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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미·중 무역전쟁 40일 … 전세 불리한 중국, 보복카드 꺼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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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월 선전 포고, 7월 6일 개전

미국 주가 7% 뛸 때 중국 15% 하락

경제 구조·시점 불리한 중국 열세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싸움”

# 미국산 대두 7만t, 약 2000만 달러(약 227억원)어치를 실은 화물선 ‘피크 페가수스’ 호는 지난달 6일 중국 다롄항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중국 세관이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전 항구에 도착하기 위해서다. 관세를 맞으면 600만 달러(약 68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달려라, 피크 페가수스’ 같은 응원 메시지가 등장했다. 하지만 배는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고, 비용 증가를 우려한 화주의 선택으로 인근 바다를 떠돌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전했다.

#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태양광 패널용 실리콘 생산업체 REC실리콘은 최근 직원 100명을 해고했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 원료인 중국산 폴리실리콘에 대해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서 생산량이 25% 줄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경제전문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 갈등으로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시작된 지 14일로 40일째다. 전쟁은 양국 기업과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미국은 7월 6일(현지시간) 0시를 기해 중국산 산업 부품·기계·화학제품 등 818개 품목 340억 달러(약 38조원)어치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선제공격을 날렸다.

중국은 즉각 응전했다. 미국산 대두·육류 등 517개 품목에 보복관세를 매겼다. 미국과 똑같은 금액, 똑같은 관세율을 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22일 중국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했다. 백악관에서 ‘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사상 초유의 G2(주요 2개국) 간 관세 전쟁 초반 전세는 미국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주요 경제 지표 가운데 미국이 앞선 것이 많다.

우선, 증권 시장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3월 22일 2643.69에서 지난 10일 2833.28로 7.17% 올랐다. 반면 중국 상하이와 선전 우량주를 모은 CSI 300지수는 같은 기간 4020.35에서 3405.02로 15.3% 떨어졌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무역전쟁 시작 후 가파르게 떨어졌다. 위안화 가치는 미 달러당 6.33위안(3월 22일)에서 6.84위안(8월 10일)으로 8.06% 급락했다.

양국이 지난달 발표한 2분기 경제 성장률도 미국의 판정승으로 볼 수 있다. 중국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에 그쳤다. 올 1분기(6.8%), 지난해 2분기(6.9%)보다 소폭 둔화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2분기 경제성장률이 2014년 이후 최고인 4.1%였다. 올해 전체 성장률도 3%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 성적표’가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에 대한 확신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4일 트위터를 통해 “어느 누가 예상한 것보다 관세가 훨씬 잘 작동하고 있다. 중국 (주식) 시장은 지난 4개월 동안 27% 떨어졌지만, 우리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주장했다.

숫자는 틀렸지만 큰 흐름은 맞는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무역전쟁 파장을 분석한 기사에서 “최소한 자신감에서는 미국이 우위를 잡았다”고 전했다.

미국이 자신감을 키우는 사이 중국에서는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0일 ‘중국은 트럼프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무역전쟁으로 인한 더 이상의 손해를 막아야 한다’는 제목의 외부 기고를 실었다.

칼럼은 “무역전쟁에서 강경 대응으로 일관한 중국 전략은 분명히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선언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겠지만, 단기 손실이 때로는 장기 이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 구조와 시점에서 중국에 불리한 면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품 규모는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품보다 훨씬 적다. 약 3분의 1수준이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액은 5055억 달러(약 573조원), 미국의 대중 수출액은 1539억 달러(약 174조원)였다. 미국이 지금까지 고율 관세를 부과했거나 예고한 중국산 상품은 모두 2500억 달러(약 283조원) 규모다.

중국이 관세 부과를 실행했거나 예고한 미국산 상품은 1100억 달러(약 124조원)어치에 그친다. 표적 자체가 적다.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중국의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방식의 대등한 보복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셈이다.

중국이 ‘부채와의 전쟁’을 벌이는 시점도 불리하다. 경제 성장 둔화와 무역전쟁에 대처하기 위해 부채 감축 정책 기조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으나, 섣불리 돈을 풀었다가는 지금까지 쌓은 ‘디레버리징’ 정책 효과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반면 미국은 사상 최저 수준 실업률 등 경기 호황이다.

보복 관세 부과 여력이 없는 중국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마지막 패는 비관세 무역 장벽이다. 미국 기업에 대한 인·허가 및 승인 지연, 불매 운동이 대표적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기업 퀄컴의 네덜란드 반도체회사 NXP 인수를 승인하지 않아 퀄컴이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상하이에 전기차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인 테슬라, 중국에서 큰 이익을 내는 애플·스타벅스 등을 ‘인질’로 잡을 수 있다. 앞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와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갈등 때 한국·일본 기업에 보복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관세와 달리 즉각적인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중국은 무역의존도를 줄이고 내수 시장을 키워 무역전쟁을 극복하겠다는 전략도 추진 중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결말은 누구의 승리도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메리 러블리 시러큐스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의 60%는 중국 내 외국인 소유 공장에서 생산된다”며 “미국 정부가 매기는 관세 또한 대부분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이 내고 피해도 이들이 안게 된다”고 주장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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