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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북한이 소 잡는 칼로 닭 잡을까봐 SM-3 미사일 도입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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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2012년 10월25일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DDG 62)가 합동 탄도 미사일 방어 훈련의 일환으로 SM-3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미 해군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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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25일 경기도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하오펑 중국 랴오닝성 당서기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접견하고, 조태열 외교장관,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을 두루 만났다. 정부는 중국 지방정부 당서기로서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이라고 하오 서기의 방문 의미를 부여했다. 하오 서기 방한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간 꽉 막힌 중국과의 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신호를 중국에 보낸 것이다.



하오 서기가 한국을 떠난 다음날인 지난 26일 정부는 제161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급에 탑재할 해상 탄도탄요격유도탄을 국외구매(FMS)로 확보하기 위한 사업 추진기본전략안을 심의·의결했다. 해군의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에 사용할 탄도 미사일 요격 체계를 미국산 SM-3로 결정하고, 이 미사일을 미국 정부의 보증 방식으로 사 오겠다는 것이다. SM-3 도입은 한국과 중국 관계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만큼이나 폭발력이 큰 사안이다. 2016년부터 중국 관영언론들은 이 미사일을 두고 ‘해상 사드’라고 비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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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하오펑 중국 랴오닝성 당서기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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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 서기 방한과 맞물린 SM-3 도입 결정은 컨트롤타워 없이 외교·안보 부처가 따로따로 일을 처리하는 인상을 준다. 통상 SM-3같이 전략적 의미가 있는 무기 도입은 먼저 군 당국이 북한 군사위협 등 남북 대치상황과 한반도 지형 특성 등을 고려하여 무기체계별 장단점을 따져 최적 방안을 정리하면,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이 비용 대 효과 등 경제적 측면, 한미동맹과 주변국 관계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밟는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과정을 거쳐 SM-3 도입 결정을 했는지 알려진 바 없다.



SM-3 도입은 11년 넘은 해묵은 현안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3년 10월14일 국방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SM-3 도입 논란이 처음 불거지자, 김관진 국방장관은 이틀 뒤인 10월16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도입을 검토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이 없습니다.”



안보를 무척 강조하던 박근혜 정부도 SM-3 도입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했다. 이 미사일이 한반도 작전환경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군 내부 의견이 다른 데다 정부가 한·중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해군에겐 SM-3 도입이 숙원 사업이지만, 육군과 공군은 이 미사일이 가성비가 떨어지고 한반도 전장 환경에서 쓰임새가 뚜렷하지 않는 무기라고 봤다. 군 당국은 북한이 보유·개발하는 여러 종류의 미사일 가운데 실제 한반도에 위협이 되는 미사일이 무엇인지 가린다. 이후 이를 막을 무기체계나 군사력 건설 방향 등이 나온다.



한국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은 사거리 1000㎞ 이하인 단거리 미사일들이다. 남북의 길이가 1000㎞가량이라 북한이 이보다 비행 거리가 긴 미사일을 쏘면 한반도를 훌쩍 넘어 바다로 간다. 북한 중장거리 미사일은 일본과 미국을 겨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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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5월16일 SM-3 블록 1B 요격 미사일이 미 해군 이지스 순양함인 레이크 이리(CG 70)에서 발사되고 있다. 미 해군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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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통상적인 최고비행고도는 100㎞ 이하이다. 북한 단거리 미사일의 고도가 SM-3의 요격 고도 범위 밑이라, SM-3로는 북한 단거리미사일을 맞혀 떨어뜨릴 수 없다. SM-3는 요격할 표적을 찾는 탐색기를 보호하기 위해 발사 이후 탐색기 덮개를 덮고 비행하다 고도 90㎞ 이상에서 덮개를 분리한다. 이런 탐색기의 특성으로 SM-3는 약 100㎞ 이상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SM-3 블록ⅠB는 요격고도가 150~500㎞이며, 미·일이 공동 개발하는 개량형 SM-3 블록ⅡA는 요격고도가 1천㎞인 것으로 알려졌다.



‘SM-3가 한반도 작전환경에 맞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지난달 26일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려고 고각으로 발사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요격하는 데 SM-3가 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중장거리 미사일을 쏠 때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비행거리를 줄이려고 정상 발사각(30~45도)보다 높은 고각 발사를 하고 있다. 유사시 북한이 중거리미사일을 고각발사하면 비행고도는 높아지고 비행 거리가 짧아져 한국에 떨어질 수 있고 현재는 이를 요격할 미사일이 없는데 SM-3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북한이 소잡는 칼로도 필요하면 닭을 잡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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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월31일치 북한 노동신문은 “지상 대 지상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검수사격시험을 30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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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한이 상대적으로 싸고 쉬운 기술로 만들 수 있는 단거리미사일이 잔뜩 있는데도 어려운 기술로 만든 비싼 중장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사용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냐는 반론이 만만찮다. 닭잡는 칼이 없으면 소잡는 칼이라도 쓸 수도 있겠지만, 이미 닭잡는 칼이 충분히 있는데 굳이 소잡는 칼을 쓸 이유가 있느냐는 의문이다. 고각발사 가능성 주장은 각국이 용도와 작전환경을 고려해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로 나눠 개발하는 탄도미사일이란 무기체계의 본질적 기능을 무시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북한이 지난 2019년 이후 ‘북한판 이스칸데르’ 등 최대 비행고도가 50㎞ 안팎인 신형 단거리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를 개발해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려고 한다. 이 무기들은 고도가 너무 낮아 SM-3로 요격할 수 없다. 북한이 이런 무기들을 개발하면 한국을 겨냥해 중거리 미사일을 굳이 고각발사할 필요성은 더욱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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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인 정조대왕함이 시운전을 하고 있다. HD 현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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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3는 도입이 거론될 때마다 한국 방어가 아니라 주일미군이나 괌 기지의 미군 보호에 동원될 것이라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다. 북한이 이들 지역을 타격할 때 동원할 중거리미사일의 비행고도가 150㎞ 이상이라 동해에 배치된 한국 해군 이지스함에서 일본이나 괌으로 날아가는 이들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이 경우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체계(MD)에 한국이 가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3축 체계의 하나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에서 ‘한국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 엠디와 별개로 우리 영토를 적성국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지켜내는 방어체계를 구축한다는 뜻이다. 원칙적으로 한국형미사일 방어체계는 한국의 영토 내 작전지역을 한정시켜 고려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SM-3 도입 결정을 하면서 숱한 쟁점에 대한 공론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아 국회 예산 편성과 심의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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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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