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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주 52시간 노동’ 어겨도 처벌·단속 6개월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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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당정청, 경총 계도기간 요구 받아들여

양대노총 “기업에 잘못된 신호” 반발

‘고소·고발건 처벌 안하면 위헌’ 논란도



한겨레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장하성 정책실장(왼쪽부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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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정부·청와대가 다음달 1일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부터 먼저 실시되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6개월간 단속이나 처벌을 하지 않는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노동시간 단축에 부담을 느끼는 재계 요구를 받아들인 것인데, 노동계는 “기업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나 대리인이 법정 근로시간 위반 등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사용자를 고소·고발하는 경우, 이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건 정부의 월권을 넘어 위헌적 행태라는 노동계·법조계의 지적도 나온다.

박범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0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고 제도 연착륙을 위해 올해 말까지 6개월간 계도기간, 처벌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회의엔 추미애 민주당 대표, 이낙연 국무총리,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앞서 이낙연 총리는 회의 머리발언에서 전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단속·처벌보다는 6개월간 계도기간을 부여해달라”며 고용노동부에 낸 건의문을 언급하며 “연착륙을 위한 계도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그간 공개적으로 말하긴 어려웠지만, (단속·처벌 유예) 논의를 해왔다”며 “다만 처벌 여부는 행정부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공식화하는 데 약간의 고민이 있었는데 모처럼 경총에서 제안을 해와 (긍정) 응답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정·청의 이번 결정은 예정대로 근로시간 단축을 실시하되, 이에 대한 현장의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점과 시행 초기 사업장의 처벌 부담 등을 함께 고려해 이뤄졌다.

당·정·청의 ‘주 52시간 위반 사용자 처벌유예’ 방침이 나오자,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주 52시간 문제는 10년 전부터 논의돼온 사안이다. 시행을 불과 열흘 남기고 ‘계도기간’을 언급한 것은 기업들에 ‘법을 안 지켜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도 “경영계의 요구는 바로 수용하고 노동계의 요구는 일관되게 무시하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을 비롯해 (이번 결정도) 후퇴하는 여러 노동정책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노동자가 법정 근로시간을 위반한 사용자를 고소·고발할 때, 이를 처벌하지 않고 넘길 수 있느냐 하는 점도 논란거리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준수 의무를 위반한 사용자는 형사처벌(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형) 대상이다. 박범계 수석대변인은 이날 당·정·청 회의와 관련해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라도 주 52시간 적용을 위한 일정한 준비 기간이 필요한 점과 사업주가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면 그런 사정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와 여당의 방침처럼, 국민의 공감대가 있다면 수사하는 쪽에서도 입건 유예 등 재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왕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주 52시간 위반과 관련한 진정이 제기될 때 시정지시를 내릴 수 있는데, 시정지시 이후 고발까지 이르는 기간을 애초 1~2주에서 최대 6개월까지 늘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정책관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용자를 노동자나 제3자가 고소·고발할 때 처벌을 하지 않는 건 일종의 사법권 침해로 불가능하지만,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려고 실질적으로 노력했다면 조사 과정에서 이를 감안하겠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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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근로기준법 개악 중단 및 노동시간 특례폐기 촉구 과로사 아웃 대책위’ 기자회견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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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류하경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근로시간 준수 의무 위반에 관한 처벌 규정은 강행규정인데 당·정·청이 근로기준법을 대놓고 무시하겠다는 것”이라며 “누가 봐도 범죄자를 봐주자는 것으로, 월권행위이자 위헌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류 변호사는 “아무리 국무총리나 국무조정실이라도 실정법을 마음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며 “시정지시 기간을 (6개월로) 늘린 것도 행정소송이 가능한 재량권 남용, 일탈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고위 당·정·청 회의에선 “확장적 재정정책을 운영해야 한다”는 여당의 요구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당초 내년 재정확대 증가율이 5.7%지만, 그것보다 더 확장 운영하겠다”고 긍정 답변을 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박범계 수석대변인도 “홍영표 원내대표가 ‘깜짝 놀랄 만큼 재정지출을 확대해달라’, 김태년 정책위의장도 ‘상상 이상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했고, 김동연 부총리는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당·정·청은 저소득층의 소득 수준이 나빠지는 데 대한 대책으로, 저소득 맞춤형 일자리 및 소득지원 방안을 새달 초 발표하기로 했다. 또 ‘규제 샌드박스’(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 등 규제혁신 5법을 조기에 입법화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 이후 고용노동부의 대응이 미진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영지 이지혜 박기용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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