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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알록달록 몽환적 세상 행복·사랑의 환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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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화가 스퀴치아리니 작품 전시회 / 사랑에 취한 연인·날아다니는 사람 / 꿈속을 표현한 듯한 그림, 샤갈 닮아 / 일상의 현실 자신 미학으로 재해석 / 기발한 상상력으로 긍정의 에너지 / 인사아트서 16일까지 30여점 선봬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는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많은 예술가에서 흔히 발견되는 공통점 중 하나다.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스퀴치아리니도 마찬가지다.

그는 1957년 마피아의 폭력과 살인, 마약과 매춘이 일상인 이탈리아 바리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일찍이 가족 해체를 경험한 그는 고독과 싸워야 했다. 그는 외로움과 분노를 색칠로 풀어내며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독일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첫 개인전을 열어줬을 때 스퀴치아리니의 나이는 불과 13세였다.

세계일보

안토니오 스퀴치아리니 작품의 공통점은 사랑스러운 색감과 날아다니는 인물들, 몽환적 분위기다.


스퀴치아리니는 어둡고 잔인했던 현실 세계를 몽환적이고 몽상적인 감상에 담아 희망과 행복을 그려냈다. 밀라노 브레라 예술대학 재학 시절 이탈리아 영화계의 큰 흐름이었던 누오보 리얼리즈모노(신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는 젊은 화가들의 모임을 구성했다. 밤의 유흥을 주된 소재로 삼으며 카페, 펍, 나이트클럽 등에서 전시와 판매를 해 ‘밤의 화가’로 불렸던 이들은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스퀴치아리니는 대중이 마주치는 일상적 현실을 그만의 미학으로 재해석해 아름답게 꾸며내며 기발한 상상력으로 화폭에 담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우연히 그의 그림을 본 영화 코스튬 디자이너를 통해 스퀴치아리니는 20대 후반 이탈리아 대표 영화감독인 페데리코 펠리니를 만나게 된다. 펠리니는 스퀴치아리니에게 “항상 날아다니는 존재를 그리는 자네는 나의 친구와 비슷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가라”고 말했다.

스퀴치아리니가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은 마르크 샤갈이었다.

“자네는 확실히 거칠지만 나처럼 시인의 눈을 가졌네. 그 시를 발전시키게.”

샤갈의 조언은 스퀴치아리니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샤갈의 작업실에서 7∼8개월간 생활했다. 샤갈은 삶을 정리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과 미학, 색에 대한 테크닉과 마지막 남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스퀴치아리니에게 남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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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는 현실을 극복하려 상상 속 행복을 화폭에 담았다. 갤러리 인사아트 제공


그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사탕처럼 알록달록 사랑스러운 색채와 중력을 거스르고 날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꿈속을 표현한 듯한 이런 구도는 샤갈의 작품과 비슷하다. 실제로 철학을 공유한 그들은 몽환적이고 몽상적인 세상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스퀴치아리니의 작업은 현실과 괴리를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샤갈의 작품이 성서에 기반을 두거나 원초적이고 시적으로 표현됐다면, 스퀴치아리니의 작품에서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이 발견된다.

노래하는 가수와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 사랑에 취해 있는 연인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띠고 하늘을 난다. 하지만 밤은 짧고 사랑의 달콤함도 영원하지 않다. 영원한 행복은 없다는 것을 암시하듯 그의 작품 곳곳엔 가슴에 시계를 안고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짧은 환상 뒤에 어둡고 잔인한 현실이 존재함을 알게 될 때 그의 작품은 현실을 극복하려는 욕망이 된다.

상상 속 행복을 화폭에 담아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던 스퀴치아리니의 고독한 전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 유명 박물관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 엔니오 모리코네 영화음악 감독 등 유명인들이 소장하고 있다. 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 인사아트에서 그의 작품 3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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