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종전선언 시 영변 핵시설 폐기 거론
남북 정상은 이번 회담의 최대 관심사인 비핵화 의제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진전된 결과물을 내놓았다. 양 정상은 9월 평양공동선언 5항에서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명시했다. 이 같은 남북 정상의 비핵화 의지 피력은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만 확인한 4ㆍ27 판문점 선언의 원론적 합의보다 진전된 것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공동기자회견에서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천명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남북 정상이 비핵화 이슈를 정상회담 의제로 올려 실천적 방안에 합의한 것은 성과라 할 수 있다.북한이 유관국 참관하에 동창리 미사일 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겠다고 한 약속은 비핵화 과정의 최대 난제라 할 수 있는 검증을 수용하겠다는 취지여서 의미가 크다. 김 위원장은 공동선언에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내걸고 그 조건으로 미국에 종전선언 등의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합의에 대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 비핵화 협상 중재 역할 막중해져
비어 있던 비핵화 합의란을 채운 성과물은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을 되살리려는 김 위원장의 의지와 북미대화 촉진에 주력하는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이 합쳐진 결과다. 남북 정상은 70분간 진행한 회담에서 현 단계에선 공개할 수 없는 내용들도 다룬 것으로 보인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양 정상이 “(비핵화와 관련해) 공동선언 외에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말해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전할 모종의 제안이 있음을 시사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이제 남은 일은 남북 정상이 이끌어낸 성과물을 북미 비핵화 협상으로 연결시키는 일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된 김 위원장의 제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후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이 핵사찰(Nuclear inspections)을 허용하는데 합의했다. 흥미롭다”는, 다소 애매한 반응을 남겼다. 그러나 남북 정상이 신뢰를 기반으로 북미 협상의 교착 상태를 풀 카드를 확보한 것은 분명한 변화다. 그만큼 문 대통령이 다음 주 뉴욕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중재를 성공시켜야 하는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대북 제재 상관없는 남북교류사업 속도 내야
9월 평양공동선언은 경제ㆍ사회ㆍ문화 분야에서 남북 간 다양한 교류협력 사업을 담고 있다. 경제협력 분야에서는 서해선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연내 착공식, 조건에 맞춘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정상화,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특구 조성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대북 제재로 인해 본격적인 경제협력 추진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신규 사업보다는 판문점 선언에서 제시한 사업을 점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정부는 한계가 분명한 남북경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산 석탄 수입 파동 때처럼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이 불거지지 않도록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키로 한 남북 합의는 정부 예고대로다.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개최 및 내년 3ㆍ1운동 100주년 행사 공동기념 합의로 폭넓은 남북교류사업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남북은 북한 비핵화나 대북제재와 상관없는 교류협력 사업에는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김정은 서울 방문, 성사되면 남북관계 도약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합의도 큰 성과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진전에 따라 성사 여부가 유동적이지만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이 이뤄지면 남북 정상 간 회동 정례화를 넘어 남북관계는 한층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방북 마지막 날 김 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을 동반 방문하는 일정도 과거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만큼 양 정상이 3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가 돈독해졌다는 의미로, 한반도 평화ㆍ번영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달리 비핵화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국은 비핵화 속도를 추월하는 남북관계를 경계하고 있다. 매사 한미동맹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김 위원장의 의지를 부풀려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의 고개를 순탄히 넘어야 북미 정상회담의 비핵화 담판 가능성이 겨우 열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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