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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설정스님 전격사퇴… 조계종 시계 1년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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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임 인준 원로회의 전날 회견

퇴진 압박을 받아온 대한불교조계종 설정 총무원장이 21일 전격 사퇴했다. 설정 총무원장은 이날 오후 1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산중(山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중앙종회에서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돼 22일 원로회의의 인준을 하루 앞둔 상황이었다.

이날 설정 총무원장이 사퇴함에 따라 조계종 사태는 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조계종은 이제 차기 총무원장 선출이라는 새로운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현재 조계종 종헌종법은 총무원장 궐위 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하도록 돼 있다. 이 일정에 따르면 제36대 총무원장 선거는 10월 19일 이전에 치러야 한다. 지난해 10월 총무원장 선거 이후 꼭 1년 만에 다시 조계종은 선거전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조선일보

조계종 설정 총무원장이 21일 오후 전격 사퇴를 선언한 후 조계사 대웅전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설정 총무원장의 사퇴로 조계종은 1년 만에 새 총무원장을 뽑는 선거 체제로 들어가게 됐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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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은 이날 설정 총무원장이 떠난 직후 바로 권한대행인 총무부장 진우 스님을 중심으로 종무회의를 열었다. 회의 후 발표한 특별담화문에서 진우 스님은 "한국 불교의 명운이 풍전등화에 놓여있다는 위기감으로 승가 공동체 정신과 불교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차기 총무원장 선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조계종 제도권과 재야 세력의 갈등 때문이다. 양측이 격돌하는 가장 큰 쟁점은 총무원장 선거제도다. 현행 총무원장 선거는 321명의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間選制)다.

중앙종회와 교구본사주지협의회 등 조계종 제도권은 '종헌종법 질서에 따른 선거'를 추진하고 있다. 종정 진제 스님도 이 같은 취지의 교시를 발표한 바 있다. 반면 그동안 설정 총무원장 퇴진을 요구하며 장외 투쟁을 벌여온 '불교개혁행동' 등 조계종 재야 세력은 '주류 세력 교체'를 주장한다. 이들은 현재의 중앙종회와 교구본사주지협의회 등 제도권 기구는 모두 기득권 적폐 세력이라고 본다. 현재의 간선제로 총무원장 선거를 치르면 기득권이 재집권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중앙종회를 해산하고 비상기구를 통해 총무원장 직선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측 모두 차기 종권(宗權)을 겨냥한 힘겨루기를 벌이는 양상이다.

26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리는 2건의 대형 집회는 조계종 사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제도권이 추진하는 '교권 수호 결의대회'는 오전 11시, 재야 세력이 준비하는 '전국승려대회'는 오후 2시로 예정돼 사실상 시간이 겹친다. 당초 23일 승려대회를 열려던 재야 세력이 태풍을 이유로 행사를 연기하자 제도권도 이를 저지하기 위해 결의대회를 같은 날 열기로 했다. 양측 모두 대규모 인원 참석을 예고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 우려도 제기된다.

혼돈이 이어지는 가운데 조계종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허위 학력, 재산·사생활 문제로 결국 낙마한 설정 총무원장의 사례를 거울삼아 향후 총무원장 등 주요 보직 스님들에 대한 검증은 더욱 철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계종의 한 중진 스님은 "종단 행정을 맡는 사판(事判)은 수행을 지원하는 게 본래 역할인데 종단이 세속화되면서 사판이 비대화되며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이 최근 사태의 진짜 원인"이라며 "단순히 차기 종권을 누가 잡느냐가 아니라 불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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