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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김부겸 선행´ 겪은 KTX 승무원, 이름 밝히기 꺼린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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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근 가장 화제가 된 정부 각료다. 김 장관이 지난 20일 지역구인 대구에서 고속열차(KTX)를 타고 서울에 오는 길에 한 ‘선행’ 때문이다. 한 승객이 KTX 승무원을 상대로 소란을 피웠는데, 이를 본 김 장관이 승무원을 보호하고 승객을 제지한 사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알려졌다.

김 장관의 미담은 화제의 중심에 올랐지만 이면에는 KTX 승무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있었다. 매일 승객 폭언에 시달리고, 부족한 인력으로 승객 요청에 일일이 응대할 수 없는 경우가 잦다고 KTX 승무원들은 입을 모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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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객에게 ‘거친 말’을 들었던 KTX 승무원 ㄱ씨(31)는 24일 오전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에서 “승객의 거친 항의를 받는 건 사실 매일 있는 일”이라고 했다. ㄱ씨는 “소란을 피웠어도 고객은 고객이다. 언제든 기차에서 다시 뵐 수 있는 고객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씀드리기 쉽지 않다”며 “그 분도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잘 정리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ㄱ씨와 일문일답.

-당시 상황은 어땠나.

“승객이 열차를 잘못 탄 상황이었다. 승차표에 적힌 자리에는 다른 승객이 앉아 있었고, 안내를 해드리려 하는데 화를 내시는 상황이었다. 이때 고객님이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셨고, 다른 승객도 많으셔서 쪽지로 ‘통화 끝나시면 O호차 O번에 앉으시면 된다’고 전해드렸다. 통화를 마치고 다른 좌석을 웃으며 안내해 드렸더니, 본인은 화가 났는데 승무원이 웃으니까 더 화가 나셨던 것 같았다. 승객께서 ‘이게 웃을 만한 상황이냐’고 항의하셨고, 이때 김부겸 장관님이 제지해주셨다.”

-소란이 일단락되고 난 뒤 김부겸 장관이 따로 조치를 취했나.

“혹시나 제가 또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셨는지 복도로 나오셨다. 명함을 주시면서 만약에 일이 생기면 말을 하라고 하셨다.”

-승객들이 소란을 피우는 일이 많나.

“엄청 많다. 사실상 매일 겪는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열차 내에서 소란을 피우는 승객을 만나는 승무원이 있을 거다. 이렇게 이슈가 된 것도 장관님이 막아주셨기 때문이다. 저희한테는 엄청 흔한 일인데…”

-보통 어떤 일 때문에 승객들이 화를 내나.

“승차권 업무를 하다보니 돈과 관련된 일이 많다. 무임승차 또는 다른 열차 승차권으로 타는 분도 제법 계신다. 기차 안에서 승차권을 변경해야할 상황이 생길 때, 돈을 더 지불해야할 때도 있는데 돈 문제는 다들 예민할 수밖에 없다. 보통 이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진다”

-승객들이 불만을 표하는 방식은 어떤가.

“폭행은 종종 있지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폭언은 매우 자주 발생한다.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육두문자를 쓰며 욕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너 이름이 뭐냐’고 협박하듯 말하시는 게 가장 흔한 패턴이다. 이름을 적는다지, ‘가만두지 않겠다’ 이런 건 정말 너무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경향신문

기사에 실명을 써도 되냐고 물어보자 ㄱ씨는 난색을 표했다. ㄱ씨는 “이름을 쓰는 것과 관련해선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다. 고객들이 항의할 때 “당신 이름이 뭐냐”고 자주 물어 이름이 거론되는 게 꺼림칙하다는 이유였다. 워낙 많은 승객들을 응대하다보니 ㄱ씨는 쉬는 날에 사람 많은 곳은 가지 않는다. ㄱ씨는 “휴일에는 대개 집에서 쉰다”고 했다.

-회사가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를 돕기 위한 장치를 지급하나.

“승무원 스스로 몸을 보호할 만한 장비는 없다. 무전으로 팀장님을 부른다. 일단 주위 다른 고객들에게 승무원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게 우선 할 수 있는 조치다. 그런데 승객이 없는 야간 열차에서 강하게 항의하는 고객을 만나면 정말 무섭다.

-국토교통부 소속 철도사법경찰이 있는데, 열차에 다 탑승하지는 않나.

“거의 잘 안 탄다. 한 열차에 반드시 철도사법경찰이 타야 한다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안다. 만약 열차 내에서 흉기를 든 승객이 있거나, 승객끼리 싸우면 미리 철도사법경찰에 연락을 한다. 역마다 철도사법경찰이 있다.”

-불만을 표하는 승객이 있으면 회사에 보고는 하나.

“이번처럼 큰 건은 보고하지만 고객 소란은 너무 흔한 일이라 작은 사건은 보고하지 않는다. 사실 보고를 다 해야하는 게 맞다. 일지에 간단히라도 적어두면 나중에 민원이 들어왔을 때 방어 차원에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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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승무원들이 승객 민원 때문에 경위서를 회사에 제출했던 시절도 있었다. ㄱ씨는 “최근에는 민원 때문에 경위서를 내거나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질책을 받는 일은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ㄱ씨는 승무원들이 잦은 민원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꼽았다. ㄱ씨는 “그래도 승무원들의 노동 여건이 나아진 것은 노조 설립 이후”라고 말했다.



-승무원 수는 충분한가.

“20량 열차 기준 3명이 탄다. 승무원 2명, 팀장 1명. 너무너무 부족하다. 승객이 없는 시간에는 천천히 순회하면서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주말이나 출퇴근 시간대 승객분들이 불편할 수 있다. 온도를 조절해달라고 연락이 와도 다른 승객 민원 응대를 하다 늦게 가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표 끊고 저기서 특실 쿠키를 나눠드려야 하고, 이 칸에서 춥다고 하시고 저 칸에서 콘센트 충전기 접촉이 잘 안 된다고 하니 사실 3명으로 감당이 안 된다. 이럴 때 저희가 승객 분들 케어를 못 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가 많은가.

“승차권 확인, 선반 정리, 화장실 정리, 고객 질문 응대, 유실물 처리, 좌석 체크, 특실 쿠키 배분 등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일이 많다. 회사에서 승무원들이 쉽게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2015년 2월 대법원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KTX 승무원은 안전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담당하지 않는다면 다른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또다른 승객의 소란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당연히 다른 승객 안전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승무원들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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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승객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열차 이용하실 때 승무원들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면 모르는 척만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난감한 상황에 몰릴 때 다른 승객분들께서 옆에만 계시면 저희는 도움이 된다. 도와달라고는 말씀은 못 드려도 자리를 피하지는 말아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어주셔도 좋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옆에만 계셔주시면 감사드린다. 피하지만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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