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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투자노트] 텅빈 여의도 오피스, 그나마 채워주는 전문운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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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의도를 거닐다 보면 비어있는 채로 방치된 상가나 사무실을 자주 보게 된다. 한 증권사 지하는 식당이 두어 개만 남아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피스 건물로 올라가면 ‘임대’라고 쓰여 있는 A4지가 누렇게 바래 있는 경우가 있다.

최근 IFC는 무척 매력적인 조건으로 기업들에 구애하고 있다. 임대료가 저렴함은 물론, 인테리어까지 해준다고 한다. 한 자산운용사는 “화장실이 너무 적다(현재 3개). 더 늘려달라”는 요구를 했는데, IFC 측이 이를 수용해 화장실 3개를 신설(?)하는 대공사까지 해줬다고 한다. 이 운용사는 이달말 IFC에 입주한다.

조선비즈

여의도의 새 오피스 건물들. 여의도 신축 오피스 건물은 2022년까지 지속 공급될 예정이다. 왼쪽부터 국제금융센터(IFC), 전경련, SK증권 빌딩 /조선DB




오피스 공급 과잉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교직원공제회, 우체국, 국민은행, 파크원, MBC 사옥 등이 줄줄이 다시 지어지고 있거나, 지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LG전자처럼 마곡지구 등 다른 곳으로 떠나는 기업도 많다.

건물주 관점에서 그나마 절망을 덜 수 있는 부분은 최근 사모펀드 전문운용 시장은 창업이 잇따를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사모펀드 전문 운용사는 2015년 말 20개에서 작년 말 139개로 늘었고, 현재도 계속 생기고 있다. 정부가 사모펀드 전문 운용사 설립 요건을 자본금 10억원으로 완화하고 헤지펀드 활성화를 추진한 영향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여의도 오피스는 한때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난 매미(매니저 출신 개미), 애미(애널리스트 출신 개미)가 먹여 살리다가, 최근엔 전문운용사나 자문사가 자리를 메우는 실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최근 전문운용사 설립 열풍은 다소 우려를 낳게 한다. 정부가 코스닥시장 활성화 정책으로 코스닥벤처펀드를 내놓았는데, 이것만을 노리는 소형 운용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메자닌(CB, BW 등 투자) 시장을 공략하려고 하고 있다.

CB는 채권이지만, 투자자가 원하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이다. 그리고 정부가 벤처펀드를 내놓으면서 이자율 0%짜리 CB가 쏟아지고 있다. 이는 즉 ‘원금보장형 주식’(기업이 망하지만 않는다면)이다. CB를 사고 싶은 사람이 넘치면서, 재무상황이 좋지 않은 기업들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최근 한 한계기업은 시가총액이 300억원 남짓이나 100억원에 살짝 모자라는 규모의 CB 발행에 성공했다.

기본적으로 돈이 흘러넘치는데 마땅히 투자할 곳은 없고(부동산 규제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요즘 ‘핫’하다고 하니까 메자닌 펀드에 기웃거리는 자산가들이 많다. 대부분 CB에 주가가 하락하면 전환가를 하향조정할 수 있는 리픽싱이 붙어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돈이 넘치니 부실기업도 재발행하면서 정상 상환하고, 투자자들은 “우와 걱정했는데 잘 상환되네? 다음엔 더 많이 투자해야지”하는 분위기다. 진짜 괜찮은 상황인지, 정부 정책이 과열된 곳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최근 신설됐거나 전환한 사모펀드 전문운용사들을 모두 깎아내려고 쓴 글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부의 얘기다.)

안재만 기자(hoonp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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