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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란…‘월급 줄이기’ 꼼수 탓!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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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기본급+각종 수당 ‘복잡한 임금체계’ 만든 사쪽

최저임금 오르니 상여금·숙식비 등 넣자고 주장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 무력화될까 우려

한국노총 ‘통상임금·최저임금 함께 논의’ 제안


한겨레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을 논의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소위원회가 열릴 21일 오후 국회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개악 저지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어 국회로 진입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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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서울 국회의사당 건물의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속한 여야 의원이 모여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혀보겠다며 머리를 맞댄 겁니다.

회의가 끝난 건 새벽 2시30분께, 여야는 결국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헤어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을 따질 때 지금처럼 기본급만 볼 게 아니라 여기에 상여금까지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정의당은 이런 논의 자체를 최저임금위원회에 넘겨야 한다며 맞섰습니다. 얼마 전까지 환노위원장을 맡았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간밤에 회의장까지 찾아와 “상여금은 산입범위에 넣어야 한다”며 여야를 거들었습니다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습니다. 국회는 오는 24일 밤 9시 다시 환노위 고용노동소위를 열어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국회 밖 상황도 심각했습니다. 이날 낮 민주노총은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어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은 사실상 ‘최저임금 삭감법’”이라 주장했습니다. 한국노총도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산입범위 확대에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이번 논란은 앞으로도 쉽게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을 둘러싸고 갈수록 깊어지는 ‘노정’ 혹은 ‘노사정’ 갈등,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논란의 출발-복잡한 임금체계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란은 한국의 ‘독특한’ 임금체계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흔한 월급명세서’를 한번 살펴볼까요. 먼저 참으로 다양한 임금 항목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먼저 기본급이 있을 테고요. 여기에 ‘상여금과 여러 수당’이 붙어서 임금 총액이 구성됩니다. 수당 항목도 여러가지입니다. 식대, 교통비, 가족수당, 명절귀향비, 여름휴가비 등등. 심지어 김장비나 체력단련비 등도 있습니다.

월급명세서가 이처럼 복잡해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통상임금’을 최대한 줄이려는 기업의 ‘계산’ 때문인 건데요. 이를테면 노동자가 정해진 근무시간을 초과해서 일했을 때, 기업은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하거든요. 휴일근로수당이나 야간근로수당 등 초과근로수당은 통상임금의 1.5배예요.

여기까지만 설명해도 이미 눈 밝은 독자들께서는 눈치채셨을 겁니다. 초과근로수당의 지급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낮을수록, 기업은 노동자한테 ‘더 싸게 더 오래’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법원 판례가 달라졌지만, 과거에는 상여금과 복리후생 성격의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기업의 처지에서 살펴볼까요. 어차피 노동자의 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면,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유리할까요. 당연히 같은 금액이라도 기본급보다는 ‘상여금’이나 ‘수당’을 올리는 쪽이 이득이지요. ‘초과노동의 대가’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기본급이 아니라 상여금 등 ‘다른 임금’ 비중을 높인 1차적 책임은 기업, 곧 사용자한테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임금체계를 기형적으로 만든 책임이 기업한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라면 그런 임금체계를 만든 ‘절반의 책임’은 노조에도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노조 집행부는 임금 및 단체협상 과정에서 기본급 중심의 임금 인상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손쉬운’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을 올리는 방식에 동의하면서 적당히 타협해온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재계 주장―최저임금도 높은데 문제는 이런 임금체계가 최저임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에요.

현재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는 기본급과 매달 고정적으로 받는 수당만 대상으로 합니다. 매달 주지 않는 상여금이나, 모든 노동자에게 일괄적으로 주지 않는 각종 수당 등은 아무리 많이 받아도 최저임금에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재계는 이런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너무 좁아 기본급 수준은 낮지만, 상여금과 수당을 더한 임금 총액은 많은 노동자까지 최저임금 인상으로 ‘불합리한’ 혜택을 본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인상이 큰 폭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좁디좁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재계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상여금과 숙식비를 비롯한 복리후생적 수당 등이에요. 심지어 현금이 아니라 현물로 제공하는 숙소도 현금 가치를 따져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자는 주장도 있어요.

노동 분야의 여러 전문가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주장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노동자는 별도의 상여금을 받지 못할 때가 많고요, 특히 정기 상여금은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이라는 측면에서 기본급과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노동계 주장―최저임금 아직 낮아 재계의 주장에 노동계는 강력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지난해에 견줘 많이(1060원) 오른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산입범위를 넓히면 ‘도루묵’이 된다는 겁니다. 최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합원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 “정기 상여금과 숙식비가 산입되면 ‘최저임금 1만원’에 도달해도 노동자가 받는 실제 시급은 8천원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노동계의 우려처럼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정말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없앨까요? 간단히 말하면, 일부 노동자한테는 그렇습니다. 2013년 고용노동부가 100인 이상 사업장 978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임금 총액 가운데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기본급과 월 고정수당’의 비율은 67%에 그칩니다. 만약 이 67%에 포함되지 않는 상여금 등이 새롭게 산입범위에 추가되면, 일부 회사는 법정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당분간 임금을 인상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따라서 최저임금이 1만원에 도달할 때까지는, 산입범위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노동계의 태도입니다. “초과근로수당 줄이려고 상여금 비중 늘릴 때는 언제고, 최저임금 오르니까 이제 와서 임금체계를 바꾸냐”는 주장인 거죠.

통상임금·최저임금…노사 이익균형 필요 지금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란의 근본적 원인을 짚어봤는데요. 이와 관련해 한국노총에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통상임금의 기준을 함께 논의해보자는 제안도 나옵니다. 통상임금과 최저임금 ‘범위’를 두고 그때그때 각자 편한 대로 기준을 달리 적용하려 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노사의 이익균형을 함께 맞춰보자는 취지입니다.

과거와 달리 고용노동부와 법원은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인정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에서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례도 나오고 있습니다. 조금 설명이 복잡해질 수 있는데요. 간단히 줄여서 말씀드리면 ‘(지급의) 고정성’과 ‘재직자 조건’ 등을 따져 정기 상여금마저 통상임금에서 빠질 수 있다는 여지가 생긴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앞으로 최저임금을 따질 때 정기 상여금까지 여기에 함께 넣어서 인상 폭을 결정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요. 상여금이 최저임금에는 포함되고, 통상임금에서는 빠지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사용자에게는 유리하고 노동자한테는 불리합니다.

‘최저임금 1만원’은 많은 노동자가 꿈꾸는 미래입니다. 최저임금 현실화를 바라는 노동자와 산입범위 개편을 꾀하는 사용자 모두가 이익의 균형점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인건비를 최대한 줄여보려는 시도가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보장이라는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를 바탕으로 노사가 합리적인 접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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