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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中企 일자리 거들떠도 안 보니… 어쩔 수 없이 자동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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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특수금속 절삭·가공업체 D사. 992㎡(약 300평) 공장에선 사람 양팔 너비만 한 절삭(切削)기 두 대가 굉음을 내며 스테인리스강 기둥을 깎고 있었다. 측량부터 절삭까지 모두 기계가 알아서 해주는 완전 자동이다.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공장 직원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 공장은 2년 전 이 설비 도입 이후 10명이었던 현장 생산 인력을 6명으로 줄였다. 이 회사는 올 1월 일본에서 대당 5억원짜리 이 기계 2대를 추가 주문해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이 회사의 이모 대표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한 조치"라며 "자동화 기계를 도입해 공장 직원을 더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20일 서울 구로구의 특수강 가공업체 D사에서 한 직원이 자동화 기계 설비를 조작하고 있다. 일본에서 5억원에 들여온 이 기계는 사람이 간단한 조작만 해주면 알아서 작업해 생산 인력이 필요 없다. 이 회사는 최근 이 기계 2대를 추가 주문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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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주당 최대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에 대비해 중소 제조업체들이 공장 자동화를 서두르고 있다.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채용을 늘리는 대신 자동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정부는 근로시간을 줄이면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완전히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계가 대체하는 중소기업의 일자리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계량기 제조업체는 올해 신규 채용을 잠정 중단했다. 현재 직원 수가 290여 명인데 300명을 넘기면 오는 7월부터 근로시간 52시간 단축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300인 미만 업체는 2020년 1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된다. 이 업체의 신모 대표는 "공장 자동화 설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 전까지는 300인 미만을 유지해 현행 근로시간(68시간)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인들이 추가 채용보다 공장 자동화에 나서는 것은 중소기업계의 고질적인 구인난도 주요 원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월 발간한 중소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체의 60.3%가 경영의 최대 애로사항으로 취업 지원자가 없는 것을 꼽았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근로시간 단축이 시작되면 현장에서는 기존 부족분 10만여명을 포함해 44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부산광역시에 있는 3만3060㎡(약 1만 평) 규모의 B 주물공장은 10년간 공장 자동화를 추진해 350명 직원을 190명까지 줄였다. 자동화 기계를 들여놓는 데에만 100억원 가까운 돈이 들었다. 이 업체는 자동차와 냉장고용 주물을 생산해 월 4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아무리 자동화를 고도화해도 190명은 최소 인력"이라며 "3교대를 하려면 40~50명이 더 필요한데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도 줄어드는 마당에 사람들이 오겠느냐"고 말했다.

◇"납기 맞추려면 탄력근로 기간이라도 늘려야"

중소기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장기 파업 등으로 조업 중단을 했을 때 하도급 업체들이 받는 피해가 이전보다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기업들이 공장 가동을 재개하면서 중소기업에 부품을 한꺼번에 공급하라고 요구할 경우 지금까지는 전 직원이 밤샘 근무를 하면서 납품량과 기한을 맞췄지만 주 52시간 체제에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해 노조가 19차례 부분파업을 단행했고, 그때마다 현대차 협력업체들은 공장을 쉬었다가 밤샘과 휴일 근무로 간신히 납기를 맞추는 일을 반복했다. 경남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의 성모 대표는 "아무리 파업이 길어졌더라도 대기업은 납기를 칼같이 지킬 것을 요구하고 어길 때에는 페널티가 부과돼 다음 신차 부품 납품에서 제외된다"면서 "밤샘 근무를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대기업의 파업이나 조업 중단 등 돌발 사태를 고려해 현재 3개월 안에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를 맞춰야 하는 탄력근로 기간을 6개월이나 1년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노사(勞使)가 합의해 특정 시기의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시기 근로시간을 줄여 3개월의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근로시간 이내로 맞추는 제도다.

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제조업 현장에서 많이 듣는 소리가 탄력근로 기간 연장"이라며 "중소기업 생존을 위해 탄력근로 기간 연장을 정부와 정치권에 강력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형태 기자(shape@chosun.com);임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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