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의 임바른 판사, 김명수
모범생서 세상 물정 아는 판사로 거듭나
아이돌 꼬리표 떼고 안정된 연기 선보여
젠더 감수성 높이는 사이다 대사도 공감
불의를 못참는 박차오름(고아라 분) 초임 판사가 배정된 민사 합의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성동일은 한세상 부장판사, 김명수는 임바른 우배석 판사를 맡았다. [사진 JT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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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는 매우 의외의 결과다. ‘슈츠’에서 변호사로 열연하고 있는 장동건-박형식의 빵빵한 브로맨스 케미에 비해서는 캐스팅이 약하고, 법 대신 주먹이 먼저였던 조폭 출신 변호사 이준기(‘무법변호사’)와 포토 메모리를 갖춘 검사 정유미와 시신을 부검하는 법의관 정재영(‘검법남녀’)에 비하면 캐릭터의 임팩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장을 종횡무진하는 검사나 변호사에 비해 기록에 주로 의지해야 하는 판사의 직업적 특성 역시 이들을 덜 드라마틱하게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한 사무실에서 일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 김명수는 정해진 룰에 따라 일만 하는 인공지능 판사에 가깝다면, 고아라는 물불 가리지 않고 일단 뛰어들고 보는 감성 판사다. [사진 JTBC] |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에게도 계속 말을 건넨다. 누가 봐도 천인공노할 살인 사건을 다루는 형사부가 아닌 고깃집에서 불판에 데인 아이 때문에 찾아온 엄마, 광고회사 부장의 카톡 성희롱을 견딜 수 없는 인턴사원 등 생활밀착형 사건을 주로 다루는 민사부가 배경이니 공감도, 몰입도 쉽다. 언제 내 얘기가 돼도 이상하지 않을, 우리 곁에도 널리고 널린 이야기들이니 말이다.
'미스 함무라비'의 문유석 판사 |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출연 배우의 몫이다. 배우가 관객과 접점을 만들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잘 쓴 대본도 망하기 십상이요, 그 메시지가 전달될 기회조차 박탈되는 게 드라마와 영화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배우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보인다. 이미 ‘응답하라 1994’(2013)에서 부녀지간으로 호흡을 맞춘 성동일(한세상 부장판사 역)과 고아라는 서로 상대방의 고리타분함 자유분방함을 견디지 못해 악다구니를 쓸지언정 믿고 의지한다. 여기에 옆방 정보왕 판사를 맡은 류덕환이나 능력자 실무관 역의 이엘리야까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미스 함무라비'에서 판사들은 법원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고아라가 밥 사준다는 말에 따라 나섰다가 시장에서 만연하고 있는 성희롱을 목격하고 놀라고 있는 류덕환과 김명수의 모습. [사진 JT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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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세상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뛰어드는 박차오름 판사를 만나 조금씩 변화하는 역할이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들을 때면 “무슨 근거로?”라고 되묻던 그가 점차 옆에서 함께 뛰는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워 나가면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 또한 적지 않을 테니 말이다.
2010년 데뷔해 벌써 9년차 아이돌이 된 인피니트의 엘이 애교 섞인 춤을 추고 있다. [사진 MBC에브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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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이 같은 세간의 인식을 모르지 않는 듯했다. 어렵게 얻은 마음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실제 법원에 가서 진행되는 재판을 지켜보고, 대본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문유석 판사에게 직접 연락해 상담하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문 판사 역시 판사로서 법의 정의와 기능, 나아가야 할 방향 등 고민을 곳곳에 심어 놓은 드라마에 자신의 분신 같은 임바른 역할로 임하고 있는 배우에 더욱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었을 터다.
지난해 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에서 천민 이선을 연기한 김명수. [사진 MBC] |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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