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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신율의 정치 읽기] 경제와 거꾸로 가는 文대통령 지지율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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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에 역량을 집중했지만 지난 1년 동안 고용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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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사상 최고치를 찍는 통계 수치가 종종 나타난다. 먼저 청년실업률이 ‘최고치’다. 17년 만에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기 청와대에 실업률 상황판을 설치하고 실업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체감경기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불리는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라고 한다.

또 다른 기록 경신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다. 지난 5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를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한국갤럽이 지난 5월 2일과 3일 전국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한국갤럽이 5월 8일에서 10일 사이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률 18%) 대통령 지지율은 78%가 나왔다.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80%를 넘거나 이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니 놀랍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역시 사상 최고치를 자랑한다.

그런데 앞의 통계에서의 ‘사상 최고치’와 뒤의 여론조사에서의 ‘사상 최고치’가 서로 관련은 있지만 이율배반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통계 수치가 최악이면 대통령 지지율도 영향을 받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상황은 경제 상황에 대한 통계와 대통령 지지율이 따로 논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나라 중 유일하게 우리보다 잘사는 국가인 미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의 최고·최저 지지율을 살펴보자.

위의 조사는 2015년 2월 16일 기준이다(오바마 전 대통령 퇴임 직전 2년간의 여론조사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이후 2년을 포함해도 큰 차이는 없다). 다음 표에서 보면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8년간 최고치 지지율은 64%다. 2009년 2월이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기를 통틀어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한 때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70%를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적은 없지만 가장 진폭이 적은 꾸준한 지지를 받았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지지율이 80%를 넘은 경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 번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이 중 케네디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두 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각각 80%를 넘은 적이 있다. 걸프전쟁 때와 9·11 테러 때였다. 여기서 미국은 위기 상황 때 대통령 지지율이 치솟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으로 ‘평시’에 대통령 지지율이 80%를 넘은 경우는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한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국내적 모순들, 예를 들어 경제 상황이라든지 아니면 사회적 갈등 모두가 뒷전으로 밀려난다. 반대로 대통령 지지율은 올라간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지금 한반도 기류는 표면적으로만 봐서는 위기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위기가 사라진 상황이다. 북한 내부에서 일방적 핵포기 강요에 대한 반발 움직임도 있지만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며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고 있고, 6월 12일 미북정상회담 결과도 다수가 낙관한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외교가 한몫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것이리라.

이는 위기 때 지지율이 상승하는 미국의 경우와는 분명히 다른 현상이다. 미국은 위기라는 ‘현재적 상황’에 반응해 대통령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데 반해 우리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있다. 즉 미국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는 경우는 위기라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힘을 실어주는 측면이 강한 반면, 우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에 근거해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기 때문에 이성적 근거가 희박하다. 대신 주관적 측면이 지지율에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은 측면은 6월 12일 미북정상회담을 낙관하기에 이른 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분위기는 미북회담을 낙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또한 알 수 있다. 낙관이 어려운 근거로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이벤트 때 전문가들을 초대하지 않은 점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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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추론은 전문가들이 풍계리를 방문하면 북한의 핵전력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추정이다. 북한의 핵개발 수준이 미국에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론이 맞다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완전한 비핵화는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핵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가릴 것은 가리겠다’는 식으로 일을 진행하면 북한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를 간단히 표현하면 미국이 생각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다를 수 있으며, 미국은 ‘핵실험장의 검증’을 원하지만 북한은 ‘폭파 이벤트’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전문가를 배제한 상황에서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것은 증거 인멸과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핵실험장을 없애면 ‘과거 핵’에 대해서는 북한의 ‘진실한 고백’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섯 번 정도 핵실험을 하면 그 이후부터는 핵실험 없이 데이터로 시뮬레이션만 하면 되기 때문에 대부분 핵보유국은 다섯 번 정도 핵실험을 한다. 여섯 번이나 핵실험을 한 북한은 더더욱 추가 핵실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핵실험장을 비핵화라는 이름으로 폐쇄하는 것은 증거를 없애기 위한 꼼수라고도 볼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미국과 북한 사이에 관계 정상화 합의까지 간 적도 있다는 점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94년 이른바 제네바 합의 때다. 1993년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하며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이런 긴장된 분위기 속에 이뤄진 것이 바로 제네바 합의다. 당시 합의 내용에는 ‘북미 간의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며, 상호 간에 특사 파견 등을 진행한다. 또한 무역·경제장벽을 해소하도록 한다’와 ‘미국은 북한에 대한 공식적인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위협이나 핵무기를 통한 공격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약속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합의는 깨졌고 북한은 합의 이행 과정에서도 계속 핵개발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 같은 사태는 지금 미국과 북한 사이에 논의되고 있는 것들이 미북 간에 처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1992년 체결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비핵화를 위한 아주 구체적인 방안까지 포함하고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92년과 1994년 북한의 핵무기 수준과 지금의 핵무기 수준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핵무기를 완성하기 전에는 그나마 포기가 쉽지만 핵무기를 완성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에서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터다. 때문에 미북정상회담에 대한 낙관적 기대는 그야말로 막연한 기대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북핵 문제 해결을 자신의 재선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분위기가 진정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는 상황인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봐야 한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9호 (2018.05.23~05.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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