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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나는 농부다] 매년 쌀 ‘700t 매진 신화’ 쓰는 40대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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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산부터 판매까지 '논스톱'...연 매출 10억 올리는 김탁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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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농장 김탁순 대표. 김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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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10~20년 후 농민이 스포츠카 타는 시대가 올 것"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가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해 한 말이다.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농사짓는 기자’가 대한민국의 ‘촉망받는 농업 CEO’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5월 봄기운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경기도 최북단 연천군 백학면. 김탁순(49) 대표는 이곳에서 20년째 쌀농사를 짓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까지 더하면 30년째 쌀농사를 짓는 셈이다.

김탁순 대표의 아버지는 김 대표가 대학 2학년 때 트랙터 사고로 돌아가셨다. 당장 농사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대학을 마쳐야 했고 군대도 다녀와야 했다. 그 해 농사는 다행히 아버지가 준비해 둔 못자리로 마무리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김 대표는 농촌이 아닌 도시의 염색 자동화 설비 회사에 입사했다. 당장 농부가 될 수도 있었지만 도시민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렇게 도시 생활을 하던 1998년 김 대표는 귀농을 결심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제 농사는 답이 없다”라고 했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쌀값 하락, 생산 과잉 소식을 보도했고 도시 생활이 익숙했던 아내마저 귀농을 반대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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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순 대표가 도정된 쌀을 포장하고 있다. 김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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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았죠. 아내에게 절대 손에 흙 안 묻히게 할 테니 허락만 해달라고 했어요.” 아내는 김 대표의 진심 어린 설득에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믿어보겠다”는 말로 귀농을 허락했다.

김 대표는 아버지에게 배운 농사 기술과 도시 소비자로 살아본 경험을 조합해 상위 1%의 쌀을 생산하겠다 다짐했다. 자신도 있었다. 아버지의 농사 비법을 수십 년간 보고 배웠다. 도시 생활로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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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쌀 생산은 물론 탈곡, 포장까지의 과정을 처리하는 RPC 시스템도 갖췄다. 김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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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농촌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했던 농약을 치우고 오리와 우렁이를 논에 들여 잡초를 제거했다. 화학비료 대신 친환경 비료를 사용하며 무농약 쌀 인증도 받았다. 매년 새로운 도전을 통해 GAP(농산물우수관리), 경기농어민 고품질 쌀 부문 대상, 스타팜 등 여러 인증서와 상장이 더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쌀’을 생산해도 정부의 쌀 수매가는 매년 하락했다. 친환경 우렁이 농법 초기에는 “앞선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쌀 값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정부나 농협이 가격과 방침을 정하면 농업인은 이를 일방적으로 따라야 했다. 쌀 유통창구가 독점화돼 발생하는 문제점이었다.

김탁순 대표는 이런 문제에 부딪히자 ‘생산부터 소비까지’라는 경영 목표를 세웠다. 생산뿐 아니라 판매까지 직접하겠다 마음 먹었다. 먼저 유통 다변화를 위해 2003년 ‘백학쌀닷컴’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당시 농촌은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 인터넷을 활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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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가 운영하는 SNS 채널만 5개가 넘는다. 김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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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를 이해하고 소통도 시작했다. 소비자의 생각을 읽고 조언을 들으며 부족한 부분은 차츰 채워나갔다. 소비자는 나와 가족이 먹는 쌀이 어떻게 생산되고 수확되는지 생산과정 하나하나를 궁금해했다. 김 대표는 모내기부터 수확, 가공까지 모든 모습을 빠짐없이 거의 매일 SNS에 공개했다. 영농일기를 공개적으로 쓴 셈이다.

홈페이지 개설 후 몇 달간 한 포도 판매되지 않던 쌀은 입 소문을 타며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김 대표가 직접 경작해 생산한 60t의 쌀 모두가 홈페이지로 유통됐다.

"제가 생산한 쌀은 한 달이면 모두 팔려요. 그래서 주변 농가의 쌀을 수매해 공급하는데도 쌀이 부족해요." 김 대표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쌀 판매량을 늘렸고 지난해에만 700t을 판매했다. 이중 절반인 350t은 온라인을 통해 판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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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생산한 볍씨와 도정한 쌀. 김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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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순 대표는 마을 공동 사업인 팜스테이(농촌체험마을) 대표도 함께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팜스테이 전국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백학면 '새둥지마을'은 10여 년 전 우연히 찾은 일본에서 체류형 주말농장을 보고 아이디어를 내 만든 프로그램이다.

새둥지마을은 매년 2만 명 이상의 소비자가 찾는 백학면의 또 다른 수익원이 됐다. 민박과 두부 만들기·모내기 체험으로 마을은 연 5억원의 부수입을 올린다. 농촌에 수익이 발생하고 일자리가 늘면서 10년 전 30호였던 가구수는 지금 70호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당연히 주민수도 늘었다.

김 대표는 새로운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년 일본을 방문해 농가와 소비자 동향도 파악한다. 쌀 문화 국가인데다 우리와 가장 비슷한 생활 환경을 가져 한국 농촌과 쌀 소비량 등 미래를 예측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찧은 쌀이 아닌 현미를 구입해 먹는 가정이 점차 늘고 있어요. 우리도 차츰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이미 가정용 쌀 도정기가 전국에 2만대 가량 판매됐고 홈페이지를 통해 볍씨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느는 것을 보면 그렇게 예상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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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를 통해 주문된 쌀을 배송하기 위해 택배 차량이 들어왔다. 김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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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순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농업에 유통 사업을 접목하려는 준비도 하고 있다. 정수기를 대여하듯 쌀 도정기를 빌려주고 현미 쌀과 볍씨를 공급한다는 계산이다. 이미 사업 구체화를 위해 적합한 도정기를 찾는 실험에 들어갔다.

김 대표가 쌀농사를 체계화 하고 새로운 산업과 연계하려는 이유는 바로 아들을 위해서다. 본인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2대 농업인이 됐고, 이를 더 발전시켜 아들이 3대 농업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저는 젊은 친구들에게 농사를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제 아들에게도 권했고 아들도 농부가 되겠답니다. 제 아버지가 열심히 농사를 지으셨고, 저는 경영에 시스템을 더했어요. 이제 제 아들이 또 무언가를 더해 더 좋은 쌀을 만들어 주길 바라고요. 그걸 조금 더 수월하게 해주려 더 노력 중이죠"

연천=글·사진 김태헌 기자 11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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