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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디지털스토리] 하루 1시간 안 되는 가족대화…주 52시간 되면 늘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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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일찍 퇴근해서 같이 놀았으면"…아빠 "지쳐서 쉬기 바빠" "여가 이용 법 몰라"…"가족과 함께 활용 방법 찾아야"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강혜영 인턴기자 = "아빠는 오늘도 늦게 온다. 항상 오후 10시 넘어서야 들어오신다. 언제 얼굴을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오시기 전 난 잠드니까. 어쩌다 가끔 저녁상을 마주할 때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더 일찍 와서 놀이동산도 가고 같이 놀아주셨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3학년 김성민(가명·10) 군

"오늘도 야근이다. 백화점 폐장 시간은 오후 8시, 결산이나 뒷정리를 하면 늘 퇴근은 오후 9시가 넘는다. 집에 도착하면 일러야 오후 10시다. 평일 대부분이 그렇다. 늘 잠든 아이의 얼굴만 본다. 얘기하고 싶다. 숙제는 했는지, 학교생활은 재밌는지, 힘든 건 없었는지… 친구 같은 아빠가 되자고 결심했는데, 쉽지 않다. 피곤하다." 성민 군의 아버지 김 모(41)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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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가정의 양립. 정부가 주 52시간 도입을 통해 내세운 목표다. 일이 많았다. 그래서 피곤했다. 긴 근무 시간은 가정에 집중할 여력을 가져갔다. 부부 세 쌍 중 한 쌍은 하루 대화 시간이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가족과 보내는 여가 시간은 하루에 1시간도 내기 힘들다. 주 52시간제 도입은 가족 중심의 사회를 가져올까. 그러나 전문가들은 당겨진 퇴근 이후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직장인 스스로 가족과 보내는 연습이다.

◇ "언제 대화했는지 모르겠어요" 얼굴보기 힘든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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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신 모(35) 씨는 며칠 전 저녁 식사 중 느낀 낯섦을 아직도 기억한다. 오랜만에 일찍 들어와 가족들과 저녁상에 둘러앉았는데 처음 보는 사람처럼 데면데면했기 때문이다. 신 씨는 "집에 와서 씻고 자기 바쁘고, 아침에는 출근 준비로 정신없다 보니 대화하기가 껄끄럽다"며 "공통 주제도 없어서 시간이 있어도 서로 어색해한다"고 말했다.

신 씨처럼 직장인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생활시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크게 줄었다. 가장 최근 조사인 2014년은 127분으로 2009년(171분) 보다 25.7% 감소했다. 최근 10년 사이 가장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식사와 가구원 돌보기, 관련 이동 시간 등을 다 포함해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하루에 두 시간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가사노동을 제외하고 가족끼리 순수하게 즐기는 시간도 부족하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평일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하루 평균 여가(최근 6개월 기준)는 30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시간 미만이 절반에 가까웠고, 이 중 18.8%는 30분도 채 가족과 보내지 못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56.2%가 가족 간 보내는 여가가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맞벌이의 경우에는 60.4%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 대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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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보기가 힘드니 대화하는 시간도 적을 수밖에 없다. 배우자와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은 꾸준히 줄고 있다. 남편, 또는 아내와 하루에 2시간 이상 대화한다고 밝힌 이는 2015년 23.4%, 2010년 16.5%, 2015년 13.7%로 조사마다 감소했다.

반면에 '30분 미만'이라고 밝힌 이는 2005년 20.3%에서 2015년 29.2%로 증가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서울 소재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가족 간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이 1시간 미만인 경우는 79.2%로 나타났다. 고등학생 10명 중 8명이 부모와 1시간도 대화를 안 하는 셈이다. 심지어 10분 이내라고 답한 비율도 14%가 넘었다.

특히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와의 대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자녀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어머니와 충분히 대화한다'고 답한 청소년 자녀는 63.5%(대체로 그렇다 42.1%+매우 그렇다 21.4%)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우,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률은 38.4%에 불과했다.

서울 소재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김 모(11) 양은 "하교하고 집에 가도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 잘 때까지 아빠를 못 보는 날도 많았다"며 "좀더 일찍 퇴근하셔서 얘기도 하고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일 많은 현대인, 집에 오면 쓰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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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은 대화 단절을 체감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여가부에 따르면 직장인 세 명 중 한 명은 가족 간 여가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일이 너무 바빠서'를 꼽았다. 경제적 부담은 16%, '(일 때문에) 몸이 피곤해서'라는 응답도 8.2%를 차지했다.

더 힘든 건 맞벌이 부부다. 직장일 때문에 가족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답한 맞벌이 부부는 2.43점(5점 만점)으로 홑벌이 부부보다 소폭 높았다. 직장일 때문에 가족행사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직장 일을 집에 가지고 갔다고 답한 응답 역시 맞벌이 부부가 더 많았다.

직장 일이 많아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 재직 중 사내 커플로 재작년 결혼한 이 모 씨(31)는 "남편과 번갈아 가면서 육아를 담당하는데 퇴근하면 서로 지쳐 집에서 쉬기 바쁘다"며 "아이와 교감도 좋고, 남편과 소통도 필요하지만 그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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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보내는 방법 연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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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주 52시간 제도 도입을 가정 중심의 문화를 조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가족 간에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같이 볼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서로 얼굴 맞댈 시간이 있어야 고민도 털어놓고, 속에 있는 얘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공유하는 시간이 적으면 아무리 가까운 가족 사이라도 낯설고 어색할 수밖에 없다"며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대화하는 습관이 만들어 놓지 않으면 커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52시간을 맞이할 어린 세대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 보는 이유다"라고 덧붙였다.

가족 식사 빈도가 많을수록 아동의 공격성이나 정서 불안정 지수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종남 서울여대 교육심리학 교수가 펴낸 '가족동반식사가 자녀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 식사 빈도가 주 5회 이상인 아동의 공격성이나 정서불안정성 지수는 아예 없는 아동보다 절반가량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을 늘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한국중소기업학회장)는 "과거 서머타임 시행 당시 문제로 드러났던 부분은 '시간 활용에 대한 무지'였다"라고 말했다. 퇴근이 당겨지면서 개인 시간이 늘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연한 노동자가 많았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인해 여유가 생기겠지만 가족과 보내지 않고 예전처럼 직장 동료와 술을 먹는 등 평소처럼 소비한다면 취지가 퇴색될 것"이라며 "단순히 노동 시간 단축이 아닌 '사회 전체적인 문화가 바뀐다'고 여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서유럽이나 미국 등 주요 노동 선진국의 경우, 퇴근 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라며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나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정부나 해당 기업에서 교육 지원이나 여가 활용 방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자를 훈련시켜야 한다"며 "가족과 소통 방법, 문화 강연이나 자기 계발 등 교육에도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교수 역시 "가족과 함께 즐겨도 큰돈이 들지 않는 근린공원이나 문화 시설, 지역 커뮤니티 센터 등 공공시설 확충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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