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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설왕설래] 출루 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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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프로야구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팀 공헌도가 가장 큰 타자가 누구일까. 일반적으로 홈런이나 안타를 많이 치는 선수를 꼽겠지만 정답이 아니다. 출루율이 높은 선수다. 선구안이 좋고 인내심을 갖춰야 좋은 공을 칠 수 있고 출루율도 높아지기 때문에 그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1990년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은 출루율과 장타율이 높은 선수를 중심으로 기용해 저비용 고효율인 ‘머니볼(moneyball)’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2005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4년차 베테랑인 추신수(36·텍사스 레인저스). 그동안 끊임없이 ‘먹튀(먹고 튄다는 뜻의 속어)’ 논란에 시달렸다. 2013년 말 자유계약(FA) 선수가 된 그는 텍사스와 7년간 1억3000만달러(당시 약 1379억)를 받는 초대형 계약을 맺었지만, 지난 4년 동안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상까지 겹쳐 “가장 잘못된 투자”라는 손가락질도 받았다.

하지만 달라졌다. 추신수는 올 시즌 타율 0.293, 17홈런, 42타점, 출루율 0.399, 장타율 0.504를 기록 중이다. 출루율은 아메리칸 리그 4위, 메이저리그 전체 7위로 최정상급이다. 나쁜 공에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구안이 좋아지면서 타격도 물이 올라 ‘출루 머신’으로 대접받고 있다. 물론 거저 이룬 게 아니다. 추신수는 올 시즌을 앞두고 타격 폼을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타격 때 오른쪽 다리를 들어올리는 레그킥을 선택한 것이다. 노장이 타격 폼을 바꾸는 건 모험이다. 시즌 초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지만 특유의 악바리 기질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추신수는 지난 9일 겹경사를 맞았다. 디트로이트 전 9회 마지막 타석에서 3루수 앞 내야안타를 쳐 구단 최장 연속경기 출루 신기록(47경기)을 세웠다.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메이저리그 첫 올스타에 뽑히는 꿈도 이뤘다. 박찬호, 김병현에 이은 역대 세 번째 한국인 메이저리그 올스타이자, 타자로는 처음이다. “이건, 야구의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그는 겸손함까지 갖췄다. 이제 메이저리그 현역 최다 연속경기 출루 기록(48경기)에 도전한다. 기록행진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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