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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벌레는 훌륭한 ‘단백질 장난감’이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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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20. 벌레의 세가지 ‘효능’


한겨레

전등에 붙은 하루살이를 노리는 라미와 보들이.


나날이 기온이 오르고 있다. 라미와 보들이도 슬슬 바닥에 배를 깔고 드러눕기 시작했다. 여름이 왔다.

이 여름과 함께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밤에도 문을 열어 놓기 시작하면서 방충망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날벌레들이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사람에겐 분명 불청객인데, 라미와 보들이에겐 또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벌레가 제공하는 ‘기능’은 여러 가지다. 우선 장난감 기능.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파리가 등장하면 라미와 보들이는 눈을 떼지 못한다. 그 파리를 쫓아 냉장고 위로 싱크대 너머로 쉴 새 없이 쫓아다닌다. 하루는 집사의 허리 높이쯤 되는 벽에 하루살이가 앉아 있었다. 먼저 발견한 라미가 다리를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라미가 후퇴하고 보들이가 섰다. 역시 보들이의 다리도 닿지 않았는데… 그 순간, 폴짝 뛰어오른 보들이가 앞발로 하루살이를 낚아채는 게 아닌가. 게으른 집사 탓에 평소 사냥놀이를 자주 못하는 두 냥이에게 벌레는 살아있는 장난감 역할을 한다. 보들이도 뛰어오르게 만든다.

다음은 통합 기능. 같은 집에 살지만 관심거리도 에너지 총량도 다른 두 냥이는 레슬링할 때를 제외하면 잘 붙어있지 않는다. 날씨가 더우면 더욱 그러하다. 보들이는 주로 스크래처 위에 앉아 있고 라미는 싱크대 주위를 서성이는 게 주된 일과다.

그런데 벌레를 발견하면 둘은 하나가 된다. 한 놈이 먼저 벌레를 발견한 뒤 지키고 서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나머지 한 놈이 와선 나란히 선다. 벌레가 발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으면 “캭캭~” “캬르르르캭” 하는 채터링(고양이가 사냥감을 발견했을 때 내는 본능적인 소리)도 함께 한다. 그 과정을 보다 보면 ‘내가 모르는 신호를 두 냥이가 끊임 없이 서로 주고 받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벌레의 마지막, 아주 중요한 기능은 단백질 공급 기능이다. 라미든 보들이든 벌레를 발견하면 그 크기와 상관없이 일단 발로 낚아챈다. 그리곤 곧바로 입으로 가져간다. 하루살이는 물론이고 모기, 거미까지 먹는 걸 봤다. 한번은 곤충을 발견한 라미가 일단 입 안에 넣었다가 냄새가 고약했는지 바로 뱉어내고는 온몸을 꿀렁거리며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엔 보들이가 바퀴벌레를 잡아먹을 뻔 했다. 보들이가 앞발을 벽 쪽으로 가져가길래 뭔일인가 싶어 보니 손가락 두 마디 만한 바퀴벌레가 벽을 타는 중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곳까지 보들이 발이 닿지 않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해충인데 고양이 몸에 나쁘지 않을까 걱정돼 알아본 적이 있다. <한겨레>가 만드는 동물뉴스 ‘애니멀피플’을 통해 수의사에게 문의한 결과 고양이가 벌레 등을 잡아먹어도 해롭지 않다는 답을 얻었다. 야생의 고양이들은 메뚜기나 나비도 잡아먹는다. 집안에서 사는 고양이에겐 파리나 모기, 바퀴벌레가 나비나 메뚜기 역할을 대신한다고 했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기온이 올라가면 입맛이 떨어지는 건 매한가지인가 보다. 최근 라미, 보들이 모두 남기는 사료 양이 늘었다. ‘닭가슴살+황태+애호박+당근’ 스프도 1년 가까이 먹였더니 예전만큼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뭔가 색다른, 야생스러운, 재미와 맛을 한번에 줄 수 있는 먹잇감이 필요할 때다. 서대문에 사는, 북한산에 사는 벌레들이여, 라미·보들이네로 오라!

박현철 서대문 박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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