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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제조업의 상징 GE, 111년만에 다우지수서 쫓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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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쉬운 금융사업 이익에 취해 본업 제조업 경쟁력 잃어버려

"5년, 10년 뒤 무엇을 먹고 살지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2002년 삼성그룹 송년 모임에서 이건희 회장이 한 말이다. 그해 삼성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일각에서는 과장된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업의 세계에서 그 말은 단순한 레토릭(수사)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한때 미국 기업 시가총액 1위였던 제너럴일렉트릭(GE)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A)를 구성하는 30개 종목에서 111년 만에 빠지게 됐다. '토머스 에디슨이 창업한 기업'이자 '제조업의 상징' '세계 모든 기업의 경영 교과서'이기도 했던 GE가 안이한 경영과 미래에 대한 대처 부족으로 추락한 것이다.

조선일보

에디슨·잭 웰치·이멜트… GE의 사람들 - 제너럴일렉트릭(GE)은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왼쪽 사진)이 1878년 창업해, 한때 미국 최대 시가총액을 기록했던 미 제조업의 상징이었다. 1981년부터 2001년까지 GE를 이끌었던 잭 웰치(오른쪽 사진의 왼쪽) 회장은 GE를 의료기기·미디어 분야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 복합 기업으로 키웠다. 하지만 그의 후임자 제프리 이멜트(오른쪽 사진의 오른쪽) 때 GE는 금융업에 집중하며 경쟁력 없는 공룡이 됐다. 19일(현지 시각) GE는 미국의 대표적인 주가지수인 다우지수를 구성하는 30개 종목에서 111년 만에 퇴출됐다. /게티이미지 코리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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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 시각)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지수 위원회는 GE를 오는 26일부터 다우지수 구성 종목에서 제외하고, 약국 체인업체 월그린스 부츠 얼라이언스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1907년 이후 111년간 다우지수의 대표 기업이었던 GE가 지수에서 빠지면서 다우지수의 원년 멤버는 하나도 남지 못하게 됐다.

GE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기업의 '선생님'이었다. 1981년부터 2001년까지 GE를 이끌었던 잭 웰치 회장은 1000개에 달하는 기업 인수를 통해 전력, 기관차, 항공엔진 산업으로 성장한 GE를 금융, 의료기기, 미디어 분야까지 아우르는 세계 최대의 복합 공룡기업으로 변신시켰다. 2000년 GE의 시가총액은 5940억달러(약 660조원)로 미국 1위에 올랐고, 웰치는 '경영의 신(神)'으로 불렸다.

이 시기 세계 모든 기업은 GE 벤치마킹에 나섰다. GE가 운영하는 '글로벌 인재 사관학교' '크로톤빌 연수원'에는 세계 각국의 최고경영자(CEO)와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줄'까지 대며 몰려들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도 크로톤빌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국내 인사들이 모임을 만들어 'GE 인맥'을 형성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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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치의 뒤를 이어 2001년 CEO에 오른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웰치가 설립한 미국 최대 대부회사 GE캐피털이 한때 GE 전체 영업이익의 60%를 차지할 만큼 급성장하자 GE캐피털을 통해 조달한 돈으로 다른 계열사의 해외 사업에 투자하는 '문어발 확장'을 계속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GE의 몰락에 대해 "금융업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고, 경쟁력 저하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손쉬운 금융사업에서 나오는 이익에 취해 본업인 제조업 경쟁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GE캐피털은 직격탄을 맞아 연방정부에서 1390억달러를 빌려 겨우 연명하게 되자 이멜트는 "제조업 근본으로 돌아가자"며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이미 거함은 기울어가고 있었다. 지난해 8월 '구원투수'로 등장한 존 플래너리 CEO도 10개가 넘는 사업을 정리하고 전력 부문에서 1만2000명을 감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GE 주가는 다우지수가 15% 오른 지난 1년간 혼자서 53%나 떨어졌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지난해 GE 지분 전량을 처분한 것도 GE 주가에는 치명타가 됐다. GE 주가는 19일 12.95달러로 마감, 다우지수 편입 30개 기업 중 최고가 종목인 보잉(344.47달러)의 30분의 1 남짓한 수준까지 떨어져 퇴출이 불가피하게 됐다.

GE의 퇴출로 다우지수에서 전통 제조업은 보잉, 캐터필러만 남게 됐다. S&P 다우지수 위원회는 "미국의 경제는 변했다. 이제 미국 경제에서 소매와 금융, 헬스케어, 테크놀로지 기업이 더 대표성을 띤다"고 설명했다.

GE의 몰락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나락에 빠지게 되는 게 냉혹한 기업현실"이라며 "이런 때에 개별기업의 사업 내용까지 간섭하며 경쟁력을 옭아매는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 게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A)

미국 기업정보회사 다우존스가 뉴욕 증시에 상장된 애플, 나이키, 보잉, 코카콜라, 월트디즈니 등 30개 우량 기업의 주가를 평균해 산출하는 지수. 1896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장 찰스 다우(Dow)가 발표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나스닥 종합지수와 함께 미국 증시 동향과 시세를 알려주는 3대 지수 중 하나다.

[뉴욕=김덕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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