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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출산 기사 뜨면… "사교육비·노후준비 해주나" 냉소가 주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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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2부-3] 지난 2년 출산 기사에 달린 댓글 460만건 빅데이터 분석

'저출산 큰일'이라는 걱정보다는 정부·기득권 탓하는 분노 표출

"결혼·출산에 대한 열망의 뒷면"

평범한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삶의 질 개선' 장기대책 세워야

저출산 문제는 관심이 높은 현안인 만큼,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댓글이 적게는 수백 개, 많게는 수천 개씩 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댓글을 보면 '저출산 정말 큰일'이라는 걱정보다는, 정부와 기득권을 탓하는 험악하고 살벌한 내용으로 넘쳐난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빅데이터 분석 업체인 '아르스 프락시아'에 의뢰해 지난 2년(2016.1~2018.1) 동안의 언론 기사(11만8349건)에 달린 댓글 459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저출산에 대한 걱정·우려보다는 분노·냉소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댓글에 '헬조선'·'노예' 난무

"헬조선에서 아이 낳아봐야 금수저 노예를 공급해주는 것밖에 더 되겠나요."

"저출산은 노동력 귀해지니 축복이죠. 싼값에 노예 충원해야 하는 기업과 정부는 재앙이겠지만…."

출산·육아와 관련한 기사의 댓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세금·증세(2만931건), 헬조선(8971건), 노예(8933건), 흙수저·금수저(4874건) 등이었다.

'헬조선'은 특히 '흙수저·금수저'와 '노예'란 두 가지 키워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헬조선'이란 단어가 나오면 '흙수저'·'금수저'가 뒤따라 나오거나 '노예'라는 단어로 끝맺음하는 식이었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헬조선에서 애를 낳기도 키우기도 힘들다'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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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을 만드는 조건으로 언급된 단어들은 '집값'(6278건), '노후 준비·국민연금'(2603건), '사교육비'(2395건), '취업난'(467건) 등이었다. 분석 업체는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출산은 너무나 큰 경제적 부담이고, 취업난으로 일자리도 없는 데다 자신의 노후 준비도 어렵기 때문에 자녀 출산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댓글이 많았다"고 했다. 저출산위 관계자는 "자녀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더 나아가 '노예'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면서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싶은데 여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의 분노와 냉소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연관어로 등장한 '세금'의 경우 출산·육아를 지원하는 수당이나 지원금이 제법 나오고 있지만, 결국은 증세(增稅)로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 정책에 회의를 나타내는 내용이 많았다.

◇"결혼·출산에 대한 열망 표출일 수도"

댓글은 논리적인 설명보다는 직관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가 출산·육아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나가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댓글이 많을까.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열망은 높은데, 곳곳에 있는 장애 요인 때문에 실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남녀 누구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만 한국 사회 곳곳에 이런 선택을 막는 장벽들이 있다"면서 "그런 장벽들을 넘어설 묘책이 없다 보니 실망과 분노가 댓글 형태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진 고려대 교수는 "기성세대의 조언에 따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취업은 어렵고 집값은 비싸지는 등 오히려 현실은 나빠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라며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 욕망이 청년들에게 분노와 억울함을 가중시킨다"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의 저출산 현상의 기저에는 분노가 자리 잡고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책 목표보다는 성난 감정부터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과거 스웨덴이 인구 감소 국면에서 단순한 출산 장려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다'면서 삶의 질을 개선해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다는 점을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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