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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정권과 나라의 운명 흔들던 ‘제왕적 총재들’의 시대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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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역사 속으로 사라진 ‘3김 시대’ 의미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경쟁과 제휴로 대한민국 정치 좌우

1970년대부터 여야의 유력한 지도자…2000년대까지 주역

후보 공천권과 정치자금으로 국회의원들을 수족처럼 부려

영남 호남 충청 지역주의 결합한 강력한 카리스마 휘둘러



23일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김대중·김영삼과 함께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30여년간 대한민국 정치사의 명실상부한 주역이었다. 세 사람의 경쟁과 제휴로 정권의 향배가 바뀌었고 대한민국 운명도 달라졌다.

‘3김’이 처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1970년대였다. 김영삼-김대중은 야당, 김종필은 여당의 유력한 정치 지도자였다. 1979년 박정희가 사망하자 3김 중에서 한 사람이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세 사람은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를 당해낼 수 없었다.

신군부는 취약한 정통성을 보강하려고 3김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김종필은 부정축재자로 지목해 재산을 환수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했다. 김영삼은 가택 연금했다. 김대중은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해 사형 선고를 했다가 미국으로 쫓아냈다.

그러나 민심은 3김 쪽에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이뤄졌고 3김은 그해 12월 대선에 통일민주당(김영삼), 평화민주당(김대중), 신민주공화당(김종필) 후보로 각각 나섰다. 김영삼 28.03%, 김대중 27.04%, 김종필 8.06%였다. 당선자는 36.64%를 얻은 노태우였다.

재야와 시민사회에서 “3김 물러가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3김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을 얻었다. 정치를 계속할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이후 1990년 3당 합당, 1992년 김영삼 대통령 당선, 1995년 자유민주연합 창당, 1997년 디제이피(DJP) 연합 및 김대중 대통령 당선, 2000년 총선 뒤 ‘자민련에 의원 꿔주기’까지, 대한민국 정치는 거의 3김의 경쟁과 제휴에 의해 이뤄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개혁과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3김 청산’을 외친 이유다.

3김이 가진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대중 지지였다. 3김은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대중 정치인’이다. 김영삼은 민주와 개혁, 김대중은 민주와 평화, 김종필은 관록과 유연을 상징한다. 여기에 세 사람의 출신 지역인 영남, 호남, 충청의 지역주의가 결합하면서 강력한 카리스마가 완성됐다.

셋은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주의를 적극 활용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로 영남을 결집한 김영삼은 지역갈등을 악화시킨 가해자였다. ‘호남의 한’과 ‘(충청) 핫바지론’은 방어적 지역주의였지만 지역갈등 악화에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지역주의와 결합한 대중의 강력한 지지는 3김에게 정당을 만들고 또 없앨 수 있는 무한 권력을 줬다. 세 사람은 이른바 ‘제왕적 총재’였다. 공천권과 정치자금으로 국회의원들을 수족처럼 부렸다. 공천헌금은 합법적인 정치자금이었다.

2000년대 들어 민주화와 정보화가 진전되며 제왕적 총재는 구시대 유물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점차 정당에서 상향식 공천이 도입되고 당비를 납부하는 권리당원이 크게 늘었다. 정치관계법이 개정되면서 정치자금 분배도 투명해졌다. 3김이 퇴장하면서 정당에서 총재가 아예 사라졌다.

총재가 사라지자 문제도 생겼다. 당 지도부의 리더십과 의사결정 시스템이 같이 무너진 것이다. 각 정당은 국민선거인단 제도, 당원의 정책 투표 참여, 직접 민주주의 강화 등 정당을 운영하기 위한 대안 시스템을 찾고 있다. 아직은 해답을 찾아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총재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적어도 확실한 것은 이제 대한민국이 다시는 그가 주역으로 활동했던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역사는 한 걸음씩 전진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제이피(JP)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했다. 3김 시대는 끝났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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