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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불황일때 기업은 까다로운 취업스펙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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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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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206] 통계청장은 통상적인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고, 새로운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는 고용노동 전문가로 정해졌다. 출발점은 지난 7월 발표된 취업자 수 통계였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8년 7월 고용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7월 취업자는 2708만3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0명 늘었다.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따진 취업자 수 증가 폭이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10년 1월 마이너스 1만명을 기록한 후 8년6개월 만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역대 최악의 고용지표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채용 공고는 인터넷상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실업자가 많지만 주인을 찾지 못한 빈 일자리도 같이 공존하고 있다. 청년과 4050세대를 가리지 않고 원활한 취업을 위한 '취업스펙'이 절실한 상황이다.

경기 상황과 '취업스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 걸까. 최근 얼리샤 새서 모데스티노(Alicia Sasser Modestino) 노스이스턴대 공공정책 및 도시문제 스쿨 부교수와 대니얼 쇼그(Daniel Shoag) 하버드 대 케네디스쿨 부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디지털판에 쓴 기고를 통해 경기 상황과 '취업스펙' 간 상관관계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불황일수록 고용주는 더 까다로운 '취업스펙'을 요구한다. 그들은 당신이 사장이든지 구직자든지 실시간 노동시장 데이터에 주목해서 노동시장의 변화하는 요구 조건에 빠르게 대응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취업스펙'의 경제학…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은 실업률과 미충원률 관계를 보여주는 '베버리지 곡선'

미국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대공황 이후 왜 실업률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고통스럽게 유지됐는지, 대공황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까지 5년이나 걸린 이유는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고민하고 있다. 모데스티노 교수와 쇼그 교수는 연구를 통해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숙련 근로자가 넘쳐나던 경기 침체기에 고용주가 '취업스펙'을 강화했기 때문에 고용시장이 회복한 뒤 빈 일자리를 채우기 더 어려워진다는 가설이다. 그 이후 일부 고용주는 빈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교육과 경력 요구 사항 등 '취업스펙'을 완화한다.

대개 실업률과 미충원율 간에 안정적인 상충관계가 존재한다. 이는 '베버리지 곡선'으로 알려져 있다. 침체기에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미충원율이 낮아진다. 회복기에는 그 반대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미국은 2009년 이후 고용주들이 미충원율이 높다고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결국 2017년 말 무렵에는 '베버리지 곡선' 자체가 기존보다 바깥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경제학자들은 최근 이 같은 베버리지 곡선의 이동이 '채용 강도(recruiting intensity)'가 줄어서 생긴 게 아니냐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채용 강도는 고용주가 일자리 공백을 채우는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가리키는 용어다. 고용광고 지출, 심사 방법, 고용 기준, 보상 변화 등을 포함한다. 채용 강도를 낮추면 빈 일자리를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주어진 수준의 실업률에 비해 더 많이 미충원된 일자리와 더 많은 신규 채용 공고 비중을 목격하게 된다. 채용 강도의 완화가 베버리지 곡선을 바깥쪽으로 이동시킨다.

이들이 연구에서 조사한 건 채용 동기의 가장 중요한 차원 중 하나이자 고용주가 후보자 심사에 쓰는 '취업스펙' 중 하나인 학위였다. 경기 침체기 동안 2013년 미국 '커리어빌더' 조사에 따르면 고용주의 약 3분의 1은 '취업스펙'에 대한 요구가 증가했고, 구체적으로 고졸 근로자들이 일하던 직책에 대졸자를 채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버닝 글래스 테크놀로지'의 새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해 2007~2014년 사이 모든 미국 산업에서 게시한 8300만건의 온라인 채용 정보를 살핀 결과, 모데스티노 교수와 쇼그 교수는 고급 '취업스펙' 요구에 대한 증거를 발견했다. 2007~2010년간 임금 상위권 패널에선 학사 학위 이상을 요구하는 채용 공고물 비율이 10% 이상 증가한 뒤 노동시장 회복기에 감소했다. 중간 패널에선 침체기에 5년 이상 경력이 필요한 게시물 점유율이 약 7% 상승한 뒤 노동시장 회복과 함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스펙'이 강화되는 지역에서는 실업률이 더욱 극적으로 상승한 지역이었다. 실업률이 낮아지는 기간에는 실업률이 더 크게 떨어지는 지역에서 '취업스펙'도 더 많이 완화됐다. 어느 한 직종의 국가적인 실업률이 1% 늘어나면, 학사 학위를 요구하는 고용주 비율이 0.6 % 증가하고 4년 또는 그 이상을 필요로 하는 고용주 비율이 0.8 % 증가한다고 조사됐다. 흥미롭게도 일반적으로 직무에서 배울 수 있는 경영지원, 총무 등 기본 기술은 종종 전문적인 교육이나 훈련이 더 필요한 전문기술이나 소프트웨어 기술에 비해 경기 회복기에 '취업스펙'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취업스펙'의 변화를 설명하다

왜 고용주들은 경기 침체기에 '취업스펙'을 강화하고, 경기 회복기에는 '취업스펙'을 완화할까. 일반적으로 대졸 근로자는 고졸 이하 근로자에 비해 약 60%의 임금 프리미엄을 받지만, 경기 침체기에는 대졸 근로자 임금 프리미엄이 하락한다. 고용주들은 숙련, 고급 근로자의 프리미엄이 낮아진 기회를 활용한다고 보여진다. 즉, 구직자가 많을 때는 어느 한 최고경영자(CEO)가 말한 것처럼 "경기 침체는 최고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불경기 때 '취업스펙'을 강화하면, 이전보다 저렴하면서도 더욱 숙련되고 고급 스킬을 갖춘 근로자를 뽑을 수 있다.

또 다른 견해로는 경기 침체 시 '취업스펙'을 강화하는 흐름이 기술 또는 아웃소싱 변화에 따라 주도됐다는 주장이 있다. 아웃소싱과 같은 구조적인 변화는 경기 침체 시 가속화할 수 있고, 요구되는 '취업스펙'에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모데스티노 교수와 쇼그 교수는 노동 숙련도 프리미엄 가설과 구조적인 변화 가설을 구분하기 위해 자동화 같은 구조적인 변화나 경기순환 주기와 무관한 사례를 연구했다. 우선 2009~2012년 사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병력의 감축으로 매년 20만~30만명의 참전용사들이 미국 신규 노동인구로 진입한 경우다. 숙련도 가설은 이 경우에 적용돼 법률집행관, 항공기 기술자 등 특정 직군에서 많은 수의 퇴역 군인을 채용하면 '취업스펙'이 크게 강화되는 점을 발견했다.

둘째는 셰일가스 산업에서 일어난 붐이다. 2007~2011년 사이 대형 셰일가스 유전을 발견해 생산량이 27% 늘어났을 때, 셰일가스 채굴 산업에선 고용과 임금이 증가했다. 이는 농업, 임업, 광산업, 제조업 등 다른 산업에서 근로자들이 이탈해 나오도록 유도했다. 다른 산업들은 예기치 못한 구인난이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반응으로 '취업스펙'을 완화하는 경쟁을 벌였다.

모데스티노 교수와 쇼그 교수가 내린 결론은 고용주들이 전략적으로 행동한 결과, 숙련 고급 노동자가 많을 때, 이들은 더 많이 숙련된 노동자로 일자리를 채우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은 이런 경기순환을 염두에 두고 설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은 근로자들의 스킬셋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 실시간 노동 시장 데이터를 활용하면 고용주와 근로자 양쪽 모두 신속하게 대응하며 향후 벌어질 경기순환의 결과가 미칠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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