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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재벌개혁 '양김' 시대, 삼성그룹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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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25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참여연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취지는 삼성그룹의 불법 로비자금을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참여연대는 이날 수사 촉구와 함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현 삼성전자 회장) 등 관계자 1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회견장에는 나란히 앉은 모습으로 주목 받던 두 사람이 있었다. 낭랑한 목소리로 삼성그룹의 불법 로비자금 실태를 읽어내려가던 김상조 당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고발장을 들어 보이며 취지를 설명하던 김기식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이다.

그리고 12년이 흐른 2018년 4월.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 이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돼서 말이다. 공정위와 금감원은 기업을 감시하는 대표적인 준사법기구다. 10여년 전 재벌의 부당함을 폭로하고 개선을 촉구했던 두 사람이 재벌을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칼자루를 직접 손에 쥔 셈이다. 공정위와 금감원의 업무가 단지 재벌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공통분모에서 재벌개혁을 빼놓을 순 없다. 바야흐로 ‘재벌개혁의 양김’ 시대가 왔다.

김기식 원장의 등장으로 금감원 권한 강화를 중심으로 한 금융감독체계 개편도 구체화 수순에 들어갔다. 감독권한이 강화된 금감원은 재벌개혁 과정에서 공정위의 든든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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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위 개탄” 김상조의 편지

다시 시계를 되돌려 김상조 위원장이 참여연대에 몸담고 있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2005년 7월 13일 김 위원장은 언론기고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썼다. ‘공정위와 금감위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라는 제목의 이 편지에서 김 위원장은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준사법기구인 공정위와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참여정부의 ‘개혁과 안정’이라는 취지 아래 개혁 공정위원장과 안정 금감위원장을 인선했지만 2년이 흐른 지금 이도 저도 아닌 게 됐다”며 “이럴 바엔 개혁이냐 안정이냐 중 하나를 택하라”고 덧붙였다.

참여정부 출범 후 공약으로 내세웠던 재벌개혁이 미진하자 김 위원장이 답답함을 토로했던 편지글이다. 이 편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현 상황이 2005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공정거래위원회에는 개혁성향의 위원장이 부임했다. 다름 아닌 김상조 위원장 본인이다. ‘삼성 저격수’로 불려온 김 위원장의 개혁성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금융위원회는 어떨까.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기재부와 금감원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전형적인 엘리트 경제관료다.

최 위원장의 ‘성향’에 대해서는 최근 시민사회의 평가를 보면 일정 부분 가늠해볼 수 있다. 2017년 12월 20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발족한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노동이사제 도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 금융감독체계 개편 등을 골자로 한 혁신안을 공개했다. 하지만 하루 뒤인 21일 최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노동이사제 도입과 과징금 부과 등이 어렵다는 취지를 밝혔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최 위원장이 조직논리를 앞세워 혁신안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며 “금융위 개혁부터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금융위는 “일부 사안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참여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최종구 위원장이 재벌개혁을 위한 김상조 위원장의 적합한 ‘파트너’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금융위원장을 개혁성향이 강한 인물로 교체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간단치 않은 문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는 관리·감독기구이기도 하지만 정책을 결정하고 금융산업을 진흥하는 일도 맡고 있다”며 “개혁성향의 위원장이 와서 관리·감독 쪽에 무게를 두면 분명 업무 균형이나 정책 일관성 부문에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교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극단적으로는 최 위원장을 “금융적폐”라고 비판하면서도 정부에 직접적으로 위원장 교체를 요구하고 나서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2016년 대선을 전후로 꾸준히 거론돼온 게 금융감독체계의 구조적인 개편 문제다. 여당이 제시한 개편안을 보면 금융위의 기능을 정책과 감독으로 나눈 뒤 감독기능을 금융감독원 내부의 가칭 ‘금융감독위원회’로 이관하는 게 주요 골자다. 금융위의 기존 정책기능은 기재부의 정책·금융부문과 합쳐 가칭 ‘금융부’로 신설·통합하는 것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도 대선공약에 이를 포함시켰고, 금융행정혁신위원회도 여당안을 거의 수용한 방안을 혁신안 최종 발표 당시 포함시켰다.

개편안대로라면 금감원의 권한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지금도 물론 감독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금융위의 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진다”는 자조가 흘러나온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금감원이 타부처 등과 관련 법령 제·개정 협의권이 없고, 심지어 규정 제·개정권도 없는 탓에 금융소비자 집단소송제, 배상명령제 등 중요한 정책들이 도입되지 못했다”며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감독기구 간 적절한 권한 배분 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시급한 선결과제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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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에게 얼마나 ‘힘’ 실어줄까

김기식 금감원장의 취임이 모두의 주목을 받는 이유도 현재보다는 미래의 금감원 위상을 내다본 것이다. 금융위의 감독권을 금감원이 가져오게 되면 특히 그간 ‘재벌들의 사금고’라는 비판까지 받아온 보험·카드업계에 대한 실질적인 감독권을 금감원이 쥐게 된다.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관련 법령 제·개정 협의권이나 규정 제·개정권 역시 금감원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높다. 하반기 도입이 확정된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의 감독권한 역시 금감원장이 갖기로 4월 3일 확정됐다. 현재까지 정부가 잠정 감독대상으로 분류한 금융그룹은 삼성·한화·교보생명·미래에셋·현대차·DB·롯데 등 7곳이다. 재벌 금융그룹의 자금 흐름을 통째로 금감원장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김상조 위원장이 과거 개탄했던 금감위에 개혁성향의 위원장이 부임한 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전망은 계획대로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완료됐을 때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다. 실제 개편이 완료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개편안대로라면 금융위는 사실상 해체수순을 밟게 되는데, 금융위의 경우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립된 별도 기관이라 해체하려면 국회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여당의 경우 개편하는 게 당론이라 문제가 없지만 야당이 문제다. 김 원장이 의정생활을 마치며 작성한 종합보고서인 <국회 정무위 제언> 중 ‘금융위원회’편을 보면 19대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금융정책과 감독을 분리하는 것 자체에 반대했고, 금감원의 위상도 현재처럼 금융위 산하로 두는 게 맞다고 주장해 여야 합의까지 이르지 못했다.

금융위가 개편안에 순순히 협조할지도 관건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정책과 감독 분리 문제에 대해 “아직 감독기구 개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김기식 원장이 취임 직후인 3일 최종구 위원장을 인사차 찾아가 면담했을 때도 1시간 이상 자리가 길어지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는 후문이다. 금융위가 밝힌 면담 내용에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최종구 위원장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가까워 금융권에서 이른바 ‘장하성 라인’으로 분류하는 인물이다. 반면 김 원장은 대선캠프 출신으로 여당 내 기반세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체계 개편과정에서 최 위원장과 김 원장이 갈등을 빚을 경우 자칫 문제가 청와대 내부 ‘파워게임’ 양상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을 분리한다는 것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므로 개편안은 실현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재벌개혁도 김상조·김기식의 투톱체제로 전환돼 보다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간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해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뚜렷한 성과가 없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김상조 위원장 혼자 뛴다’는 지적도 많았고, 김 위원장의 친정인 경제개혁연대조차 “정부 출범 첫해의 재벌개혁 이행점수는 0점”이라며 분발을 촉구했다.

김상조 위원장이 이끄는 공정위의 경우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방안 발표, 효성그룹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혐의에 대한 검찰 고발 등 점차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여기에 김기식 원장이 합류하면서 공정위가 직접 손댈 수 없었던 재벌들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문제나 보험업법 감독규정 개정 문제 등 재벌들의 ‘돈줄’을 직접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됐다.

재벌개혁 속도 낸다

급해진 건 삼성그룹이다. 삼성은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재벌개혁 요구에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삼성의 경우 순환출자 문제가 크게 걸려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공정위가 ‘쓴소리’를 하는 데도 일정 부분 한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나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으로 금감원이 감독권한을 갖게 되면 김기식 원장이 당장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설 공산이 크다.

보험사의 경우 보험업법에 따라 자회사의 채권이나 주식을 소유할 때 총자산의 3% 이하 금액만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경우 지난해 총자산이 250조원임을 감안하면 7조5000억원가량의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현재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8.23%)의 시가는 26조원에 달한다. 해당 규정이 생기기 전 취득한 주식에 대해서는 시가가 아닌 취득가로 보유규모를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외조항으로 혜택을 보는 건 삼성생명이 유일했기 때문에 ‘삼성을 위한 특권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원장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삼성이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자 같은 당 이종걸 의원 등과 함께 주식 평가기준을 취득가가 아닌 시가로 바꾸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20대 국회에도 같은 취지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소관위인 정무위에 접수된 상태다. 자유한국당이 이 법안에 부정적이어서 당장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순 없지만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 문제의 경우 정부의 보험업법 감독규정 개정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보험업법 감독규정을 개정할 수 있는 소관부처가 금융위원회지만, 향후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통해 금감원이 감독규정의 소관부처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김기식 원장이 감독규정 개정에 직접 나설 수 있게 된다. 규정 개정을 통해 기준이 바뀔 경우 삼성생명은 최단 1년부터 최장 7년 이내에 법적 주식 보유 허용한도를 초과하는 18조원가량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의무매각해야 할 삼성전자의 지분이 3.62% 규모로 줄기는 하지만 이 역시 매각대금이 11조원 규모로 작지 않다.

김상조 위원장이 지난해부터 밝혀온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을 차단하려는 움직임도 보다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재벌 총수 일가들은 기존 자사주를 활용해 회사를 인적분할하는 방법으로 손쉽게 그룹 지배력을 높여 왔고, 이 같은 방법이 재벌들의 불·편법 경영승계를 가져온다는 비판이 많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회사의 인적분할 시 자사주의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공정위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각 그룹의 지주회사를 들여다보며 각종 불·편법 행위를 조사하는 중이다. 김기식 원장 역시 자사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었다.

김 원장은 여당의 외곽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하던 2016년 6월 논평을 통해 “앞으로 10년간 재벌 3·4세로의 재산 및 경영권 승계가 거의 모든 재벌기업에서 이뤄질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사주가 지배력 강화를 위한 핵심 수단이 될 것”이라며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자사주가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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