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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화려한 삶 꿈꾸는 10대 소녀… ‘脫흙수저’ 향한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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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거위그 감독 ‘레이디 버드’

‘나는 왜 모델처럼 생기지 않은 거야? 왜 저런 2층 집에 살 수 없는 거지? 지긋지긋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태어나 보니 ‘흙수저’였다. 크리스틴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불만이다. 대도시가 아닌 농업 중심지 새크라멘토의 화장실이 하나뿐인 단층집에서, 조금의 여유도 없는 팍팍한 경제 사정을 매일 체감하며 산다.

모든 것을 바꾸고 싶은 크리스틴은 자신을 한 단어로 설명하는 그것, 이름부터 바꾼다. 레이디 버드. 그는 ‘레이디 버드’라는 예명을 짓고 친구, 선생님,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부르도록 한다. 예뻐지고 싶고, 멋진 집에 살고 싶고,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크리스틴은 종종 거짓말을 하고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만 죄책감은 없다. 오로지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이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상처받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크리스틴은 상상했던 도시생활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죄책감과 그리움에 휩싸인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그것들을 사실은 누구보다 사랑했음을 깨닫는다.

세계일보

영화 ‘레이디 버드(사진)’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싶은 소녀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크리스틴의 고민과 분노, 좌절, 성장은 10대를 지나온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릴 적 나는 무엇을 고민했었는지,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들은 무엇인지 되새겨보는 기회는 이 영화가 주는 선물이다.

으레 방황하는 10대의 ‘적’으로 등장하는 앞뒤 꽉 막힌 ‘꼰대’ 어른은 이 영화에 없다. 대신 자신의 일과 가족에 책임을 갖고 아이들을 믿는 어른을 그린다.

레이디버드는 우리말로 무당벌레다. 숙녀도 아니고 새도 아니다. 크리스틴이 자신의 이름을 ‘레이디 버드’로 지은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각본을 쓴 감독 자신도 “잘 모르겠다. 어릴 적 들었던 동요를 통해 내 무의식 속에 레이디 버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작지만 강렬한 색을 지닌 무당벌레와 닮았고, 빨리 숙녀가 되어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크리스틴에게 곱씹을수록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어톤먼트’(2007)에서 열연해 13세의 나이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됐던 시어셔 로넌이 발칙하지만 사랑스러운 크리스틴으로 완벽히 변신해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프란시스하’로 주목받은 배우 그레타 거위그의 첫 단독 연출작이다. 지난해 뉴욕타임스 ‘올해의 영화’로 선정됐으며 지난 1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다음달 5일 개봉.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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