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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맥주 갈색 페트병 사라지나…68살 사이다의 초록색 옷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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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생벽 맥주, 무색으로 못 바꿔…결국 갈색 페트병 생산 중단
초록색의 상징 '칠성사이다'…자외선 차단 효과 등으로 신중히 검토
제품 안전 무시·밀어붙이기식 정책에 업계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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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정부가 오는 2020년까지 모든 음료수 페트병을 무색으로 바꾸기로 하자 관련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초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는게 정부 입장이었지만 사실상 이번 발표는 '권고'가 아닌 '강제'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재활용 비용을 추가부담하게 되고 브랜드 이미지 훼손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제품 자체의 안전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10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37차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폐비닐 수거거부 대란의 근본적 재발 방지를 위한 관계부처 합동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논의했다.

종합대책에는 2020년까지 모든 음료수 페트병을 무색으로 바꾸게 하고, 대형마트에서는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하며 커피전문점에선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부활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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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식음료ㆍ주류업체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맥주의 경우 품질유지를 위해 제한적으로 유색 페트병을 사용하되, 분담금 차등화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다른 재질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맥주 생산업체들은 업태를 모르는 재활용을 대책이라며 투명한 페트병으로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맥주 생산업체 관계자는 "페트병의 갈색은 햇빛 노출을 막아주고 재질 중 하나인 나일론은 외부에서 산소가 들어오지 못하고 안에서는 탄산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벽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투명으로 하거나 다른 재질로 바꿀 경우 빛과 산소가 유입돼 맛이 변하고 보관 자체를 할 수가 없다"면서 "환경부가 입장을 고수하면 결국 업체들은 페트 맥주 생산을 중단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유색 페트병에 대한 부담금을 높이게 되면 결국 제품 가격이 올라 소비자에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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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칠성음료의 칠성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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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수 역시 마찬가지. 대표적인 제품이 칠성사이다다. 1950년에 출시된 칠성사이다는 초록색 패키지가 상징이자 브랜드의 정체성이다. 투명으로 바뀌게 되면 수십 년간 쌓아온 제품 고유의 브랜드 정체성이 사라지게 될 수 있다. 더 문제는 제품의 안전성 여부다. 회사 관계자는 "초록색 페트병은 브랜드 상징성외에도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다"면서 "품질 안전에 이상이 없는지 충분히 검토한 후 무색 페트병 변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기업들 역시 품질 보장ㆍ 식품 안전 등의 이유를 들어 교체를 꺼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색 페트병을 쓰는 것은 제품 변질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 이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혼란스럽다"고 우려했다.

품질에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 무색으로 바꿀 경우의 대안도 제시되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품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투명 페트를 사용하고 병 전체를 감싸는 풀라벨을 사용하는 방법을 취하게 되면 기업의 비용 부담은 물론 라벨 쓰레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자만 압박하는 대책보다는 소비자들과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먼저이기 때문에 재활용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와 홍보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무색으로 바뀐 후 풀라벨이 적용됐음에도 만일 소비자가 이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고 버릴 경우 재활용 현장에서 일일이 손으로 제거 작업을 거쳐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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