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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광기 어린 주정뱅이 화가 최북의 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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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33인 다룬 '전(傳), 불후로 남다' 출간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자는 칠칠(七七)이요, 한쪽 눈이 멀었으며 하루에 술을 대여섯 되씩 마셨다는 조선 후기 화가 최북(崔北·1712∼1760).

최북은 어느 날 산수화를 제작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물 없이 산만 그렸다. 그림을 의뢰한 사람이 이를 따지자 붓을 내던지며 "아, 종이 밖이 다 물이로다"라고 일갈했다.

또 언젠가는 서평군 이요(1687∼1756)와 내기 바둑을 뒀는데, 최북이 승기를 잡자 서평군이 한 수 물러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에도 최북은 단호했다. 그는 바둑돌을 흩어버린 뒤 "바둑은 본래 즐기려고 하는 것이외다. 자꾸 수를 물러 주다 보면 한 해가 다 지나도 한 판도 둘 수 없을 것이오"라고 쏘아붙였다.

기행을 일삼은 화가 최북에 관한 이 같은 일화는 남공철(1760∼1840)이 지은 '최칠칠전'(崔七七傳)에 기록됐다.

시인 이단전(1755∼1790)을 통해 최북을 처음 알게 됐다고 털어놓은 남공철은 "세상 사람들은 칠칠을 주정뱅이나 미치광이라고 지목하고는 하지만, 그가 하는 말에는 묘한 깨달음이나 현실에 쓸 만한 것도 있다"며 "지은 시가 기이하고 예스러워 읊을 만했는데 감추고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펴낸 신간 '전(傳), 불후로 남다'는 최북을 포함해 조선시대 다양한 인물 33명에 대한 전기를 모은 책이다.

전(傳)은 한 사람의 일생에 관한 총체적 기록이자 평가를 뜻한다. 조선 초기까지는 당대 이념과 규범을 잘 지킨 인물이 대상이었으나, 중기부터는 거지나 사기꾼처럼 신분 질서에서 소외된 계층도 전에 등장했다.

책에 나오는 33명 중에는 충신·효자처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도 있지만, 여성·경계인·예술가·중인이 더 많다.

예컨대 조선 후기 문인 홍길주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출신이 천한 수학자 김영(1749∼1815)의 불우한 삶을 '김영전'(金泳傳)에 남겼다.

김영은 천문학과 수학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나, 기상 업무를 담당한 관청인 관상감에 들어갈 때마다 동료들의 질시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발탁한 정조가 승하하자 파직됐으나, 순조 대에 혜성이 잇따라 나타나자 다시 관상감에 불려갔다.

그러나 김영은 또다시 시련에 부닥쳤다. 홍길주는 "관상감 사람들이 그를 더욱 질시해 떼를 지어 몰려가 김영을 구타하고 상투를 잡아끌기도 했다"고 한탄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조선 후기 문신인 정칙, 양진영, 이장찬, 김창희가 자신의 삶에 대해 쓴 자전(自傳) 네 편을 소개했다.

전을 번역하고 해설을 덧붙인 안세현 강원대 교수는 "전은 작가와 대상 인물이 시대를 초월해 교감한다는 점에서 작가 의식이 반영된 문학"이라며 "과거에 있었던 남의 이야기일 뿐이라 여기지 말고, 전을 읽으며 지금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292쪽. 1만2천원.

연합뉴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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