사의 궤도를 틀고 있는 모든 생존자를 지지한다


이곳에 오는 걸음을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었다. 사흘 전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역사적 순간에 대한 자책을 더 진하게 느끼고자 달려왔다. 9월27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대법관 브렛 캐버노에 대한 청문회가 워싱턴에서 열렸다. 종신직이기에 향후 미 연방법에 대한 최고 의결권을 행사하며 현재 쟁점이 되는 환경, 여성과 소수자 인권, 노동자의 권리, 자본의 권한에 대한 법의 잣대를 저울질하는 막강한 자리다. 브렛 캐버노는 엘리트 법관이다. 그러나 7월에 지명되자마자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다. 네 건의 ‘미투(#MeToo)’가 접수되었고, 그중 한 명이 언론에 자신을 드러냈다.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 교수다. 그녀는 36년 전 열다섯 살 때 브렛 캐버노에게 당한 성폭력을 폭로했다. 명문 조지타운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던 캐버노는 파티장에서 친구와 함께 층계를 올라가는 그녀를 방으로 끌고가 강간을 시도했다. 두 당사자는 청문회에서 상원 법사위원들의 질문을 받았다. 법정과도 같은 청문회였다. 브렛 캐버노와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이를 외호하는 공화당은 민주당이 정치 공세를 하기 위해 술수를 부린다고 방어벽을 높였다. 민주당은 약자를 짓밟은 범법자가 법의 잣대를 휘두르는 최고 권좌에 올라선다면 이는 법의 정의 자체가 무너지는 위기적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고발자인 포드는 시민으로서 도저히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침묵할 수 없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목숨을 위협받고, 가족의 안전마저 위태로움 속으로 내몰리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용기를 내야 했다고 말했다. 청문회 두 주 전, 워싱턴포스트에 포드의 인터뷰가 나가고 미 전역에서는 성폭력 고발 건수가 두 배로 뛰었다. 여성들이 다시 목소리를 드높였다. 나 또한 분노하며 남성의 권력시스템에 대한 지긋지긋한 환멸을 느꼈고, 포드를 응원했다.

청문회는 워싱턴 시간으로 오전 10시에 열렸다. 내가 있는 서부의 여성들은 아침 7시부터 아이를 등교시키면서도 딸들의 세상을 지키겠다고 스마트폰의 볼륨을 높이며 생중계에 귀를 기울였다. 뉴욕의 기차에서는 여성들의 흐느낌이 퍼졌다고 했다. 나는 그 시각 여느 때처럼 전날의 한국 뉴스를 틀어놓고 아침 일과를 준비했다. 나는 10시간은 족히 진행될 청문회를 지켜보기보단 내 할 일을 하고자 컴퓨터 모니터에 코박고 있었다. 취조와 같은 질문에 상세히 답변하는 포드의 고백을 들으며 공원을 달리던 한 여성은 무릎을 꺾고 온몸으로 울었다 한다. 열다섯 살 포드를 위하여, 8살에 비슷한 고통을 당한 자신을 위하여, 모든 희생자를 위하여. 나는 청문회가 끝나고 뉴스를 봐도 괜찮다 여겼다. 물론,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트럼프의 행보가 주춤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에 찬사를 보내던 전날의 그를 떠올리며 종전선언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데 더 마음을 기울였다. 나는 청문회를 ‘관전’하는 것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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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치된 소녀상. 최초의 증언자인 강덕경 할머니가 필리핀·중국·한국 소녀들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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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버노는 청문회에서 한 남성의 커리어를 짓밟고 한 가문의 영예를 무너뜨리는 정치적 술수에 분노한다며 포효했다. 울먹이기도 했고, 거침없이 분노를 폭발하기도 했다. 포드는 자신의 몸을 덮친 캐버노의 몸, 소리 지르려는 입을 틀어막아 숨까지 쉴 수 없게 했던 그의 손, 간신히 빠져 나와 화장실에 스스로 몸을 가두고도 들을 수밖에 없었던 두 소년의 미친듯 웃어젖히는 웃음소리를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했다. 36년 동안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던 악몽을 고통스럽게 전했다. 그녀가 처참해지는 동안, 나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적 격돌에서 부정을 저지른 자가 낙마하길 바라는 안일한 시각으로 그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저녁 무렵, 세상 돌아가는 일을 훑어보겠다는 일상적 자세로 보도를 섭렵했다. 6분 분량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았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다시 15분 영상을 찾았고, 또다시 1시간 영상을 보며 조여오는 가슴을 쥐어짰다. 들썩이는 어깨는 좀체 잦아들지 않았다. 나의 무지를 그제야 보았다. 청문회는 한 세력과 다른 한 세력의 충돌도 아니었고, 정의와 불의가 맞선 현장도 아니었다. 그날 아침부터 몰아치던 저항의 회오리는 오랜 세월 무참히 약자를 짓밟으며 쌓아올린 힘의 거탑을 무너뜨리고, 역사의 궤도를 틀어 아래로부터의 힘의 균형을 이루고자 삶을 내던지는 약자들의 항거였던 것이다. 역사적 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함께하며 깨우침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고, 역사를 밀고 나가는 저항자들과 마음을 모았어야 했다. 고통의 시간을 함께하지 않음으로써 치유의 힘이 증폭될 기회를 나 하나 빠진 만큼 가라앉도록 버려두고 말았다.

재작년 겨울 레베카 솔닛을 만났을 때였다. 그녀는 미국의 문화가 소수자들의 저항 속에서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목격해왔으며, ‘아니타 힐 사건’의 전모를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아니타 힐’이란 이름에서 잠시 멈칫거렸다. 분명 낯익은 이름인데 그 의미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중에 찾아본 다음에야 되새길 수 있었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이 보수 종신 대법관으로 흑인인 클라렌스 토머스를 임명하여 최초의 흑인 최고 권력자가 배출되는 시기, 그의 밑에서 근무했던 젊은 흑인 여성 변호사 아니타 힐이 성추행 미투를 했던 사건이다. 1991년이었다. 그때 나는 성인이었고, 봄부터 여름까지 서울 도심에 시위 물결이 강물처럼 흐르던 때 그 속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위력에 의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당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역사적 사건이 진행되는 지구 저편의 일이 우리와 맥이 닿아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단지 언론사 취직을 위한 하나의 시사상식으로 그 사건을 주목하고 기억했을 뿐이다. 세상의 억압 구조를 자본을 가진 자와 배척된 자로 이어지는 계급적 차별로 바라보던 때였다. 성차별보다 민주주의, 경제적 불평등을 다급히 여기는 나의 시선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가난한 여성, 이민자 여성, 장애 여성이 더 고통받는 시절이기에 경제적 불평등 해소가 우선이라는 시각은 쉬이 거둬지지 않았다. 교차적으로 억눌리는 성차별, 인종차별이 부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거리에서, 가정에서, 공권력의 폭력 속에서도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인식하기까지 20여년이 걸렸고, 이제 겨우 그 세밀한 억압의 틀을 해결하기 위한 선후가 없다는 것을, 삶의 자세가 바뀌지 않으면 비록 세상의 정치경제 구조가 바뀐다 한들 변화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한반도 종전을 위해 트럼프의 선전을 응원해야 하는가’라는 복잡 미묘한 심사에 놓여 있는 오늘도 세상의 억압은 취약한 자들을 향해 고통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청문회가 끝나고, 상원 전체 표결을 결정하는 다음날, 캐버노를 인준하겠다고 발표한 공화당 소속의 애리조나주 상원의원 제프 플레이크 앞을 두 여성이 가로막았다. 플레이크가 탄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집어넣고 처절히 항의했다. 두 여성 모두 성폭력 생존자다. 그중 23세 마리아 갤러거는 언론사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플레이크 의원에게 “나를 바로 보고 말해 보라. 내게 일어난 일이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고”라며 그 자리에서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갤러거의 어머니도 모르는 사실을 플레이크 의원이 먼저 알게 된 것이다. 두 저항자의 항의가 플레이크 의원을 흔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공화당 입장을 거스르며 FBI 조사를 요구했다. 표결은 일주일 뒤로 연기되었다.

FBI 보고서는 ‘완전하지 않다’는 민주당의 평가와 ‘통과 절차를 거쳤다’는 공화당의 평가로 맞섰고, 상원의원 표결 결과 48 대 50으로 10월6일(현지시간) 브렛 캐버노는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에 합류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고, 성적 억압을 끊어내겠다는 여성의 저항은 꺾이지 않았다. 상원의원들의 투표가 진행된 건물을 수천명의 시민이 에워쌌다. 그 속에서 다수의 성폭력 생존자들이 부모에게도 말 못한 치욕을 대중에게 공개하며 저항했다. 오래 머물지 못하고 경찰에게 끌려나가는 여성들 뒤로 공공기관 유리창에 붙은 메시지는 여전히 선명하게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는 모든 생존자를 믿는다(We believe all survivors).” 온몸으로 역사의 궤도를 틀고 있는 모든 생존자와 활동가를, 나 역시 믿는다.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그들을 지지한다.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어두운 역사는 생존자들이 침묵을 깨고 나와 용감하게 증언을 시작한 1990년대까지 거의 은폐되어 있었다. 이들은 성폭력을 전쟁의 전략으로 이용하는 것은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반인륜범죄에 해당한다는 세계적인 선언을 이끌어냈다. 이 여성들과 전 세계에 걸친 성폭력 및 성을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 근절 노력에 이 기림비를 바친다.”

약자는 성별 구별 없이 착취당해왔다. 근육의 힘에, 위계의 힘에 억눌렸다. 우리 땅에도 ‘최종범 성관계 동영상 협박 논란’과 진행 중인 안희정 재판이 있다.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2)레베카 솔닛 “분노는 지성과 짝 이뤄 의미있는 변화 만들 때 가치있다”

◆필자 안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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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저널리스트. 불교방송 PD 출신으로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서구의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2014), 놈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2013),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을 엮은 <문명, 그 길을 묻다>(2015) 등을 냈다. 지난해에는 경향신문에 마사 누스바움, 레베카 솔닛 등과의 대담을 기록한 <세계 여성지성과의 대화>를 연재했다.


안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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