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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정여울의 라틴아메리카 기행](11)‘사막에 가닿는 일만으로도 축복’이라던 생텍쥐페리의 주문은 유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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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 라인의 신비를 품은 도시, 나스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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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조종사로 살아가는 자신을 ‘하늘을 경작하는 농부’라는 아름다운 표현으로 예찬했던 생텍쥐페리.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던 시절, 그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나 사막 위로 활공하는 몸짓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한 번 그 비행의 맛을 경험한 사람은 절대로 그 행복을 포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인간의 대지>에서 이제 정복되지 않은 사막은 없다며 탄식했다. 인간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새로운 항로가 개척될 때마다, 사막은 박제된 동물처럼 제 고유한 빛을 잃어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막의 마법을 먹고사는 이야기꾼이었다. 이전에는 미지의 땅이었던 사막이 점점 과학적으로 측량되고 지도 위에 정확하게 표시될 때마다 그가 꿈꾸던 사막의 신비는 사라져갔다. 그는 사하라 사막에서 조난당했다가 기적처럼 생환한 자신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수없이 다채로운 ‘사막의 마법 같은 스토리’를 알고 있었지만, 점점 그 신비와 낭만이 위협당하는 것을 느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생텍쥐페리 같은 로맨티스트에겐 낭만의 거처였지만, 자본가들에겐 석유를 팔아서 부자가 되려는 욕망을 실현하는 세속적인 장소였으니 말이다.

과연 이 세상 모든 사막은 과학과 자본의 이름으로 파헤쳐져 그 신비와 낭만을 몽땅 잃어버렸을까. 이 의문에 기분 좋게 ‘아닐걸요!’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가슴 설레는 기사를 얼마 전에 접하고 나는 환호작약했다. 인류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나스카 라인’의 지형도를 바꿀 새로운 지상화들이 무려 50여점이나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새로운 나스카 라인의 발견이 최첨단 드론의 활약에 크게 힘입었다고 전했고, 이 중 일부 지상화들은 기존의 ‘가장 오래된 나스카 지상화’로 판명된 것들보다 수백년이나 더 빨리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 의견도 함께 실었다. 나스카 라인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고대인의 신에 대한 경배를 표현하는 그림이라는 설, 나스카인이 천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 심지어 외계인이 우주선을 착륙시키기 위한 징표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진정한 해답이 되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자들이 수십년째 연구하고 있는 ‘나스카 라인의 퍼즐’이 이제 새로운 지상화의 발견으로 인해 더욱 거대한 물음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겨우 몇 달 전에 ‘나스카 라인이 1994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다니, 너무 늦은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으며 다녀왔던 바로 그곳에서 또 새로운 지상화가 발견되었다니, 더욱 가슴이 두근거렸다. 해결되지 않은 신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아직 질문 자체가 제대로 던져지지 않은 자연의 미스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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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콘도르, 벌새, 거미, 펠리컨, 사람, 강아지, 꽃, 나무 등 다채로운 문양으로 굽이치는 나스카 문양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은 경비행기를 탄다. 높은 지대에 올라가면 부분적으로는 관측이 가능하지만, 거대한 나스카 라인의 전체적인 면모를 보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좋다. 나스카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경비행기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모두 몸무게를 재겠습니다!’라는 안내말이 들렸다. 승객을 태웠을 때의 경비행기 총중량을 예측해 무게 제한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무게를 오랜만에 측정해 본 사람들이 저마다 ‘앗!’ 하는 탄식을 내뱉으며 술렁거리자 페루 현지 가이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순간, ‘과연 이 의미도 알 수 없는 지상화를 보기 위해 이렇게 무서운 기계에 탑승해야 하는 건가’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후회는 잠시뿐, 이윽고 온갖 기하학적 문양과 동식물의 모양으로 굽이치는 나스카 지상화의 대향연이 펼쳐지자 투덜거림은 금세 잦아들었다.

정확한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나스카 지상화는 숨 막히게 경이로웠다. 누군가가 두 손을 꽃다발처럼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장면, 벌새가 날개를 환하게 펼치며 날아오르는 장면, 원숭이가 꼬리를 귀엽게 오므린 채 빤히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으면 어떠랴. 보는 것만으로도 직관적으로, 그 그림을 그린 이들의 따스한 마음씨가 전해지는데. 이성과 논리를 뛰어넘는 장엄함과 숭고함이 경비행기의 그 시끄러운 굉음 속에서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조종사는 띄엄띄엄 한국어를 써가며 10여개의 대표적인 나스카 문양들을 소개해주었다. 조종사가 “오른쪽, 원숭이!”라고 외치면 곧 비행기 오른쪽 라인에서 놀랍도록 선명하게 꿈틀거리는 듯한 원숭이가 보였고, “왼쪽, 삼각형!” 하면 왼쪽 라인에서 거대한 삼각형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오른쪽, 왼쪽으로 출렁거리며, 심한 뱃멀미 같은 울렁거림을 느끼면서도 매번 탄성을 지르며 고대인의 예술적 감각에 경의를 표했다.

‘이제 정복되지 않은 사막은 없다’

이야기꾼 생텍쥐페리는 탄식했다

과연 신비를 몽땅 잃어버렸을까

새로운 ‘나스카 라인’이 발견됐고

경비행기에서 본 나스카 문양은

숨 막히게 경이로웠다

의미를 알 수 없으면 어떠랴

태고의 인류는 우리에게 손짓하며

아우성을 보내고 있었다

‘당신과 언젠가는 연결되기 위해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신항로를 개척한 자신의 세대들이야말로 진정한 행운아임을 강조했다. “우리는 사막의 마법을 먹고살았다. 하지만 오늘날 다른 이들이라면 거기서 석유 우물을 파고 그것을 팔아서 부자가 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와도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왜냐하면 금지된 종려나무 숲이나 사람의 손이 닿은 적 없는 조개껍데기 가루가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이미 우리에게 건네주었으니까. 그것들은 오직 열정의 한때만을 건네주는데, 그때를 경험한 이가 바로 우리들이니까.” 하지만 나스카 사막의 기적 같은 지상화의 축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은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여전히 다 보여주지 않은 것만 같았다. 이렇게 파내고 또 파내도 새로운 것들이 나오는데, 이렇게 연구하고 또 연구해도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하는데, 어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며 탄식할 시간이 있겠는가. 다만 온 마음을 향해 사막에 가닿는 일만으로도 위대한 축복이라고 믿었던 생텍쥐페리의 주문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았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나스카까지 험한 여정을 뚫고 오직 ‘나스카 라인’ 하나를 보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않는 여행자들의 노고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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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아메리칸 고속도로를 따라 버스로 쉬지 않고 달려도 리마에서 나스카까지는 여섯 시간이 넘게 걸린다. 나는 나스카 도심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이튿날 경비행기를 탔는데도 엄청난 피곤이 몰려오며 심한 멀미 증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 머나먼 길을 뚫고 달려왔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눈을 부릅뜨고 지상화의 풍경에 집중하려 애썼다. 나스카 사막 위에는 무려 300㎞가 넘는 거리에 걸쳐 선사시대의 지상화들이 펼쳐져 있었다. 잉카문명이 탄생하기 훨씬 전에 나스카의 원주민들이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일구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나스카의 건조한 기후 덕분에 이 거대한 지상화들은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사막 표면의 자갈들을 하나하나 걷어내고, 그 밑의 흙이 드러나도록 하는 공법으로 제작된 지상화들이기에, 온갖 기후변화에도 끄떡없이 이 아름다운 지상화들이 보존될 수 있었다. 연평균 강수량이 워낙 적기 때문에 나스카 지상화들은 비바람의 풍화작용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인간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사막지형이어서 나스카 문양이 더 잘 보존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도로 확장공사 때문에 나스카 문양이 중간에서 뚝 잘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나는 눈앞에서 인류의 기적을 바라보면서도 그 장엄함이 믿기지 않아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이카 사막과 나스카 사막, 두 개의 사막을 본 것만으로도 나의 첫 번째 페루 기행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이카 사막이 마치 테마파크처럼 엔터테인먼트의 장소로 탈바꿈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나스카 사막은 훨씬 야생적이고 길들여지지 않은 원시적 매력이 느껴져서 좋았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황량한 사막의 이미지에는 이카 사막이 더욱 가까웠지만, 사막에서 길을 잃고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을 주는 <인간의 대지> 속 생텍쥐페리의 모습은 나스카 사막에 더욱 어울린다. 모래와 별 사이에서 빈 몸으로 정처 없이 헤매면서도, 자신이 축복받은 존재라고 느꼈던 생텍쥐페리의 ‘사막애(愛)’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기서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단지 모래와 별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 숨을 쉰다는 아늑함만을 의식하고 있는 덧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 그런데도 나는 나 자신이 꿈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았다.” 그 소통의 ‘의미’를 알 수 없을지라도, 소통이라는 행위 자체가 단지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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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스카 지상화를 통해 선사시대의 인류가 현대인에게 신비로운 상형문자로 이뤄진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지상화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인류 역사의 커다란 공백을, 그 자체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나스카 지상화를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선사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풀지 못한 인류의 수수께끼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스카 문양을 통해 태고의 인류는 우리에게 손짓하며 아우성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 우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들과 함께 이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옛날 옛적에, 우리는 당신들처럼 이 땅에서 살고, 사랑하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당신들과 언젠가는 소통하기 위해, 바로 당신과 언젠가는 연결되기 위해, 우리는 분명 이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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