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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대기업이 애용하는 TRS, '첨단기법 vs 꼼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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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증권사 모두 이익…일부 기업은 부실 계열사 지원에 사용

최근 SK(034730)㈜와 같은 대기업들이 인수합병(M&A), 계열사 지원 등을 위해 총수익스와프(TRS·Total Returns Swap·키워드 참조)란 파생상품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TRS는 거래 당사자가 모두 이익인 첨단기법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부실 계열사를 편법 지원하기 위해 TRS를 활용한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감독 당국은 TRS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4월 효성(004800)이 TRS를 이용해 조현준 회장의 개인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며 조 회장 등 경영진과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금감원은 이달부터 증권사를 대상으로 TRS 거래 실태 점검에 들어갔다. TRS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되면서 효성에 이어 추가로 제재를 받는 기업이 나올지 관심이다.

◇ 기업은 목돈 없이 M&A·계열사 지원, 증권사는 안정적 수익

기업들은 순환출자 해소, 인수합병(M&A) 등을 위해 TRS를 활용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2016년 2월 현대제철 주식 약 880만주를 NH투자증권에 매각했다.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현대제철 주식을 시장에 매각할 때 생길 충격을 완화하는 동시에 주가 상승 시 수익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다. 아시아나항공도 금호산업과의 상호출자·의결권 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4월 금호산업 보유 지분 4.9%를 대신증권에 TRS 방식으로 매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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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있는 대한항공 본사./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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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S는 당장 현금 지출 없이 계열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도 사용된다.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는 작년 11월 미래에셋대우와 TRS 계약을 체결했다. 미래에셋대우는 SK㈜의 계열사인 SK E&S가 진행한 6778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10%를 보유하게 됐다. SK㈜는 계약 기간에 미래에셋대우가 일정 수수료를 지급하고 2022년에 미래에셋대우가 가진 SK E&S 지분 10%를 되사올 수 있다. 계약 기간에 SK E&S 지분가치 변동에 따른 이익과 손실은 SK㈜에 귀속된다.

SK㈜ 관계자는 “SK㈜가 직접 SK E&S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도 있었지만 바이오, 모빌리티 등에도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TRS 계약을 맺었다. 나중에 미래에셋대우가 가진 SK E&S 지분을 되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했다.

TRS 계약을 맺는 증권사들은 위험 부담 없이 안정적인 수수료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TRS를 찾는 기업이 늘면서 증권사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SK E&S도 국내 한 대형 증권사와 TRS에 대해 논의했으나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입찰을 진행했고,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미래에셋대우와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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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있는 SK본사./성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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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무보증 성격…“부실 계열사 편법 지원에 악용” 지적

TRS는 채무보증과 성격이 비슷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채무보증이 아니어서 일부 대기업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법 제10조의2는 대기업그룹의 계열회사에 대한 채무보증을 금지하고 있는데, TRS를 이용하면 이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2014년말 대한항공(003490)계열사였던 한진해운은 196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했고 특수목적회사(SPC)인 필레제일차가 인수했다. 대한항공은 SPC와 TRS 계약을 맺어 한진해운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전부 떠안기로 했다. 당시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1000%가 넘었으나 대한항공이 위험을 떠안으면서 한진해운은 연금리 6.2%로 사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대한항공은 총 1570억원의 손실을 봤다. 경제개혁연대는 “대한항공이 한진해운 교환사채를 기초자산으로 SPC와 TRS 계약을 체결한 것은 공정거래법상 채무보증 금지조항을 위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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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SK㈜가 TRS 계약을 많이 하고 있다. SK㈜는 작년 4월과 5월에는 총 3850억원 규모로 SK해운의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삼성증권과 TRS 계약을 맺었다. 삼성증권이 SK해운 신주 등을 인수하는 대신 2022년까지 SK해운이 상장하지 못하거나 SK해운의 주가가 하락하면 SK㈜가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한 것이다. 당시 SK해운의 부채비율은 1000%가 넘을 정도로 재무상황이 엉망이었다.

공정위는 TRS 거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이 채무보증 관련 규정 등을 어겼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총수 일가가 이 계약을 통해 사익을 편취하거나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가 있다면 개별적으로 살펴볼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TRS 계약은 채권, 채무의 성격이 모두 있어 일괄적으로 채무보증으로 보긴 어렵다. 일괄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부당지원, 사익편취가 없었는지 개별적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TRS란
신용파생상품의 하나로 기초자산(주식, 채권, 상품자산 등)의 신용위험과 시장위험을 이전하는 상품이다. TRS 거래 당사자는 기초자산을 매입하는 보장매입자(TRS 지급자)와 보장매도자(TRS 수취자)다. 보장매입자는 기초자산에서 발생하는 자본이득이나 손실 등 모든 현금흐름을 보장매도자에게 이전하고 그 대가로 약정이자를 받는다. 보장매입자는 위험 없이 안정적으로 이자를 받을 수 있고, 보장매도자는 큰 자금부담 없이 자산을 매입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채무보증과 비슷한 효과가 있어 일부 대기업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데 TRS를 활용한다는 지적이 있다.

전재호 기자(j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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