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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정운찬 칼럼]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완화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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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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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9년 봄에 서울대에서 안식년을 허가받아 독일 보쿰대학에서 초빙교수를 하였다. 당시 독일 경제는 막대한 통일비용과 노동시장의 경직성, 대기업의 해외 이전 등으로 13% 이상의 실업률을 기록하며 ‘유럽의 병자’라는 평가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가본 독일은 400만명이 넘는 실업자들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진통이 있었지만 상당히 안정된 사회라는 인상을 받았으며, 왠지 독일 경제는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였다. 독일은 오래전부터 중산층이 탄탄한 국가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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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중소기업을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고 하는데 ‘슈탄트’는 신분이라는 뜻이므로 ‘중산층’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독일은 중소기업을 사회의 중산층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 즉 중산층이 탄탄하기에 실업률이 크게 올라가도 중산층의 일자리가 다른 계층보다 빨리 사라지는 양극화(polarization)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만들기 등이 떠오르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을 저해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라고 생각한다. 작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50인 미만 기업체의 월평균 소득은 238만원이며, 50~300인 미만은 312만원, 300인 이상 대기업은 432만원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커진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의 임금수준은 대기업 대비 1993년 73.5%에서 2017년 55.8%로 악화되었다. 불과 24년 사이에 17.7%포인트가 벌어진 것이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2015년 기준 일본은 77.9%, 미국과 영국 76.0%, 독일은 73.9%로 우리와 큰 대조를 이룬다.

임금격차는 다양한 분야에 존재한다. 학력, 경력, 성별, 연령별, 직종별 격차의 대부분은 시장경제의 작동 결과에 따라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의 규모, 노조의 유무나 협상교섭력 차이로 인해 임금격차가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 문제의 본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른 고용형태나 업종별, 성별 차이보다는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전체 임금 평균의 191%나 되고 소상공인 전체 임금 평균과 비교하면 313% 수준에 달한다. 미국의 112%와 127%, 일본의 116%와 154%에 비해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가 국제적으로 설명이 힘들 정도로 심하다. 이는 우리 노동시장 구조가 대단히 왜곡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최근 권기홍 박사가 이끄는 제4기 동반성장위원회는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격차가 우리 경제의 많은 문제점을 초래한다고 보고 임금격차 해소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업이 협력사에 납품대금을 줄 때 제값 주기, 제때 주기, 상생결제로 주기 등 3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협력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증대시킴으로써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나아가 국가경제의 선순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동반위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에 직접 나서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임금은 노동자가 노동의 대가로 받는 보수다. 국가경제에서 임금은 구매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업 규모에 따른 지나친 임금격차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임금격차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대기업은 적어도 납품단가를 현실화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기업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협력 중소기업의 희생을 강요한 대가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가격경쟁에서 유리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협력 중소기업을 고사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동반 몰락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성과공유제나 이익공유제(협력이익배분제)를 통해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증가시켜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갑질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근본원인은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대기업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종속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독일의 실력 있는 ‘미텔슈탄트’들은 구태의연한 수직적 종속관계가 아니라 독자적인 실력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실력자들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작지만 단단한 중소기업들의 임금수준이 대기업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음을 주목해야 한다.

셋째,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으로 시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도 필요하지만 경제 양극화의 폐단을 대기업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동반위가 추진 중인 임금격차 해소운동에 대기업은 물론 공기업들도 적극 나서 건강한 경제생태계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경제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도 대단히 의미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사회의 중산층으로 만들기 위해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이 가장 화급한 시대적 과제다. 지금처럼 소상공인의 임금이 대기업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면 10년에 모을 수 있는 돈을 30년 걸려 모아야 한다는 무서운 현실 때문이다. 중산층이 탄탄하면 나라(경제)는 튼튼하다. 그러나 중산층이 탄탄하지 못하면 사회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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