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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이시한의 공기업 NCS 취업 불패노트 리턴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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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라인드 채용이 가져온 학력파괴 현상의 실제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본격적으로 전개된 블라인드 채용은 입사지원 서류에 학력이나 성별, 나이, 사진 등 직무능력과 상관없는 정보를 가능한 기재하지 않고, 경험, 경력, 교육 사항 정도만 기재하여서 지원자의 직무능력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 채용방식이다.

특히 공기업에 우선 적용된 블라인드 채용은 기존의 NCS채용과 만나서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학력 파괴다. 반드시 대졸 학력이 요구되던 채용관행에 반기를 들고, 대졸자라는 필수 요구 조건을 없애 버린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졸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비중을 늘리지는 못했다. 작년 공공기관 정규직 채용인원은 2만 2,560명이었는데, 이 중 고졸자는 1,858명으로 8.2% 수준밖에 안되었다. 고졸 채용을 따로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른바 대졸수준 채용에서 뽑힌 고졸자의 비율은 극소수라는 얘기다.

말하자면 학력 초월이라는 블라인드 채용의 실효성은 고졸자 채용에서는 그렇게 효과적이지는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이 학력 초월 기조는 나비효과를 하나 만들어 내었다. 블라인드 채용하에서의 학력 초월 기조에 따라 입사 서류에 4년제 대학을 나왔다는 것 자체를 기재하지 못하게 되다보니, 당연히 전공, 그러니까 과 역시 기재하지 못한다. 그러니 전공에 대한 프리미엄이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무슨 과를 나왔는지 자체를 모르니, 해당 학과 전공생에 대한 편견이나 호감도 같은 후광효과가 없어지게 되었다. 이른바 ‘전공 불문’이라는 단어가 문자로만 기재된 것이 아니라, 실제 효과를 가지고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나이나 출신지역 등이 직무능력과 무관하다는 것은 납득이 가는데, 학력이 직무능력과 무관하다는 전제는 맞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4년제 대학의 경영학과에서 4년 내내 배운 학생이라면 경영관련 직무에서는 그렇지 않은 지원자보다 능력적 우위에 있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회계학과에서 4년을 배운 학생에 대해 적어도 회계 직무에 대해서는 직무능력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전공불문이니, 어떤 과든 다 지원하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전공에 대한 ‘무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실 그 동안의 대학교육이 실무 현장과 유리되어 운영되었다는 구조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금융관련 과에서 4년을 배운 학생이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어차피 실무 교육을 따로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쓰지도 않는 이론만 배운 학생들이 전혀 관계없는 전공의 학생들보다 그래도 나을 것인가에 대해서 현장의 생각은 긍정적이지 않다. 그러니 어설프게 이론만 알고 있는 전공자보다 새로 가르쳐 주는 것을 빨리 배울 수 있는 센스와 자세를 가진 비전공자가 더 각광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2. 전공불문의 현재

오래된 아재개그 중 하나가 바로 전공 불문이다. 불문과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많은 기업들이 전공으로는 불문과만 원하니 불문과에 들어온 여러분은 아주 행복한 겁니다.”라고 했다는 바로 그 개그 말이다. 지금 취업 과정에서 전공의 영향력은 역대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전공에 상관없이 지원하고, 평가 받고 그리고 채용되고 있다.

다음은 대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10대 공기업의 블라인드 채용 현황과 채용공고에 드러난 지원자격을 모아서 비교한 표이다. 이 표를 보면 10개 공기업 모두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고 있고, 지원자격 역시 전공을 특정해서 과를 제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경제

이시한 성신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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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과는 전공이 아니라 기사자격증 같은 자격증 유무에 따라 관련 직무를 지원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기사 자격증을 따려면 관련 학과를 졸업하거나 학점은행제로 학점을 취득하면 응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과는 자격증의 필터링을 거쳐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전공의 영향력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닌데, 문과 직무 같은 경우는 대부분 전공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서류에 아예 대학 졸업자인 것을 못 쓰게 하니, 사실 전공을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 줄 수도 없다. 그러니 전공으로 인한 이득도 없고 불이익도 없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왜 대학에 갈 때 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3. 대학의 위상변화

대학이 학문을 하는 곳이지 취업을 준비하는 곳은 아니라는 논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 지금 대학생들이 정말 학문 하려고 대학에 간 사람들인가? 대학생들이 학문에 정진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대학교수들이지, 대학생들이 아니다. 사실 전체 인구구조에서 지금 대학생들이 차지하는 인구 비중을 생각해보면 학문을 연구하는 기능은 대학이 아니라, 대학원 정도가 해야 한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의 입학정원은 2017년 4월을 기준으로 할 때 602,661명이다. 수능을 치는 인원이 60만 명 이하로 떨어지는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고등학생들은 마음먹으면 모두 고등교육 기관에 진학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얼마 전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던 2020년도 입시부터 전국 60개 대학에서 학생을 한 명도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인구구조에서 대학생의 비율이 너무 높다. 몇십 년 전처럼 대학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지성인으로 대접받던 시기가 아니다.

최근 정부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에 따라서 자율개선대학이 선정되었다. 이 명단에 들지 못한 대학은 정원감축 권고가 내려가게 된다. 확정은 아니지만 이 명단에 들지 못한 대학 중에 덕성여대, 상지대, 조선대 등 제법 알려진 대학들도 있다. 학령인구가 부족해서 대학이 고사될 상황이 먼 미래가 아니라 근미래로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인구구조와 대학의 상황이 이런 형편이기 때문에, 대학들은 구조조정의 위기에 대해서 당위성만 따지면서 앉아있기 보다는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주 현실적인 해결책은 학생들에게 그 대학의 매력도를 높이는 일이다.

4. 대학 프로그램의 변화

대학은 위기에 빠졌고, 전공은 취업시장에서 힘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학생들에게 매력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사실 지금 학생들에게 대학을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교수들의 논문이 몇 편이고 교수 충원율이 어떻게 되고 하는 요소는 아니다.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와 닿는 요소가 학생들에게는 중요한데 대학의 지명도, 장학금, 취업률 같은 것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상위권 몇몇 대학 빼고는 점점 학생들은 심각한 취업난을 타개할 수 있게 도와주는 대학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기업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뽑고 있나를 명확하게 보아야 한다. 최근 기업들의 채용 트렌드는 한마디로 직무적합성이다. 그리고 현재 서류에 쓰는 것 중에 직무적합성의 지표가 되는 것은 경험, 경력, 교육사항이다. 경험이나 경력은 인턴 같은 기회를 통해 관련 직무를 경험해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공기업 같은 경우는 해당 기업의 인턴 경험에 가점을 부여해서 선발할 때 어드벤티지를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턴의 정원은 정해져 있고, 모두 다 인턴을 하려고 한다면 인턴 경쟁률이 높아지며 결국 정규직 채용이 한 단계 앞으로 전진하는 효과가 날 뿐이다. 게다가 한정된 인턴 자리와 연결하는 대학의 교육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한계가 명확하다.

결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 대학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서 가장 힘을 쏟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사항이다. 교육사항이 실무와 연결되거나 적어도 지원 직무에 이론적 바탕을 줄만한 교육이라면 아무래도 그런 교육을 듣지 않은 사람보다는 전공 적합도가 더 높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많다.

사실 지금 학생들에게 개별 직무에 맞는 그 학교의 개설과목 가이드만 제대로 해줘도 어느 정도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케팅 직무나 영업, 경영 쪽에 관심 있는 친구라면 2학년 정도에 교양으로 ‘경영학의 이해’ 같은 개론 과목 하나를 교양으로 듣게 하면 나중에 직무를 준비하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그런 교육을 들었다고 풀어 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학교 2학년생이 미래의 직무를 생각하며 자신의 수강과목을 디자인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지금 있는 리소스를 잘 활용하는 차원에서 이런 직무에 따른 교과목 개설 가이드만 프로그램화 해도 2~3년 후에는 취업률이 제고될 수 있다.

필자는 지난 해 몇몇 대학에서 의뢰를 받고, 컨설팅을 하며 그 대학의 취업 프로그램과 교과목에 대한 매칭도를 전반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좋은 설계를 해도 결국에는 해당 대학의 최종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적이 몇 번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기획은 취업과 무관한 과목을 맡고 있는 교수들에게는 아주 위협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목들 중 많은 과목이 취업과 관계있어 보이게 네이밍 변화, 그리고 커리 상 약간의 콜라보 같은 요소만으로도 직무 적합과목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대학의 선택은 ‘유지’이지 ‘변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아예 기업과 협업해서 대학의 기구가 주체로 나서서 하는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있다. 학교 전체적으로 직무에 관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그것을 기업이 후원하며, 그 교육을 이수하면 직무에 대한 교육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되어 입사 서류에 당당하게 기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학 프로그램들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대학교육에서는 이렇게 기업이나 실무조직과의 협업을 통한 실제 직무 교육이 늘어갈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어설픈 민간자격증이 아니라, 실제로 기업과 협업 하에 만들어지는 실제적인 교육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채용했을 때, 실무 활용도가 높아지게 된다.

대학 총원이 적은 학교들은 몇 개 대학이 모여서 연합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실무 역량을 가진 인재들을 키워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상명대, 성신여대, 세종대, 이화여대, 한국외대의 5개 학교가 모여 ‘제약 마케팅영업 직무교육’을 공동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이 운영중이라고 한다. 실제 제약회사와도 연계해서 이루어지는 이 교육은 제약 회사들이 필요한 직무를 실무적으로 가르치니, 취업률도 높은 편이다. 연합 프로그램의 효과를 체감한 상명대, 성신여대, 세종대 같은 경우는 하반기에는 넓어진 금융권을 대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역시 연합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규모가 크지 않은 대학으로서는 효율적인 취업 대비 프로그램의 운용방법을 잘 찾은 셈이다.

5. 정리하면

대학의 위기상황에서 공기업의 블라인드 채용은 위기이면서 기회가 된다. 예전에는 고스펙들의 잔치였던 공기업 채용에서는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만 혜택이 있었는데, 블라인드 하에서 학력파괴, 전공불문 등이 일어나며 직무 교육을 제대로 받은 학생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의 입장에서는 정원 모집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직무적인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켜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야 할 것이다.

취준생 입장에서는 블라인드 채용 하에서는 학교 이름이나 전공의 한계를 탓할 필요가 없고, 자신이 원하는 직무를 빨리 정해서 그에 대한 실무 역량을 쌓기 위해 여러 가지 외부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찾아보면 나라에서, 시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마련해 놓은 다양한 교육들이 있으니 큰 돈 들이지 말고, 그런 교육들을 잘 활용하면 효과적으로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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