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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삼촌과 보드게임, 할아버지랑 한자 공부… 아이한텐 대가족이 최고의 선물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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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한지붕 세 가족 윤선현씨네

"세 가족이 모여 살면 어떨까?"

작년 초 아내가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처가 식구 3명(장인·장모, 처남)과 처제네 부부, 나와 아내, 딸까지 여덟 식구가 한집에서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첫째 이유는 전셋값 폭등. 세 가족이 각각 내고 있는 주거비를 합해보니, 넓은 평수 아파트로 이사 가고도 돈이 남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둘째 이유는 육아였다. 출장이 잦고 퇴근 시간이 늦은 나 때문에 아내 혼자 사실상 독박 육아를 하는 것보다 여러 식구가 돌아가며 아이를 돌보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됐다.

◇최대 수혜자는 우리 딸

하지만 막상 결심하고 나니 '이제 와서 대가족 생활이 가능할까' 걱정이 들었다. 살림살이 정리부터 각자 생활방식과 습관이 다른 사람들끼리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을 것인지…. 주변에서도 다들 깜짝 놀라면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충고했다.

막연했던 걱정은 이사한 첫날 퇴근 후 새집의 현관문을 여는 순간 스르르 날아가 버렸다. 행복한 웃음으로 눈동자가 빛나는 딸과 대가족의 따스한 온기가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진 퇴근 후 온종일 육아에 지친 아내를 대신해 어수선한 집 안 청소를 하며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명절에나 느낀 가족 간 화목함을 매일 누릴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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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윤선현씨네 ‘한지붕 세 가족’이 식사 후 딸 서진이를 중심으로 모여 앉아 간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윤선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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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족 생활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딸 서진이다. 매일 저녁 쓸쓸히 혼자 노는 대신 할아버지에게는 한자를 배우고, 할머니와는 베란다의 작은 화단을 가꾼다. 삼촌과 보드게임을 하고, 이모부와 비디오 게임을 하며 지내다 보니 심심할 틈이 없어졌다. 부모 단둘에게만 의지할 때보다 일곱 명의 가족들과 함께 놀고 배우고 사랑받다 보니 예전보다 훨씬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자랐다. 얼마 전엔 딸 서진이의 생일이었는데, 퇴근길에 삼촌이 사온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온 가족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며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에 전에 없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는 충동구매 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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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이가 방과 후 할아버지에게 한자 쓰기를 배우고 있다.


아내의 변화 역시 놀랍다. 예전에는 허전한 마음 때문인지 마트나 홈쇼핑에서 예쁜 그릇이나 조리 도구를 충동구매하는 일이 잦았다. 지금은 마트에 가도 생필품만 딱 사고, 홈쇼핑 채널은 아예 볼 일이 없다고 한다.

맞벌이하는 처제네는 집밥 먹는 일이 많아져 좋다고 한다. 그전엔 장을 봐서 요리를 하려고 해도, 못 먹고 버리는 식재료가 너무 많았는데 매끼 함께 집밥을 먹게 되니 끼니 걱정도 덜고 건강한 식습관도 들인 것이다.

어느덧 여덟 식구가 함께 산 지 1년. 처음엔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라 생각했고, 직장처럼 생활 규정을 두고 문제를 개선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서로 알아서 배려하고 존중하다 보니 아직까지는 그런 형식 없이도 충돌이나 다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이사 초기엔 돈 버는 사람이 나와 동서뿐이었지만 그새 장인어른과 처남·처제까지 새롭게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더욱 풍요로워졌다.

육아·주거비·노령화 등 영향으로 우리 집 같은 신(新)대가족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전문가들은 대가족 생활을 할 때는 그 안에서 서로 떨어져 살 수 있는 별도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갈등 해결을 위해선 각자의 공간에 숨기보다, 서로에 대해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다같이 행복해지면서 육아와 생활비에 대한 부담까지 줄일 수 있는 대가족 생활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윤선현·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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