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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장 보고시안 "나는 불의 자유로움에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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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불의 연금술사` 장 보고시안(오른쪽)이 그의 작품 `무제` 앞에서 한지 작가 전광영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뮤지엄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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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스튜디오에 있을 때, 불이나 연기에 노출되는 가연성 물질들의 융합을 생성하는 연금술사다."

'불의 연금술사' 장 보고시안(69)이 한국에 왔다. 경기도 용인시 고기리 계곡 인근에 '한지 작가' 전광영(74)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뮤지엄그라운드' 개관전을 위해서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메니아 국가관 초대작가였던 보고시안은 특별초대전 '심연의 불꽃'을 펼친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작품과 다수의 신작을 함께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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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고기리에 개관한 `뮤지엄그라운드` 전경.


뮤지엄그라운드는 '땅(地)과 대지(大地) 미술관'이라는 뜻을 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관장은 차남인 전용운 씨가 맡았다. 미술관은 7690㎡(2300평) 용지에 지상 3층, 지하 2층 규모로 들어섰다. 옆에는 지상 4층 높이의 전광영 스튜디오도 들어섰다. 개관을 앞둔 5일 기자들에게 미술관을 공개하며 전 작가는 "젊은 작가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다채로운 전시를 선보일 것"이라며 "한국은 학연과 지연, 인맥이 없이는 버티기 힘든 곳이다. 나 또한 50대에 인정받기 전까지 외롭고 힘들게 작업했다. 이곳을 통해 기댈 곳 없는 젊은 작가들이 좋은 환경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보고시안은 시리아 알레포 출신으로 1975년 벨기에로 망명한 아르메니아 작가다. 내전의 땅에서 자란 작가는 독특한 재료를 사용한다. 불로 태워 잿더미가 된 책, 불꽃의 흔적과 그을음을 물감처럼 사용해 그린 회화 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어릴 때 나는 불을 피우고, 원을 그리며 놀았다. 인상주의에서 시작해 콜라주 등 다양한 작업을 해봤지만 캔버스를 벗어나는 자유로움에 매료돼 불을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는 국적만 3개다. 시리아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교육을 받았고, 부모님은 아르메니아에 사셨다. 불이라는 것은 뭔가를 태우지만 파괴의 의미만 있지 않다. 불타고 사라지고 나면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다. 나의 나라들은 전쟁과 파괴를 경험했지만 그 기억과 역사를 다시 끄집어내는 게 내 작업이다."

모든 연구와 작업은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돼 있다고도 했다. 그는 "내 정체성은 조용히 스며들어서 작업에 드러난다. 나를 벨기에 작가나 아르메니아 작가라고 구분 짓는 건 어려운 일 같다"고 했다.

아시아 국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여러 점 보였다. 나무에 여러 나라의 글자를 새기고 이를 다시 불로 태운 대형 설치 작품에는 한국어, 일본어도 보였다. 그는 의미가 없는 글자를 새겨넣고 이를 다시 불로 조각했다고 설명했다. 부채 모양으로 펼쳐진 종이에 그려진 작품도 있었다.

그을음으로 그림을 그린 '연기 시리즈' 중에는 뾰족하게 솟은 평양의 유경호텔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그는 "평양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북한 하면 떠올리게 되는 미사일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불꽃과 그을음을 도구로 사용하는 고충도 많다. 그을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기 위해 그는 유화에 작업하는 것처럼 바니시를 사중으로 바른다. 그는 "불의 우연에 기대는 작업이라 예측하지 못한 표현이 될 때도 있다. 지금은 숙련이 됐지만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나를 압도하고 넘어서는 불을 장악해야 한다는 점은 매력이 있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지 작가'와 '불의 작가'는 어떤 인연으로 전시를 함께 열게 됐을까. 보고시안은 예술가를 후원하는 보고시안 재단 회장이자 세계적인 컬렉터이기도 하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열린 단색화 전시를 보고시안 재단이 후원하면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이 인연으로 보고시안 재단이 운영하는 벨기에 미술관인 빌라앙팡에서 전광영 개인전이 열렸고,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전시를 전광영이 찾으면서 초대전까지 열게 됐다. 전시는 내년 3월 24일까지.

[용인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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