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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지평선] 유권자 탓하는 ‘낙선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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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6ㆍ13 지방선거가 끝나자 건물과 도로에 붙어 있던 홍보 현수막이 ‘당선 사례’와 ‘낙선 사례’ 현수막으로 교체됐다. 예전에는 붓글씨로 전봇대와 담벼락 등에 붙이기도 했지만 요즘은 현수막이나 문자메시지, SNS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래서인지 낙선 소감도 “성원에 감사드린다” “진심으로 고맙다” 등 당선 사례와 구별되지 않을 정도다. 다음 선거를 기약할 뿐 아니라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모습이다.

▦ 패배를 인정하고 진심이 담긴 낙선 사례는 기억에 오래 남는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에 출마해 선전한 유시민 후보의 낙선 소감은 지금도 ‘명(名) 낙선 사례’로 꼽힌다. “당선하신 주호영 의원에게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한민국과 대구와 수성구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하리라 기대합니다. 패인은 오직 한 가지, 제 자신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당시 주 의원이 밝힌 “제가 이명박 대통령 측근이라서 박근혜 의원님을 지지하시는 많은 분께서 홧김에 유시민 후보를 찍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유 후보를 지지한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는 당선 소감과 대비되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 이번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자유한국당 일부 후보가 내건 현수막이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경기도의원에 낙마한 최성권 후보는 “이재명 같은 자를 경기도지사로 당선시키신 여러분, 최성권 낙선시켜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서울 구로구청장 선거에 나섰던 강요식 후보는 현수막에 “인물보다 정당을 택한 민심, 반성하고 새롭게 뛰겠습니다. 28.1% 고맙습니다”라고 썼다. 유권자들을 조롱하거나 인물보다 정당을 보고 투표한 유권자 탓에 자신이 떨어졌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내용이다.

▦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도 구설수에 올랐다. 안 전 의원 지역구인 노원병 재보선에서 낙선한 같은 당 이준석 후보는 “안 후보는 낙선 현수막에 당명도 넣지 않았다”며 “그러니까 과연 이 사람이 당을 생각하고 있는 거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힐난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진보 정당 후보자들은 “이제 다시 시작”이라며 유권자들에게 감사와 희망의 낙선 사례를 전했다. 당선자든 낙선자든 선거전보다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한 법이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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