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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박수찬의 軍] 전투기 개발 글로벌 경쟁 재점화…한국은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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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미국 공군 스텔스 전투기 F-22가 2015년 10월 서울 에어쇼에 참가해 성남비행장에 전시되어 있다. 공군 제공


1990~2000년대 이후 주춤했던 첨단 전투기 개발 경쟁이 다시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22와 F-35A, 유럽이 공동개발한 타이푼, 프랑스의 라팔 등이 21세기 초부터 전투기 시장을 주름잡으면서 신형 전투기 개발은 정체기를 맞았다. 하지만 2030년 이후를 내다본 선진국들이 신형 전투기 개발에 나서면서 스텔스 성능으로 대표되는 5세대 전투기의 성능을 뛰어넘은 6세대 전투기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 1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주도로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까지 시제기 6대를 만들어 비행시험을 실시해 2026년에 개발을 완료하고 2032년까지 120대를 일선에 배치할 예정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신형 전투기 개발이 본격화되면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KF-X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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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6세대 전투기 템페스트. 강력한 스텔스 성능과 무인기 운용능력 등을 갖출 예정이다. BAE 시스템스 제공


◆“전투기 개발하자”…선진국 간 합종연횡 시작

신형 6세대 전투기 개발 계획을 가장 구체적으로 밝힌 나라는 영국이다.

개빈 윌리엄슨 영국 국방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개막한 판버러 국제 에어쇼 행사 기자회견에서 “영국은 1세기에 걸쳐 전투기 분야에서 세계의 리더였으며 앞으로도 그런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며 차세대전투기 템페스트(TEMPEST)를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템페스트 개발에는 영국 방산업체인 BAE시스템스와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 롤스로이스, 영국-이탈리아 합작 방산업체 레오나르도, 유럽 미사일 업체 MBDA가 참가한다.

공개된 외형으로 볼 때 템페스트 전투기는 미국 차세대전투기 사업에서 록히드마틴 F-35에 패했던 보잉의 X-32와 일부 유사한 부분이 있다. 터키가 개발을 추진중인 TF-X 전투기 컨셉과도 비슷한 점이 있다. 템페스트 전투기는 유인비행 외에도 드론을 원격조작하는 방식으로 무인비행도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평면으로만 접하던 정보를 가상현실(VR) 기술을 적용, 3차원으로 구현하고 현재보다 진보된 기술을 적용한 전자장비를 장착하고 생산방식도 디지털화될 전망이다. 20억 파운드(약 2조9840억원)를 투자해 연구에 착수, 2020년말까지 개발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필요한 기술은 2025년까지 확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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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의 특성을 장리한 그래픽. BAE 시스템스 제공


영국 정부는 다른 나라와의 공동개발도 고려하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해 냉전 시절 재규어 공격기나 타이푼 전투기처럼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과의 공동개발이 여의치 않은 상황을 감안, 차세대전투기 개발 움직임이 공개되지 않은 스웨덴 사브가 공동개발 파트너로 거론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양대 축인 프랑스와 독일은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을 선언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주도로 차세대전투기 공동개발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 다소와 유럽 에어버스는 지난 4월 차세대전투기 개발 참여에 합의했지만, 사업 주도권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다. 미래 전투 항공체계 사업(FCAS)으로 명명된 이 사업을 프랑스가 주도하면 프랑스 최대 방산업체이자 세계적인 항공우주산업체인 다소의 역할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다소는 프랑스 공군 라팔 전투기를 만들고 있다. 양국은 기술실증기를 최대한 빨리 개발해 2025년 시험비행을 실시해 2040년까지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이후 라팔과 타이푼 전투기를 대체하게 된다.

X-2 기술실증기를 만들었던 일본은 국제 공동개발을 타진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로부터 제안을 받았지만 미국 록히드마틴의 제안이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F-22의 높은 스텔스 성능과 초음속 비행 능력에 F-35의 네트워크 능력을 결합한 록히드마틴의 제안이 실현되면 동북아시아의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다. 다만 대당 비용이 200억엔(약 2000억원)에 달하는 것이 문제다. 일본 방위성이 예상한 150억엔(약 1500억원)을 초과하고 있어 재무성 등에서는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성은 올해까지 검토를 거쳐 국내 개발과 국제공동개발, 해외 수입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예정이다.

우방국들의 전투기 개발 시도가 이어지자 미국은 F-35A를 앞세워 견제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유럽 국가들이 무기를 자체 개발하지 않고 미국제 무기를 도입해 군사력을 증강하기를 원한다. 독일 공군의 토네이도 전폭기 대체 사업에서 미국은 F-35A를 독일이 구매하기를 원하고 있고, 독일군도 F-35A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독일 내 공장과 일자리, 항공우주산업을 떠받치는 에어버스의 위상을 감안하면 타이푼을 구매해야 한다. 미국은 영국에도 E-737 조기경보통제기를 판매하려 하고 있어 항공산업 기반 유지와 자주적 국방정책을 추구하는 유럽과의 각축전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투기 시장 각축전 격화, 한국 KF-X 살아남을까

유럽과 일본이 전투기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군사적, 산업적, 국제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다.

브렉시트로 유럽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영국은 전투기 산업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실정이다. 영국 전투기 산업의 연간 매출은 60억 파운드(약 8조9500억원)가 넘는다. 지난 10년간 군수품 수출의 80% 이상을 타이푼 전투기 등이 차지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제조업 전망이 불투명한데다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전투기 공동개발 카드로 안보 분야 교류협력을 확대하고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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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군 스텔스 전투기 F-22가 2015년 10월 서울 에어쇼에 참가해 성남비행장에 전시되어 있다. 공군 제공


전투기를 개발하거나 도입하는 것은 국제정치에서 고도의 협력을 상징하는 제스처다. 프랑스와 독일이 전투기 공동개발에 합의한 것은 브렉시트로 흔들릴 수 있는 유럽연합의 결속을 다지는 효과가 있다. 2040년대 라팔 전투기의 노후화에 대비해야하는 프랑스는 차세대전투기를 개발해야 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부담이다. 독일과 공동개발을 실시하면 개발비용을 분담할 수 있고, 도입 규모도 늘릴 수 있어 대당 단가 하락과 군수지원체계 유지도 쉽다. 냉전 시절부터 프랑스와 가까웠던 제3세계 국가에 수출해 항공우주산업 기반도 발전시킬 수 있다.

일본으로서는 전투력 확보와 미일 군사일체화를 통한 동맹 강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스텔스 전투기를 국내 개발할 능력을 갖고 있으나 개발비에 도입비용까지 더해지면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차세대전투기를 개발하면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튼튼히 할 수 있다. 다만 일감이 사라진 일본 항공산업계의 연구개발 기반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장비인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임무컴퓨터, 전자광학 표적추적장비(EO TGP) 등 90여 품목을 국산화해 가격기준 국산화율 65%를 목표로 개발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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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개된 한국형전투기 상상도. 무장과 전자장비가 외부에 장착되어 있어 스텔스 성능에 한계를 보인다. 방위사업청 제공


KAI가 진행하고 있는 설계작업이 진척을 보이면서 전체적인 형상이 드러나고 있다. 겉으로 보면 F-22와 유사하지만 스텔스 성능은 5세대 전투기보다도 낮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방위사업청이 공개한 형상에 따르면, 적외선 탐지 및 추적 장치(IRST)와 전자전포드, 안테나 등 전자장비 상당수가 외부에 노출된 상태다. 스텔스 성능을 높이려면 F-35처럼 주요 장비들을 기체 내부에 탑재해야 한다. 5세대라기보다는 스텔스 기능이 일부 추가된 4.5세대 전투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블록2나 블록3 개발이 필요하지만 군에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KF-X가 실전배치될 2020년대 말이면 F-35A의 가격이 매우 저렴해지면서 염가형 스텔스 전투기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동맹국들의 무기 개발 시도를 억제하기 위해 F-35를 비롯한 첨단 무기 판매를 늘리는 상황에서 F-35A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KF-X가 시장의 호응을 얻기는 어렵다. 여기에 유럽국가들의 6세대 전투기 개발이 본격화되고, 중국과 러시아가 스텔스 전투기 판매에 나선다면 KF-X는 한국과 인도네시아만 사용하는 전투기로 끝날 수도 있다.

KF-X가 한반도 하늘을 누빌 때, 유럽과 일본 하늘에서 드론을 원격조종하는 6세대 전투기가 날아다닌다면 국제 경쟁력은 물론 유사시 제공권 다툼에서도 밀릴 수 있다.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기술과 예산 사정을 감안, 스텔스 성능을 높일 수 있는 KF-X 블록2와 블록3 개발 계획을 지금부터 세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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