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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교수의 자유 한계는?…大法, “박근혜 비판 기사 나눠준 교수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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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비판기사 강의자료 활용하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아

1·2심은 유죄…벌금 100만원 선고

대법원, "교수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

학문 자유의 제한 법리 첫 판례

중앙일보

헌법이 보장한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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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에 선 교수의 강의방식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이른바 ‘교수(敎授)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질문에 대법원이 답을 내놨다. 물론 칼로 무 자르듯 명쾌하진 않다. 헌법상 보장된 자유를 제한할 땐 신중하게, 최소한만 이뤄져야 한다는 원론적 판단이다.

대법원1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특정 후보자에 비판적인 기사를 강의자료로 이용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영남대 시간강사 유모(51)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프랑스 파리5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유씨는 2008년부터 영남대에서 사회학 강의를 맡았다. 문제가 된 강의는 2012년 2학기 ‘현대 대중문화의 이해’라는 과목이었다. 그는 수업을 하면서 ‘박근혜 후보의 위험한 역사인식’ ‘종박의 추억-유신 괴물’ 등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비판적인 신문 칼럼을 강의자료로 이용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기사만 강의자료로 쓴 건 아니었다. 인도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을 소개한 칼럼이나 스웨덴 최장 총리인 타게 엘란데르를 다룬 칼럼도 강의자료로 나눠줬다. 논란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11월 벌어졌다. 강의를 수강하던 한 학생이 “특강자가 ‘불순 강의’를 하고 박근혜 당시 후보자를 비판하는 신문 기사를 나눠준다”며 국가정보원 ‘111 콜센터’에 신고 전화를 하면서였다.

유씨는 경찰 수사를 거쳐 검찰에 의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유씨가 진보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으로 활동했고, 특정 정치 성향을 갖고 있던 점도 고려됐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운동은 ‘(특정 후보자가)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제58조) 그리고 ‘교육적·종교적 기관·단체 등 조직 내에서 직무상 행위를 이용해 구성원에 대해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제85조 3항)고 규정했다. 검찰은 유씨가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씨는 재판 과정에서 ▷이전 강의에서도 신문 칼럼을 강의자료로 활용했고 ▷박근혜 후보자가 당선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며 ▷강사라는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1·2심은 유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학문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나 학문의 자유 영역을 넘어 현행법을 위반하는 행위라면 법률에 따라 처벌돼야 하고, 직접적으로 박근혜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언급한 사실은 없더라도 박근혜의 낙선을 도모하려는 능동적 행위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이 해당 강의의 강사로서 수업시간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한 이상 ‘직무상 행위를 이용해 구성원에 대해 선거운동을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대법원이 '교수의 자유'에 대한 제한과 관련해 구체적인 법리를 제시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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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4년 만에 나온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유씨의 행동을 유죄로 본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그 이유를 자세히 밝혔다. 대법원 재판부는 “교수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학문의 자유’의 한 내용으로 헌법이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취지에 비춰보면 교수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교수행위의 내용과 방법이 기존 관행과 질서에서 다소 벗어나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함부로 위법한 행위로 평가해선 안 되고, 객관적으로 교수행위의 모습만 띠고 있을 뿐 내용과 방법이 명백히 학문적 연구결과의 전달이나 과정으로 볼 수 없을 때가 아니라면 정당한 행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사회학이란 학문적 관점에서 ‘대중문화’란 주제를 연구하려면 시대적 배경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필요하므로 특정 인물과 사건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언론기사를 강의자료로 활용한 게 강좌의 개설 목적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강의자료 일부가 박근혜 후보자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포함됐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의 교수행위가 학문적 연구에 해당하지 않고 박근혜 후보자의 낙선을 도모하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교수 내용과 방법이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본래 기능과 한계를 벗어나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하는 행위라고 명백하게 인정되는 경우여야 한다”고 적시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교수행위가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려면 대학교수 및 연구자에게 보장되는 헌법상 기본권인 학문의 자유, 그중에서도 교수의 자유에 대한 제한과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판결은 이에 대한 법리를 최초로 판시하고 교수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주는 법리를 정립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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