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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⑧] 김희상 "회담 성사,김정은 살길 열어준 치명적 실수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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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이 20일 서울 마포구 안보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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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20일 “북한의 핵·미사일은 명백히 적화 통일용”이라며 “북한 비핵화는 회담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며, 유일한 해결책은 한반도의 자유 통일 뿐”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이날 서울 마포구 안보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의 성사 자체가 김정은에게 경제적으로 살길을 열어준 치명적 실수가 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이사장은 “한반도 남측에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북한 체제에 가장 결정적이고 본질적인 위협”이라며 “북한으로서는 적화통일 외에는 항구적으로 체제를 유지할 길이 없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예술단 차원의 교류는 북한에 문화적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괜찮다”면서도 “하지만 북한 핵이 폐기되기 전까지는 1페니(penny), 쌀 한톨이라도 북한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이번의 한미 연합 훈련 축소는 아주 잘못된 것”이라며 “한국은 미국의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에 동참할 수 있는 대북 방송이나 대북 전단 살포도 많이 약화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주한 미군은 북한 핵미사일뿐 아니라 팽창주의적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한·미 동맹의 균열과 주한 미군 철수는 한국이 제2의 티베트가 되거나 김정은 밑에 귀속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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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이 20일 서울 마포구 안보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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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한미연합훈련 일정을 발표하면서 훈련 규모를 축소한게 아니라고 했다.

“명백하게 축소됐다. 훈련 기간만 줄어든 게 아니라 미국 전략 자산이 안 오지 않나. 북한은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오는 것에 굉장히 긴장한다. 김덕홍씨는 ‘북한은 왕조적 군사 독재체제고, 북한의 모든 정책은 체제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에 전략 자산이 오는 것은 최고수뇌부의 생존이 달린 큰 문제다. 핵 폐기 전까지 ‘최대압박’을 하기로 했는데 이를 안 하게 된 것 자체가 북한에 혜택을 준 셈이다. 대화 분위기가 시작되면서 북한은 이미 얻을 것을 많이 얻었다.
심지어 한국 국방장관이 먼저 미국 전략 자산이 안 와도 된다고 제안한 모양새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이 대북압박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의구심과 아쉬움을 갖고 있다. 한국에 와 있는 미국의 한 정보 당국자는 최근 한국산 철강 등에 대한 미국의 관세 부과같은 통상 압박조치도 그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말한다.
브루스 베넷(Bruce Bennett) 미국 랜드연구소 국제안보센터 선임연구원은 작년 11월 우리 연구소에서 ‘최대 압박’이 효과가 있으려면 가급적 많은 나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다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최대 압박에 동참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많은데도 하지 않는다고 섭섭해했다. 특히 한국이 동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는 대북 방송이나 대북전단 살포로 김정은 체제의 진실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주기는 것이다. 베넷 박사는 이것만 해도 굉장한 압박이 되는데 그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대북방송이 ‘최대 압박’의 중요한 수단이었다는 말인가.

“우리는 대북방송 효과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초기에 북한은 대북 전광판 방송을 꺼달라며 우리에게 엄청 매달렸다. 전광판만 끄면 뭐든 다 하겠다는 식이었다.
전선의 북한 병사들은 우리 최신 팝송이나 현대 문화 뿐 아니라 2002년 월드컵, 일기예보도 우리 전광판을 통해서 봤다.
당시 (청와대 국방보좌관이었던) 나를 포함해 많은 당국자들이 전광판을 끄는 데 반대했다. 나는 ‘북한은 항상 저들 마음대로 도발을 감행했다가 우리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서 저들이 불리해지면, 저들은 또다시 방식을 바꾸자고 하고 우리는 또 쉽게 그에 응해주곤 해 왔다. 전단 살포든 휴전선에서의 방송이든 전력사정이 좋을 때 북한이 먼저 시작했던 대결 방식이었다. 그러니 만약 이번에 전광판 방송을 그만두자는데 동의해 주면 다음엔 북한이 NLL을 문제 삼고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다음해 전광판 방송은 사라졌고 북한은 정말로 NLL을 문제 삼고 나왔다. 대북 방송, 대북 전단은 우리가 군사적이 아닌 방법으로 공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최근 대북방송 약화도 북한의 부담을 줄여줬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북 정상회담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나.

“미국이 정상회담에 대해 정말로 기대를 품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이 저렇게까지 자신 있게 추진하니 한번 지켜보자’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전문가들도 성공 가능성에 부정적이다.
한반도 전문가 마이클 그린은 최근 국내의 한 매체에 미․북 정상 회담의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는 회담이 불발될 가능성을 40%, 내용 없는 만남이 될 가능성을 40%, 실질적 해결 없이 돌파구를 찾은 척만 하고 말 가능성, 즉 한국에게는 가장 위험한 결과일 수밖에 없는 가능성을 18%로 봤고 실제 비핵화 성과를 거둘 가능성은 단 2%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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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5일 평양의 북한 노동당 본부 진달래관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하고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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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특사단이 방북 후 발표한 6개 합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부분 특별한 의미가 없다. 5항을 보면 북한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상 무의미하다. CNN도 보도했지만, 북한은 평창올림픽 기간 중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발전시켰다. 북한은 계속 이렇게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핵심은 3항이다. 북한은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는데, 여기서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라는 것은 결국 한미 동맹을 해체하고 주한 미군은 나가라는 얘기다.
우리가 북한 핵미사일에 대처하는데 주한 미군이상의 방법이 없지만 , 중국 ‘시황제’의 위협에 대처하는데에도 한미동맹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 멀리 있지만, 중국은 압록강 건너 바로 붙어 있다. 주한미군이 있기 때문에 미·중간 전략적 균형이 유지된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나가면 한반도는 자연스럽게 중국의 배타적 영향권 아래 들어간다. 그러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속에 이루어온 한국의 자유와 평화 번영은 더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안보적 위성국이 되거나 제2의 티베트, 심지어는 김정은 밑에 던져질지도 모른다.
북한은 체제안전을 보장해 줄 것도 요구했다. 그런데 오늘날 북한의 체제위기가 미국의 위협 때문인가. 아니다. 북한 체제 자체 모순 때문이다. 이를 북한도 잘 알고 있다. 1992년 남북 고위급 군사 회담 때, 김영철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한이 체제안전을 보장해달라는 것은 전혀 가당찮은 요구다.”

-그 김영철이 이번에 북한 특사단으로 왔다.

“1992년 남북 고위급회담 때 만났을 때 김영철은 1성 장군이었다. 회담의 기술을 알고 배포도 있고,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그는 북한의 직간접적인 도발과 침략으로 적화 통일을 이뤄내는 행동 대장, 적화 통일을 구상하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정부에서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 논란이 있었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연어급 잠수정은 북한 해군 소속이 아니고, 그런 작전은 북한 해군의 정규 작전이 아니다. 김영철이 책임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자기 스스로도 ‘아니다’는 말을 안 했다. 반발을 예상하고서도 왜 무리해서 보냈겠나. 김영철이 아니면 안 될 일, 한국에 와서 할 일이 있었을 것이다.”

-북한을 다녀온 특사단은 북측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본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수많은 국민들이 굶어 죽는 가운데 핵을 만들었다. 전 세계가 핵을 만들면 혼내줄 거라고 겁주는 중에도 핵을 만들었다. 이제 완성 단계에 들어섰는데 쉽게 폐기하겠나. 현재 북한에게 핵미사일은 북한 체제 정통성의 방증이자 권위의 상징이고 대외교섭력의 기저다. 북한 헌법에까지 기술해놓지 않았나.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핵만 폐기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 ’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의 사정에 정통한 고위당국자가 ‘북한은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노 전 대통령이 ‘어허’하고 언성을 높이며 ‘온 세계가 북핵을 문제 삼고 있고 대한민국도 세계 속의 대한민국인데 북한이 핵을 만들고 있으면 도와주고 싶어도 절대 도와줄 수 없다. 핵만 폐기하면 발벗고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뜻인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김정일은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고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한반도에 6·25 같은 전쟁이 터졌을 때 미군 개입을 핵으로 막겠다고 생각해 핵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적화통일을 위해 핵을 개발했다는 뜻이다.
북한이 2006년 핵실험을 했을 때 우리 언론은 북한이 미국과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 협상 카드로 핵실험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당시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이라고 자타공인했던 김명철 조미평화센터 소장이 ‘적화통일의 원동력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자신도 작년 9월 6차 핵실험 이후 핵·미사일은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만능열쇠라고 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북한으로서는 적화통일 외에는 항구적으로 체제를 유지할 길이 없다. 한반도 남측에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북한 체제에 가장 본질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주민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경제를 살리려면 체제를 바꾸고 개방해야 한다. 개방하지 않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개방을 하면 체제가 흔들리게 된다.
이런 사실은 김정일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북한 당국자가 김정일에게 ‘중국처럼 개방해야 산다’고 하니 김정일이 ‘박사 선생, 동구라파도 개방했지만 지도자가 살아남은 나라가 어디 있나’라고 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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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이 20일 서울 마포구 안보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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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방법은 없나.

“이미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차례 회담을 했지만 실패했다. 햇볕정책도 6자회담도 다 실패했다. 이 문제의 최고 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연구원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스라엘처럼 폭격하든지, 김정은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든지 둘 중 하나뿐이고 그 이외에는 백약이 무효라고 했다. 전략적 인내로는 북한이 겁먹을 리가 없다. 북한은 항상 불리하면 대화에 나왔고 해결되면 돌아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미북 정상 회담은 시기 상조’라고 한다.

“북핵 문제는 근본적으로 회담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또 미국 쪽 정보 당국자들은 미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굉장히 낮게 보고 있다. 트럼프가 평양을 가겠나, 아니면 김정은이 워싱턴을 오겠나. 버시바우 전 대사도 VOA와의 대담에서 가능성 자체를 낮게 봤다.”

-회담 성사는 긍정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핵만 완벽하게 없앤다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 이미 핵을 만들 수 있는 기술, 시설들이 있으니 당장 비핵화를 한다 하더라도 북한 체제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생겼다. 언제든 다시 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핵 시설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세상에서 제일 정보 활동하기 어려운 건 북한’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이 1990년대 말 평안북도 금창리에 대형 지하시설이 있고 핵 시설로 추정된다는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실사 조사 결과 이미 시설을 다 치운 것인지 핵 시설은 없었다. 2000년 남북 국방 장관 회담 당시 차석 대표로 참여하면서 만난 인민무력부장 김일철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뭐 하는 거냐. 대신에 우리가 챙길 건 좀 챙겼다’이렇게 말하더라. 불확실한 핵 시설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북한에 뭔가를 내줬던 것이다. 북한 핵이 폐기되기 전까지는 1달러, 1페니, 쌀 한톨이라도 들어가면 안 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우려되는 부분도 너무 많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이 정상 회담을 하고 싶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을 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한 것도, 녹음파일을 전달한 것도 아니지 않나. ‘김정은이 이렇게 말하더라’고 전한 것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정의용 실장에게 미북 회담 계획을 직접 발표하게 한 것은 (배려라기보다는) 만약 잘못될 경우 우리 정부가 책임지라는 뜻이 담겨 있다. 또 김정은 약속에는 체제보장, 군사적 위협 제거 같은 전제조건들이 달렸다. 그런데 우리 대표단이 백악관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는 이 전제 조건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만약 미북회담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은 속기만 하는 ‘국제적 바보’가 될 것이고, 회담이 이뤄져도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와 다르다’고 확인하면 오히려 (군사적) 우발 사태가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도 최근 VOA(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미북 회담이 실패하면 한미 관계에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지금 이뤄지는 대화가 과거 실수를 답습한다고 보나.

“1990년 북한과 고위급 회담을 했을 때 북측 대표단에 환송 만찬을 해준 적 있다. 그때 북측에서 온 대표단 중 한명이 ‘우리가 통일하면 내가 김 선생을 봐줄 테니, 남측이 통일하면 김 선생이 우리를 봐달라’고 한 적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통일이 멀지 않았구나, 조금만 더 가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2002년도에 한국으로 넘어온 탈북자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랬다. 이 탈북자는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 체제가 등장했던 1994년쯤 지방 출장을 가면 길거리에 굶어 죽은 시체가 즐비했다. 제때 치우지도 못했다’고 했다. 당시 김정일이 김일성을 죽였다는 의구심이 돌아서 정국을 장악할 수 없었고 행정 체제까지 마비돼 있었다고 했다. 탈북자들은 ‘남조선이 그때 단호하게 했으면 김정일·김정은 독재 체제가 출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체제가 흔들리다가 남쪽에서 돈이 들어와서 살았다고 했다.
당시 DJ 정부의 햇볕정책을 두고 국제 사회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김정일이 왼발을 내주면 왼발 닦아주고, 오른발 내면 오른발 닦아주는 것 아니냐는 조롱 섞인 얘기도 있었다. 나도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상 하나가 5000만 생명보다 더 중요하냐. 햇볕정책이 북한 김정일 체제를 살려내고 핵 개발까지 가능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회담도 김정은에게 한번 더 살 길을 열어주게 된 것은 틀림없다. 다시 북한의 도발이 이어질 수도 있고, 핵 개발을 중단했다가도 다시 만들어낼 수도 있는데 결국 우리가 이번에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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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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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한을 타격하는 ‘코피작전’ 얘기가 있었다. 최근 대화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군사 옵션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보나.

“가장 걱정되는 상황은 미북 회담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다. 만약 회담이 실패하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대화파로 알려진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경질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강경파로 알려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차기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것도 그 징조일지 모른다. 미국은 작년에 이미 군사적 준비를 다 끝내 놓았다고 한다. 전쟁 시뮬레이션(War Game)도 수없이 했을 것이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민간인 희생, 한국 피해가 작도록 하는 여러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듯 하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한국에 피해 없이 전쟁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전쟁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나름대로 자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국민들은 군사적 조치를 두려워 한다.

“미국과 북한이 전쟁 맞상대가 될 수 있나. 미국이 일방적으로 때리는 형태가 될 것이다. 6·25같은 전쟁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이 핵으로 보복할 가능성이 있지만 예방도 가능하고, 혹시 아니더라도 핵으로 보복하면 자신들도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못한다.
북한 장사정포가 날아올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6·25때처럼 건물이 초가집도 아니고, 건물 유리창 깨질 정도의 화력이다. 북한 장사정포는 콘크리트벽도 못 부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 때문에 벌벌 떤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웬만한 북한 위협은 지하철 안에만 들어가도 피할 수 있다.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할 뿐이다. 지나치게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어선 안된다. ”

-북한과 대화 국면에 들어서는 와중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도 변했다.

“미국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평창 올림픽 전에는 미국이 북한에 선제타격을 언급했고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북측 인사들을 초청하면서 북한에 시간을 벌어줬다. 그 사이에 ‘시황제’ ‘현대판 차르’라고 불릴 정도로 중국 시진핑이 장기집권을 하게 됐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임기 6년의 대통령에 다시 당선됐다. 이들은 분명 한반도 안보에 개입하고 싶어한다. 이제는 세컨더리 보이콧도 그렇고 미국이 과감한 조치를 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정상회담 이야기가 나오면서 북한은 시간을 또 벌었다. 게다가 분위기가 대화 국면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시황제와 차르의 탄생과 함께 갑작스럽게 조성된 대화국면으로 북한에 좋은 조건이 갑자기 만들어졌다. 지금 와서 미국이 군사 조치를 한다면 마치 침략자처럼 보일 것이다. 김정은은 운인지, 북한이 엄청 많은 것을 얻었다.”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이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당면한 위협은 북한의 핵·미사일이지만 큰 차원에서 보면 중국은 그보다 더 위협적이다. 미국은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 이래 ‘세계 각국이 주권을 갖고 있고 모든 주권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장군도 한국 상관을 똑같이 상관으로 예우한다. 그런데 중국은 다르다. 중화사상의 국제질서는 중국이 가장 상위에 있고 나머지는 밑으로 생각하는 종적 질서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그것을 이 시점에 현실로 되살리겠다는 뜻이다. 중국 역대 지도자들이 다 그랬지만 시진핑은 한반도에 대해 특히 그런 생각이 강하다.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옛날에 한국이 중국땅이었다’고 말한 것도 화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 시진핑 주석은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도 한국의 사드 배치를 이야기하면서 ‘중국의 안보이익에 배치되니 철회해달라’고 말한 적 있다. 사드는 방어무기라는 것을 다 아는데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한국을 자기 땅으로 생각하는 방증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수 있나.

“완벽한 해결방법은 자유 통일밖에 없다. 지난 2003년 당시 미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이었던 존 볼턴이 느닷없이 내 사무실을 찾았다. 볼턴 전 차관은 ‘중국이 나서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겠느냐’고 나에게 얘기했다. 북한이 핵을 만들면 한국과 일본은 물론 대만까지 핵을 만들겠다고 나설 테니 중국이 막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이렇게 미국은 중국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나도 그때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답했다. 우선 중국은 한국, 일본, 대만이 핵을 만들지 못할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중국은 북한이 핵 국가로 존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볼턴 전 차관은 ‘실은 나도 같은 생각인데 워싱턴에는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고 나에게 반문했는데 ‘한반도 자유 통일 말고는 길이 없다’고 말해줬다. 북한 핵 문제 흐름도를 그려주며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볼턴 전 차관은 2015년부터 북한 핵 문제는 한반도 자유 통일을 통해 푸는 길밖에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볼턴 뿐 아니라 2007년 아미티지 전 국무차관이, 작년 3월 윈스턴 로드 전 미 국무부 차관보 등 세계적 전문가들이 보고서 등을 통해 자유통일만이 북핵문제 해법이라는 인식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제는 과거 미국과는 달리 직접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강도 높은 제재 압박을 통해 이번에 그 기회가 왔다. 활용하기에 따라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또 북한 정권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어서 더욱 아쉽고 화가 난다.”

-한반도 위기 상황과 별개로 우리 군은 병력을 감축하고 있다.

“통일은 궁극적으로 군사 통합으로 매듭지어진다. 독일도 그랬다. 우리도 우리 군대가 북한 군대를 장악할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가 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정화 작전이고, 안정화 작전에 성공하려면 민간인 100명당 20명의 군인이 필요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런 식으로만 계산해도 우리는 48만명의 현역 군인이 필요하며, 브루스 베넷 연구원은 통일에 대비하려면 잘 훈련된 동원예비군을 포함해 150만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평화적인 통일일수록 더욱 강하고 효율적인 군대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군은 미흡하고 아쉬운 점이 많다. 재래식 전력은 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병력 수(數)가 갖는 의미가 크다. 첨단 무기로 전력 효율을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다. 또 핵전력과 재래식 전력처럼 차원이 다른 전력이 아니라면, 질적인 우세가 양적인 압도를 극복할 수 없다. 이는 군사상 일종의 공리(公理)다. 북한은 핵은 물론이고 GPS나 사이버 무기도 자랑하고 있지 않나. 작년 6월 미 국토안보부와 FBI가 ‘히든 코브라(hidden cobra)’로 알려진 북한 해킹그룹의 사이버 활동에 대해 경보를 발령했듯 북한의 사이버전(戰) 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지상군만 감축한다고 하지만 지상군이 넉넉하게 있지도 않은데다가, 전후방의 해공군도 답답해하는 상황이다. 전선에서 병력 문제로 골치를 썩힌지도 이미 오래다. 복합도발의 주 전력이 될 20만 북한 특수부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조마조마하다. 유사시 통일 전역에서 지상군 소요가 폭증할 것이다. 북한 급변사태가 원만한 통일로 이어지려면 중국 등 외부 세력이 간섭하기 전에 북한 사회를 단기간에 안정시키고 통합을 기정사실화하는 안정화 작전이 성패를 가름한다. 독일 통일 당시 서독 병력은 46만9000명으로 동독 병력 13만7000명의 4배에 달했다. 그런데 우리는 2022년까지 북한 병력 128만명의 41%인 52만명으로, 특히 지상군은 39만명으로 감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과연 원만한 통일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브루스 베넷 박사는 작년 10월 한국 지상군의 감축 규모가 이미 한계를 넘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나도 중국의 병력지원 없이는 통일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군이 개입하면 통일 뒤에 그들이 쉽게 물러가겠는가. 베넷 박사는 제 2의 휴전선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티베트화의 출발점이 될지 모른다.”

-자주 국방을 해야한다며 연합사 해체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이 우리 대통령을 예방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자주국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럼즈펠드 전 장관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전 세계 어떤 국가도 혼자 싸울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말하더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은 홀로 싸우지 못하고 동맹과 함께 싸운다는 취지였다.
나 혼자, 내 국방을 모두 책임지겠다는 것은 ‘독자국방’이다. 자주국방은 국방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자주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협력안보, 집단안보가 일반화된 시대에 독자국방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원천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반면 ‘동맹’은 현대 세계 각국이 활용하는 자주국방의 효율적 수단 중 하나다. 연합사 체제는 그 중에서도 효율성이 가장 뛰어난 체제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방연구원 국방관련 세미나에서 ‘자주국방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협력적 자주국방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한 적 있는데,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 용어를 공식화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자주국방이라는 말을 내세워 한미 동맹을 흔들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 것 같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 육사 24기 출신인 김 이사장은 수도군단장, 국방대학교 총장 등 군 주요보직을 역임했다. 미국 랜드(RAND)연구소, 중국사회과학원(CASS),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일본 방위연구소(NIDS)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는 국방비서관으로, 노무현 정부 때는 국방보좌관을 역임했다.

[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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