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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NOW] 내 젊은 날의 초상… '영정사진' 찍는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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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니 취업·인간관계 스트레스 풀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취업 준비생 이동환(28)씨는 지난달 자기 영정 사진을 찍었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갑자기 찾아올 죽음에 대비해 가장 생기 있는 모습을 남기세요'라는 한 사진관 홍보 문구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이씨는 "촬영하면서 소중한 사람에게 줬던 상처가 생각났다"며 "주위 사람들을 더 아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영정 사진을 찍는 20~30대가 늘고 있다. 한 사진가가 영정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20대 신청자가 몰렸다. '젊은 영정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관도 생겼다. 젊은 층의 호기심과 사진관 마케팅이 결합된 면도 있지만 당사자들은 "나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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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홍산(23)씨는 지난 4월 페이스북에 '영정 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홍씨는 "지난해 대학 동기 장례식에 갔다가 '죽음은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4만원을 내면 영정 사진을 찍어 주는데 지금까지 두 달간 20대 75명이 신청했다. 홍씨는 "나처럼 생각하는 젊은이가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작년 2월 서울 종로구에 문을 연 한 사진관은 젊은 고객을 상대로 영정 사진을 촬영해 준다. 비용이 10만원이지만 20~30대 고객들이 찾는다. 고객들은 주위에 남기고 싶은 글을 써서 카메라 앞에 선다. 일종의 유서다.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겨라'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 어디서든 듣고 있을게' 같은 글을 남긴다고 한다. 사진사 이슬기(37)씨는 "유서를 쓰며 눈물 흘리는 사람이 많아 촬영이 자주 지연된다"며 "다음 주에도 예약이 차 있다"고 말했다.

영정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해 이들은 "죽음을 떠올리면 당장 눈앞에 놓인 학업과 취업,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부산에 사는 권희림(26)씨는 "그동안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영정 사진을 찍으면서 '남들 눈 의식하지 않고 나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영정 사진이라고 하지만 크기가 클 뿐 젊은이들이 구직 때 찍는 증명사진과 별다르지 않다. 사진사 이슬기씨는 "영정 사진을 찍을 때는 증명사진 찍을 때처럼 '환하게 웃어 달라'는 이야기를 안 한다"며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의 마음가짐이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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