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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fn 이사람]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신청자 사진작가 베레켓 "사진작가 꿈 키워준 한국, 늘 잊지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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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서 한국으로 망명 '얼음' 소재로한 사진전 열어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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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 겪었던, 그리고 가장 혹독했던 한국의 겨울. 그때가 그가 맞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와는 아무 공통점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이곳에서 자신과 닮은 어떤 것을 찾아내면서다. 바로 얼음이다.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신청자인 베레켓 알레마예후씨(40·사진)는 "얼음은 이곳에 왔다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을 떠난다. 그 점이 꼭 나와 닮았다"고 말했다.

그가 이달 11일부터 약 2주간 경기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논밭예술학교에서 개최하는 사진 전시회에 걸리는 작품 대부분이 얼음을 품고 있다. 전시회 이름은 '망명패턴'이다.

그가 정권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지난 2014년 한국으로 망명해 두 번째 겨울을 맞았을 때다. 당시 베레켓씨는 경기 고양 한 마을에서 머물다 무심코 마당의 대야 속 꽁꽁 언 얼음을 들여다봤다. 그러기만 몇 시간째. 얼음이 햇빛에 녹는 동안 여러 무늬를 드러냈다.

베레켓씨는 "얼음이 기온과 날씨에 따라 각각 다른 무늬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며 "얼음에 흥미를 갖게 된 후로 한국에서의 내 삶은 실험과 도전으로 가득 찼다"고 전했다.

생애 처음 보는 산 속 고드름과 계곡을 뒤덮은 살얼음은 그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베레켓씨는 "새벽에 바깥에 두고 얼린 대야 속 얼음을 꺼내 매일같이 나무와 하늘, 계곡 등에 올려놓고 사진을 수천장 찍었다"고 떠올렸다. 그가 직접 파이프나 대야를 이용해 얼린 얼음을 직접 조각하기도 하고 여러 개 쌓아 올려보는 등 여러 실험을 통해 나온 사진들이 이번 전시회에 걸릴 예정이다.

베레켓씨는 "에티오피아에서 NGO활동을 할 때 손바닥만 한 카메라로 단체사진 정도만 찍어오던 내가 사진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며 "모르고 있던 재능을 한국에서 발견하면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웃었다.

그러다 난민 동료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이내 낯빛이 어두워졌다. 베레켓씨는 "주변에 있는 난민 신청자 대부분은 강도가 높고 위험한 노동에 임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입을 열었다. 그 역시도 한국에 온 첫 해엔 공장과 주방을 전전했던 터다. 한 원목가구 공장에서 일했을 때는 화상을 입어 온 손바닥에 크고 작은 물집 수십개가 잡혀 손을 쓰기 어려울 지경에 이른 적도 있다.

그는 "다른 난민들도 이 곳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찾고 능력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 기회를 잡고 능력을 펼쳐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에 햇빛이 드는 그날 그는 이곳을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베레켓씨는 "다음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면 고국으로 돌아가 다시 국제회의 등에도 참석하고 싶다"며 "사진작가로서 꿈을 키워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한국인들을 마음에 품어갈 것"이라 전했다.

kua@fnnews.com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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