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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1200억 짜리 낙서` 바스키아, 화려함 속에 감춰진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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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9] 장 미셸 바스키아 (화가, 1960~1988)

매일경제

바스키아의 `무제`(Untitled, 1982). 작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1200억원에 팔리며 미국인 화가 작품 중 역대 최고가 기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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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0억원짜리 낙서

2005년 베를린시는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며 서울시에 베를린장벽 일부를 기증했다. 청계천 인근을 지키던 장벽은 최근 수난을 겪었다. 자칭 그라피티 예술가라는 청년이 페인트와 래커로 장벽에 낙서를 했다. 여론은 들끓었고, 청년은 경찰에 소환됐다. 서독을 바라보던 벽엔 이 사건 이전부터 낙서와 그림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독일 통일 이전 서독 쪽 사람들이 그린 것이다. 반면 동독 쪽 벽은 그저 벽일 뿐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동독의 벽은 그 자체로 공산주의 체제의 엄혹함을 상징했다. 그라피티 예술가는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양쪽 장벽에 낙서를 했다.

그라피티는 탄생부터 오늘날까지 범죄와 예술 영역을 오가는 장르다. 건물 소유주 허락 없이 담벼락에 낙서를 하면 당장 재물손괴죄로 연행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영국 그라피티 예술가 뱅크시의 작품은 어느 정도 저항예술로 인정받으며, 경매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올해 초 뉴욕에선 건물주가 자신의 건물에 그려진 그라피티를 훼손한 죄로 675만 달러 배상 책임을 떠안았다. 이 많은 논란에도 미국인 화가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세운 주인공은 낙서 예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다. '검은 피카소'가 별명인 바스키아의 작품 '무제'는 작년 소더비 경매에서 한화로 약 1200억원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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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키아는 명성을 원했다

'흑인 거리 예술가'라는 수식어를 편견 가득 담아 추측해보면 바스키아는 저항정신 투철한 빈민가 출신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스키아의 부친은 회계사였고, 모친은 틈나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전시회를 찾을 만큼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이 중산층 가정에 금이 간 건 바스키아가 7세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부터다.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된 바스키아는 방황한다. 십대가 된 바스키아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나와 길거리 소년이 된다. 바스키아는 이 시절 만난 친구 알 디아즈와 함께 거리에 낙서를 하는 그라피티 화가로 활동한다. 이들에게 뉴욕 뒷골목은 도화지였다.

바스키아는 생전 묵묵히 명작을 만들고, 사후 거장으로 칭송된 불우한 예술가와는 다르다. 그는 하루빨리 명성을 얻고 싶어 했다. 바스키아에게 날개를 달아준 사람은 앤디 워홀이었다. 워홀은 바스키아의 재능을 알아봤다. 뉴욕 예술계 큰손이었던 앤디 워홀은 수완을 발휘해 젊은 화가의 성공을 도왔다. 스무 살 초반 바스키아는 록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돈과 천재 예술가라는 왕관을 동시에 얻었다. 당시 스타 중의 스타였던 마돈나와 열애설이 나올 만큼 유명세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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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MTV채널에 등장한 바스키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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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는 바스키아의 편이었다

강렬한 원색, 수수께끼 같은 기호, 절제와는 거리가 먼 붓놀림. 대부분의 낙서가 그렇듯 바스키아 작품은 거칠다. 원시시대 부족 토템처럼 강렬한 형상부터 시작해 배트맨, 야구선수, 자동차, 음악가, 해골 등을 자유로운 형식 안에 그려냈다. 시대는 바스키아 편이었다. 1980년대 미국 문화계 전반에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었다. 상징적인 사건은 1981년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팝송과 함께 등장한 MTV 채널이다.

MTV는 음악 케이블 방송국 개국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MTV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식과 편집으로 무장한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전위적인 뮤직비디오에 매료된 'MTV세대'는 기성세대 문법을 뒤집은 새로운 스타와 문화를 원했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라는 슈퍼스타가 탄생했다. 흑인 화가, 그라피티, 거리예술, 파격적인 형식. 기존 화가들에게 빚진 것 없어 보이는 바스키아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솟구쳤던 80년대 뉴욕이 원하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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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의 `죽음을 타고` (1988). 바스키아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렸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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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인과 죽음

바스키아 작품에서 두 개의 키워드를 꼽자면 흑인과 죽음이다. 중산층에서 태어나 일찍 성공한 바스키아지만 미국 사회에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았을 리 없다. 유년시절부터 엄마 손잡고 미술관을 찾아다녔던 바스키아는 10대 때도 학교 대신 미술관을 드나든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미술관엔 흑인이 별로 없네". 그는 찰리 파커, 지미 헨드릭스, 루이 암스트롱, 마일즈 데이비스를 그렸다. 한 분야에서 대가의 경지에 오른 흑인들이다. 바스키아는 그들의 머리 위에 왕관을 그려 존경을 표했다.

흑인 영웅만큼 바스키아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는 인체 장기와 해골이다. 죽음과 직결하는 이 이미지의 기원을 알기 위해선 바스키아의 유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바스키아는 7세 때 교통사고를 당해 비장 제거 수술을 받았다. 병원 신세를 지던 바스키아에게 엄마는 동화책 대신 '그레이 해부학' 책을 선물한다. 의대생들이 보는 이 책엔 인체 장기 도식이 가득했다. 엄마는 아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서 정확히 알기를 바랐던 것 같다. 바스키아는 이 책을 계기로 해부학 도식에 집착했고, 훗날 그림에 장기를 그렸다. 바스키아가 몸에서 떼어낸 비장은 영어로 'spleen'이다. 그는 작품 안에 종종 'spleen'이라는 단어를 새겨 넣었다.

spleen의 뜻은 영어로 '비장'이지만 불어로는 '우울'이다. spleen(비장)을 떼어낸 바스키아는 spleen(우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대 중반을 넘어선 바스키아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을까. '죽음을 타고'라는 작품에서 보듯 그의 그림은 후기로 갈수록 어둠으로 향한다. 그 시기 바스키아의 정신은 황폐해졌다. 급격히 얻은 유명세는 독이 됐다. 각종 구설과 추문 속에서 바스키아는 강박에 시달렸다. 공동 전시회 실패로 앤디 워홀과 멀어졌고, 마약 중독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1987년 갑작스럽게 워홀이 세상을 떠난다. 비록 잠시 관계가 틀어져 있었다 해도, 그에게 워홀은 단순한 멘토 이상이었다. 바스키아는 무너졌다. 워홀이 죽고 1년 후 바스키아도 약물중독으로 사망한다. 겨우 2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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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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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쾌함 속의 우울

오늘 날 바스키아 작품은 고고한 예술영역에 얽매어 있지 않다. 유니클로는 바스키아의 그림이 박힌 티셔츠를 전 세계에 팔았다. 국내 한 대기업은 '장 미셸 바스키아'라는 명칭으로 골프 의류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다. 상업성과 예술성은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바스키아 작품을 이 두 가지 속성으로 분리해 구분하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 "돈 버는 것이 예술이다"라고 말한 워홀은 바스키아를 띄우기 위해 상업적 수단을 동원했다. 오늘날에도 바스키아는 경매 최고가 역사를 갈아치우며 살아있을 때 이상의 상업적 성공과 명성을 누리고 있다. 바스키아의 성공은 자본주의와 예술의 가장 성공적인 컬래버레이션으로 꼽힌다.

다만, 여전히 사람들이 바스키아의 그림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 천재 예술가의 영화 같은 인생스토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스키아의 그림엔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의 삶과 달리 우울함(spleen)이 감돈다. 그림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칼라는 '블랙'이다. 다양한 색채로 범벅된 그림 중심엔 '검은 사람'(바스키아)이 있다. 이 사람은 종종 자신의 장기를 드러내 보여준다. 나의 내밀한 모습까지 봐달라고 말하듯이. 어떤 작품에서 이 '검은 사람'은 우울하고,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다. 여기엔 인생의 최절정에서도 죽음에 사로잡혀 있었던 한 예술가의 황량한 내면이 담겨 있는 듯하다. 어쩌면 1200억짜리 낙서에서 읽어야 할 것은 화려한 빛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경쾌함 속에 숨겨진 젊은 예술가의 우울한 초상일지도 모른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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