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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Why] "헤리티지처럼 자유민주주의 지키는 싱크탱크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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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준 기자의 한방] 박종환 자유총연맹 총재 자유총연맹에 날아온 '文대통령 친구' "나 열린 보수… 정치적 중립 지키며 정부에 할 말은 할 것"

조선일보

한국 보수 단체의 맏형 격인 자유총연맹 박종환 신임 총재가 지난 19일 서울 장충동 연맹 본부 건물 4층에 있는 백두산 천지 사진 앞에 태극기를 들고 섰다.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로도 잘 알려진 박 총재는 “대한민국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게 자총의 철학”이라며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도 정부에 할 말은 하겠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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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9일 보수의 심장부에 공수(空輸) 작전 하나가 조용히 실행됐다. 박종환(64) 전 경찰종합학교장(치안정감)이 한국자유총연맹(자총) 총재로 취임한 것이다. 그는 경희대 법대 72학번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동기 동창이자 친구다. 문 대통령이 2012년 18대 대선에서 패배한 뒤 박 총재와 단둘이서 술잔을 기울이며 아픔을 달랬다는 건 여권에선 잘 알려진 일화다. 문 대통령 승리가 확실했던 19대 대선 기간에는 경찰청 간부 사이에서 '차기 경찰 인사는 박종환 전 치안정감이 좌지우지할 것'이란 지라시(사설정보지)가 돌기도 했다.

박 전 치안정감은 350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관변 단체 수장으로 귀환했다. 자총은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목적 아래 1954년 한국반공연맹으로 출범했다. 민주화 이후 1989년 한국자유총연맹으로 이름을 바꿨다. '반공' 대신 '자유 수호'에 방점을 찍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보수 단체의 맏형이었다. 전국에 17개 지부·3389개 분회, 해외에 30개 지부가 있고 한 해 운영비가 200억원에 달한다. 자총 명부에 등록된 회원은 350만명, 내부 전산망에 등록된 회원은 80만명, 회비를 내거나 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이들은 약 30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자총의 설립 목적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평화통일 추구. 주로 교육사업이나 지역 봉사활동, 출판 사업 등을 하지만, 단체 성격상 보수 정치권에 친화적이었다. 이 때문에 태극기 집회에 회원들을 동원하는 등 정치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보수의 심장에 진보 대통령의 친구가 총재로 온 것이다. 진보 정권 대통령의 친구는 국내 대표 보수단체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지난 19일 서울 장충동 자유총연맹 본부에서 박 총재를 만났다.

―자총은 행정안전부 산하 단체. 대통령 추천으로 총재가 됐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총 총재는 자총 내외부 인사로 구성된 후보자 추천위의 추천을 받아 대의원들이 총회에서 선출합니다. 작년 8월에 저를 잘 알고 자총도 잘 아는 분으로부터 총재직에 입후보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자총에 별 관심이 없어서 몇 번을 거절했는데, 여기저기서 계속 권유를 받다 보니 흥미가 생겼습니다. 알아보니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폭넓은 활동을 하는 조직이더군요. 자총이 '국리민복(國利民福)' 정신을 바탕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향하는 조직이 되도록 기여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임명 과정이 순조롭진 않았다. 김경재 전 총재는 지난 3월 배임과 공금 유용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와중에 사퇴했다. 새 총재 임명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이세창 총재 권한대행이 "행안부가 문 대통령 친구를 신임 총재로 앉히려고 전방위 압박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어떤 점이 논란이었나요.

"자총을 둘러싸고 지난 수년간 정치 편향, 부정과 비리, 내부 갈등 같은 여러 논란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동안 쌓여 있던 이런 문제들이 총재 선출 과정에서 불거지다 보니 트러블이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요. 이제는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으며,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정치 중립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취임한 지 두 달쯤 됐는데, 이제 조직 파악은 어느 정도 하셨는지요.

"자총은 거대 조직이지만 정작 본부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본부 상근직은 50명 내외. 적폐 청산할 것도 없어요(웃음)."

자총을 보수의 싱크탱크로

박 총재 취임 후 인적 청산이 어느 정도 있기는 했다. 이세창 전 총재대행을 비롯한 일부 직원들이 자총을 떠났고, 반대쪽 진영에서 극우라고 비판받던 만화가 윤서인씨의 자총 홈페이지 연재도 계약 중단없이 종료됐다. 박 총재는 "윤씨가 누군지 모른다"며 "실무진의 결정이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극단적인 정치 편향성이 있는 직원들이 문제였지 대부분의 직원과 자총 회원은 국가에 헌신하고 봉사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며 "그들을 중심으로 고칠 건 고치면서 조직을 포용하고 통합하겠다"고 말했다.

―조직을 정비할 복안이 있습니까.

"정치중립평가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입니다. 좌우 양쪽에서 신망 있는 서울대의 모 교수님을 위원장으로 모시고, 외부 위원들 위주로 위원회를 구성해 자총의 활동에 대해 사전 평가를 할 계획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총을 미국 보수 세력의 핵심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같은 곳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은 연구 역량이 뒷받침된 곳인데, 가능한 목표일까요.

“쉽지 않습니다. 총재가 되기 전엔 의지만 있으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만만치 않습디다. 자총 산하에 연구원이 하나 있는데 유명무실한 곳이에요. 일단 상근 연구위원으로 교수님을 몇 분 모시고, 비상근 연구직도 모집할 계획입니다.”

―비용은 충분한가요? 한 해 운영비가 200억원에 달하니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350만명의 회원이 있는 단체에서 200억원이면 운영이 빠듯해요. 지역 지부는 회원 회비와 기부로 운영되는 게 현실입니다. 이전엔 정부 지원도 있었지만 올해는 정부 예산 지원도 0원입니다. 그렇다고 직원 규모를 줄여 비용을 마련한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죠(웃음). 직무를 재조정하고 비용을 절감해 차근차근 싱크탱크 역량을 키워나갈 겁니다.”

―취임 후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와 MOU를 체결하고, 경우회와 ROTC 중앙회와도 MOU 체결을 추진 중이시더군요.

“고엽제전우회와 MOU는 제가 앞장서서 추진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큰 공적을 세우신 분들인데 세간에서 그들을 안 좋은 별칭으로 부르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자총과 함께 그런 인식을 바꾸는 활동을 해나가자고 설득했지요. 다른 보수 단체들과도 연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활동을 전개하는 게 자총 임무 중 하나입니다.”

조선일보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후 청와대로 복귀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경복궁 근처에 모인 자유총연맹 회원들. /한국자유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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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박 총재 취임 후 자총이 눈길을 끌었던 건 두 건의 성명 때문이었다. 하나는 교육부에서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 시안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뺀 것을 규탄하는 성명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자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낸 것이었다.

―한 건은 정부 비판, 한 건은 지지였습니다.

“항간에 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니까 자총도 무조건 정부를 지지할 거란 시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총은 민간단체입니다. 저는 문 대통령의 친구이지 상하관계가 아닙니다. 할 말은 하는 게 친구지요.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는 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수 학자와 관료들이 탁상공론으로 한 결정을 자총이 따라갈 이유가 없죠.”

―남북 정상회담 지지 성명은 더 이목을 끌었습니다. 회담을 마치고 청와대로 복귀하는 문 대통령을 향해 회원들이 환영하러 모이기도 했습니다.

“판문점 선언의 내용이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공존공영과 자주통일, 핵의 완전한 제거, 전쟁 위협의 실질적 해소, 평화통일 구축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평화통일을 존립 목적으로 하는 자총이 적극 지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협상하러 갈 때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주시하고 있었지만, 공존공영과 핵 폐기, 전쟁 위협 해소, 평화체제 구축 약속을 하고 돌아오는데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회원들도 자발적으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150명 정도 모인 거죠. 동원했으면 수천 명이 가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안 나갔습니다. 정권에 잘 보이고 싶었으면 저도 나갔겠죠.”

―경찰 퇴직 후 중국 옌볜(延邊) 지역에서 교육 활동에 전념하신 걸로 압니다. 지금의 해빙 무드를 어떻게 보십니까.

“옌벤에 있을 때 단둥으로 가서 밤에 북한 신의주 쪽을 바라보면 딱 세 군데만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김일성 동상, 김정일 동상, 주체사상탑. 그 외엔 깜깜합니다. 중국 쪽은 불야성인데 말이죠. 가슴 아픈 풍경이었습니다. 저는 진정한 문제는 핵 폐기 후 남북 화해가 진전될 때라고 봅니다. 지금처럼 격리된 상황에서는 오히려 안정이 있을 수 있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남북 화해는 혼란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너무 다른 체제에서 오래 살아왔기 때문이죠. 자총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교류, 왕래 등 남북 화해가 이뤄지고, 설사 통일이 되더라도, 그 바탕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자총의 철학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지방선거 참패로 보수의 위기가 절정에 달했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런 시대에 자총의 역할은요.

“대한민국 보수는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고,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보수의 위기는 가치관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총재로 취임하면서 강조한 게 국리민복 정신입니다.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으며,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모든 활동을 함에 있어 최고의 판단 기준을 국민 행복과 국가 이익에 둔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데 보수가 앞장설 때 국민으로부터 다시 인정받고 사랑받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총 총재가 아니라 시민 박종환으로서 자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제가 열린 보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자유는 억압과 궁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와 노력의 결과라고 봅니다. 자유는 거저 얻는 게 아니라 투쟁의 산물입니다. 자유가 침해되면 결국 인권이 침해되는 것입니다. 저와 자총은 그런 자유와 인권을 지키려는 노력에 앞장설 겁니다.”

대통령과 둘이 만날 땐 폭탄주

박 총재는 문 대통령과 오랜 친구다. 18대 대선 때는 공개적으로 지지 선언을 하는 등 적극 활동했고, 이번 대선 때도 비슷하게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본인은 “일부에 알려진 것처럼 (선거운동에서) 큰 역할은 하지 않았다”며 “선거 기간에 힘들 때 가끔 만나 술 한잔 한 정도”라고 선을 그었다.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술집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경희대 법대 동기 중엔 자퇴하고 시험을 다시 봐서 서울대나 고려대 법대로 가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문 대통령과 그 이야길 나눴던 걸로 기억합니다. 재미있는 게 그때 학교를 바꾼 친구들은 그 뒤로 잘된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모두 잘됐고요(웃음).”

―문 대통령은 어떤 친구였나요.

“경청을 하는 재주가 있는 친구입니다. 술에 강하고 토론에도 강했습니다. 사람들이 술 먹으면 주정도 하고 여러 이야길 하는데 그걸 다 잘 받아주는 스펀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은 주사가 없었어요. 한 번은 문 대통령이 고시 공부 하는 절에 찾아가서 같이 술 마시다가 잠들었는데, 새벽에 깨보니 혼자 공부하고 있더군요. 그러니 그 친구는 고시가 되고 저는 안 된 것 같습니다(웃음).”

―문 대통령과 유독 술로 얽힌 일화가 많은 것 같습니다. 두 분이 만날 땐 주종(酒種)이 어떻게 되나요?

“소폭(소주+맥주 폭탄주)입니다. 옛날엔 소주·맥주를 잔에 가득 부어서 말아 먹었는데, 이젠 맥주 반 잔에 소주 반 잔 말아서 먹습니다. 술 마실 때도 주로 옛날 얘기를 많이 합니다. 워낙 추억이 많으니 한 얘기 하고 또 하고 그러면서 술 마시는 거죠. 옛날에 술 마시고 나면 문 대통령 하숙집에 가서 가끔 잤습니다. 친구들이 하도 거기 가니까 하숙집 주인이 뭐라고 해서 그다음부턴 발길을 끊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 대통령이 최대 보수 단체인 자총을 접수하기 위해 친구를 보낸 것’이란 시각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일부의 억측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저도 그렇고 자총도 그렇고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할 말은 하는 단체가 될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서울 장충동의 자총 본부 건물을 둘러봤다. 자유센터라 이름 붙은 자총 본부는 건축가 고(故) 김수근의 설계로, 방주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다. 자유를 지키는 보루라는 의미다. 보수 정치의 위기라는 지금, 자총은 보수의 방주가 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박 총재의 3년 임기가 끝날 즈음, 그의 캐치프레이즈인 국리민복(國利民福)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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