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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DJ 비자금 뒷조사’ 이현동 전 국세청장 1심 무죄..검찰 “도저히 수긍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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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안보를 위해 써야할 국가정보원 예산을 엉뚱하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 뒷조사에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현동 전 국세청장(62)에게 법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국정원이 김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 의혹을 폭로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이 전 청장은 몰랐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판결에 대해 이 전 청장 측은 “사필귀정”이라고 했고, 검찰은 반발하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조의연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청장에게 8일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월 구속된 이 전 청장은 이날 석방됐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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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청장은 대북 공작 등 국가안보 목적으로 써야할 국정원 예산 5억3500만원과 5만달러를 2010년 5월~2012년 3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공모해 김 전 대통령 해외 비자금을 추적하는 일명 ‘데이비슨 사업’을 수행하는 국세청 해외 정보원에게 지급해 국고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이 전 청장은 2011년 9월 원 전 원장 지시를 받은 김승연 전 국정원 대북공작국장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현금 1억2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았다. 이 전 청장은 2008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거쳐 이듬해 국세청 차장, 2010년 국세청장에 오르는 등 이명박 정부 시절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전 청장이 원 전 원장과 공모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데이비슨 사업을 정당한 업무의 일환으로 생각했지 정치적 의도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국고 손실의 고의가 없었다는 이 전 청장 측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재판부는 “데이비슨 사업에 대해 원 전 원장과 이 전 청장이 구체적인 대화를 했다거나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알려준 증거가 없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 해외 비자금 의혹은 출처가 불분명하고 풍문 수준에 불과해 이를 뒷조사한 것은 국정원 직무라고 할 수 없다는 검찰 주장은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전 청장이) 원 전 원장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은 할 수 있었겠지만 의심만으로 해외 비자금 추적활동이 국정원 직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며 “국정원장은 국정원법상 다른 기관장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고 기관장은 이를 거부하기도 힘들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해외 정보원에게 돈을 전달한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국정원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했다”면서도 “전직 대통령이라도 탈세 혐의가 있다면 조사하는 게 맞다”고 모순된 증언을 해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1억2000만원 수수와 관련해서도 원 전 원장, 김 전 국장, 박 전 차장 등의 진술을 모두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국장이 국세청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는 날짜의 동선을 보면 짧은 시간 동안 양재동∼수송동을 오가며 비자금 추적사업을 설명하고 자금을 건네주기에는 빠듯하다”고 밝혔다.

판결 선고 직후 이 전 청장 측 변호인은 취재진에게 “사필귀정”이라며 “진실을 밝혀주신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반면 이 전 청장에게 징역 8년과 벌금 2억40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던 검찰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적 의도를 인식하고 국세청이 스스로 액수를 정해 국정원에 자금을 요청한 후 전달받아 해외 정보원에게 은밀한 방법으로 직접 전달하는 등 (이 전 청장이) 불법공작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 것이 확인된 상황에서 국고 손실의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한 것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며 “국정원이 불법적 요구를 하면 국가기관이 그대로 따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동의할 수 없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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