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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기자수첩]박용만 회장이 탈원전 질문에 손사래 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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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지난해 말 일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게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박 회장은 "할 말은 많지만 노코멘트"라고 했다.

이해당사자가 언급하면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였다. 박 회장이 몸담은 두산그룹은 원전 핵심설비 사업자다. 그래서 더 답변을 듣고 싶었지만 그는 완곡하면서도 단호하게 손사래를 쳤다. 너털웃음을 짓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공사를 구분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자리에 올랐을 때 더 그렇다. 지위에서 파생되는 힘의 유혹을 뿌리치는 건 고통에 가깝다.

학급 반장, 동네 통장, 군대 분대장까지 한번이라도 완장을 차본 사람이라면 안다. 연초만 되면 사회 전체가 신독, 수신제가를 되새기지만 번번이 유력 인사의 직권남용, 공사불문 소식에 씁쓸해지는 까닭이다.

일부 전직 대통령들의 수난사나 '미투'의 피의자들도 물적·육체적 욕망을 이기지 못해 공사 구분에 실패한 사례다.

박 회장이 자신이 몸담은 기업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고 재계 단체장 입장에서 '노코멘트'라고 답한 게 신선하게 들린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재계 총수로는 거의 유일하게 언론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그는 공식석상에서도 말을 돌리지 않는 사람이다.

2년 전 박 회장이 '사람이 미래다'를 내세운 두산그룹의 회장직을 큰 조카에게 넘겨줬을 때 세상이 그리 놀라지 않았던 것도 그의 이런 품성에 익숙해진 탓이 아니었을까 싶다. 재계 서열 10위 안팎 그룹의 수장 자리를 누군들 탐내지 않을까. 그는 사적인 욕심의 선을 넘지 않았다.

"기득권을 내려놔야 기회가 열린다." 박 회장은 22일 대한상의 회장으로 재선출된 뒤 이렇게 밝혔다. 탐내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사람은 당당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3년 임기를 시작하는 그의 행보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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