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학교의 안과 밖]머리 따로 몸 따로 교육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수능에서 모든 과목을 치를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시기에 성장시킬 감수성이나 덕성과 대학 진학 이후 필요한 잠재력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줄여서 ‘음미체’로 표현하는 예체능 과목은 입시에서 늘 무시되었다. 예체능 영역은 기본적으로 재현 능력, 즉 실기와 관련이 깊다. 악기를 다루는 방법을 글로 이해한 것과 실제 그 악기로 재현하는 능력은 일치하지 않는다. 입으로 축구선수 ‘메시’의 플레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체능이 입시에서 소외되면서 예술과 체육 분야에서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재현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경향신문

머리로 이해한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간과된 것은 특정 과목에 그치지 않았다. 실험을 기획한 뒤 기구를 다루어 가설을 재현하는 능력은 입시에서 평가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어려웠으나 획기적인 보완책도 별로 없었다. 과학고나 일부 자사고 등을 제외하면 자연계열 학생들 다수가 시·도 교육청에서 붕어빵처럼 동일하게 일선 학교에 공급하는 학년별 실험 프로젝트만을 수행하는 실정이다. 문과는 더 심하다. 답사 없는 지리와 역사, 작문 없는 국어, 인터뷰 작성 없는 사회문화가 현실이다. 몸으로 느끼고 손으로 재현하는 과정은 ‘대학 가서’ 하면 된다는 식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실천하는 힘을 기르고 대학에 가서 이론적 모델을 공부하면 안되는가.

‘머리 따로 몸 따로’는 윤리에서 결정적으로 한계를 드러낸다. 선량한 사람이 ‘제주도에 갔더니 어느 나라 사람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라는 식의 혐오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 나라 관광객이 자신을 해하지 않았음에도, 숫자가 많고 알 수 없는 말로 시끄럽게 떠들었다는 이유로 혐오한다. 이론의 세계에서 관용과 배려를 습득한 사람이 현실세계에서 쉽게 범하는 오류이다. 대략 10년 전 한국인의 의식에 담긴 모순이 단적으로 드러난 통계가 있었다. 성장과 복지 가운데 복지가 중요하다는 응답이 70%였음에도, 증세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대답 역시 70%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의 윤리가 개인적 이해관계를 초월해 사회로 확장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윤리에서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증세에 동의한다는 입장이 절반을 넘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의 차이 등 여러 변수가 있었겠으나 그 10년 사이 한국인들은 모순된 인식 속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으로 본다. 이론 속 윤리가 현실화되기 위해 10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안 나오는 이유로 재현 능력의 부족을 지적한다. 숱한 시행착오와 반복 체득한 손기술 없이 훌륭한 실험 결과가 나오기 어려우며, 추상적 이론의 구축 역시 경험으로 체득한 구체성에 의존한다. 수원 화성의 축조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조상들이 쌓은 벽돌의 얇은 결을 느껴야 한다. 사회적 정당성이 나에게 손실이 되는 딜레마를 견디지 않고 의식은 성장할 수 없다. 이러한 감각은 어린 시절부터 습득해야 한다. 성장기에 몸으로 받아들인 감각이 다양하고 정밀할수록 이론을 구축하는 창의력도 압도적으로 성장한다. 입시가 막고 있는 한 재현 능력은 놀이나 취미, 한가한 여흥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른이 되면 늦다.

<정주현 | 논술강사>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