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1 (토)

뺀질이 코미, 사기꾼 힐러리… 트럼프, 정적에 낙인 찍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초등수준 어휘지만 전달력 명쾌… 2년차 지지율 50%, 오바마보다 높아

정치인들 함께 진흙탕 빠질까 인신공격성 별명에 제대로 대응 못해

'뺀질이 코미(Slippery Comey)! 항상 끝이 안 좋고, 상태는 엉망인 이 자식은 역사상 최악의 연방수사국장으로 남을 것이다!' '역겨운 인간(Slimeball)!'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요일인 15일(현지 시각) 아침부터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대놓고 욕하는 트윗을 5건이나 올렸다. 러시아 대선 개입 수사에 대한 자신의 명령을 거부해 해임된 코미 전 국장이 이날 저녁 1년여 만에 처음 방송 출연할 것으로 예고되자 '코미의 말을 믿지 말라'며 맹폭한 것이다. 코미는 ABC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도덕적으로 대통령직에 맞지 않는다"며 "여자를 고깃덩이(성적 대상) 취급하는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그러나 코미의 '차분하고 논리적인 비판'은 트럼프의 '별명 폭탄' 선공(先攻)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적(政敵)이나 비판적인 언론 등에 대해 인신공격성 수식어와 별명을 반복 지칭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뉴욕타임스(NYT)를 언급할 때는 항상 '망해가는(failing)'을, 힐러리 클린턴엔 '사기꾼(crooked)'을 붙이는 식이다. 상대에 대해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트럼프식 '별명 정치'에 대해 미국 인식론자와 언어학자들은 "흑백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것으로 자칫 함께 진흙탕에 빠지기 때문에 반박하기가 힘들어 그대로 굳어지는 특징이 있다"며 "기성 정치인의 모호함과 위선을 싫어하는 대중에겐 확실한 각인 효과가 있다"고 평가한다.

현재 위키피디아(온라인 백과사전)에는 '트럼프가 지은 별명'이라는 항목이 따로 있을 정도다. 그 별명 리스트에는 미국 정치인 25명, 언론인 12명, 언론사 5곳, 외국 정상 5명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코미 전 FBI 국장의 별명이 5개로 가장 많다. '뺀질이'와 '더러운 인간'이 제일 빈번하게 사용되고, '흘리고 다니는(Leakin')''거짓말쟁이(Lying)' 등도 쓰인다. 트럼프가 러시아 대선 개입 수사에 얼마나 초조한지 드러내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는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부터 경쟁자였던 45세 마코 루비오 상원 의원을 '꼬마 마코(Little Marco)', 젭 부시 플로리다주지사는 '무기력 젭(Low Energy Jeb)', 테드 크루즈 상원 의원은 '거짓말쟁이 테드(Lyin' Ted)'라고 불렀다. 점잖은 엘리트 정치인들은 이런 어이없는 반칙에 대응도 제대로 못 했다. 초등학교 4학년(가디언), 6학년 이하(카네기멜론대) 수준의 어휘를 구사한다지만 그는 단순 명쾌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트럼프는 저학력 백인 남성들로부터 "딱 우리 수준"이라며 폭발적 지지를 얻었다.

본선에서 맞붙은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거짓말쟁이(Lyin')'와 '인정머리 없는(Heartless)'을 거쳐 '사기꾼 힐러리(Crooked Hillary)'가 됐다. '늙어 꼬부라진'이란 외모 비하의 의미도 있었다. 민주당의 유력 여성 정치인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 의원에 대해서도 '얼빠진' '뻐드렁니의'란 의미가 있는 'Goofy'란 형용사를 썼고,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임을 조롱해 '포카혼타스'라고도 했다.

트럼프는 진보 성향이 강한 주류 언론에 대해서도, 발행 부수가 줄었다는 이유로 '망해가는(Failing) 뉴욕타임스', 온라인 잡화점 아마존의 회장이 인수한 신문이라며 '아마존 워싱턴포스트', 클린턴을 옹호한다는 혐의로 CNN을 'Clinton News Network'라고 불렀다. 또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은 싸잡아 '가짜 뉴스(Fake news)' '아주 가짜 뉴스(Very Fake News)'이라는 식으로 불렀다.

트럼프의 무차별 공격이야말로 근거가 없고 팩트가 아닌 경우가 많다. 주류 언론들은 조목조목 '팩트 체크(사실 확인)'를 거쳐 트럼프의 거짓 주장을 꾸준하게 비판해왔다. 그러나 트럼프의 '악성 별명' 붙이기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미 몬머스대학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주요 방송과 신문이 자주 또는 가끔 가짜 뉴스를 보도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77%에 달했다. 거꾸로 주류 언론이 그렇게 비판해왔지만 트럼프의 지지율은 최근 계속 상승세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는 트럼프의 국정 운영 지지율이 취임 초기 수준인 40%로 나타났다고 15일 보도했다. 특히 이달 초 라스무센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50%를 기록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지난 3일 "사기꾼 오바마(Cheating Obama)도 임기 2년 차에 이런 지지율은 없었다지"라고 자랑했다.

[정시행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