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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김정은, 이번에는 트럼프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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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북한 비핵화, 'CVID' 아닌 '비핵지대 조약'으로

개인이든, 국가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정의 주체는 타자이다.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특사단에게 "대화 상대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고 말한 데에는 북한의 오랜 좌절과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실패한 '인정 투쟁'에서 큰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북미 관계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정은에겐 미국 정상과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크다. 국내외 많은 언론들이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김정은의 외교적 승리"로 표현하는 까닭이다.

시선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돌려보자. 그에게 김정은과 만남은 무엇을 의미할까? 만남 자체가 그의 위신을 세워줄 수는 없다.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더구나 김정은은 미국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외국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미국 언론들은 북미 정상회담을 "트럼프의 도박"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두 정상에게 만남의 의미는 크게 다르다. 김정은에겐 만남 자체로도 자신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지만, 트럼프에겐 만나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가 중요하다. 결과에 대한 평가는 다른 합의들과의 비교를 통해 나올 것이다.

비핵화 합의는 가능한가?

먼저 떠올릴 수 있는 합의는 1994년 북미 간의 제네바 합의와 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이다. 이것들을 "실패한 합의"라고 혹평해온 트럼프는 당연히 더 강력한 합의를 원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하나의 중대한 비교 대상은 트럼프가 "최악의 합의"라고 비난해온 이란 핵협정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나기 전인 5월 12일에 이란 핵협정에 사망 선고를 내릴 공산이 크다. 이는 곧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이란 핵협정보다 더 강력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이어질 것이다.

만약 이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대다수 미국 언론들과 전문가들이 혹평을 쏟아내면 트럼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언론이 자신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가짜 뉴스'를 유포하고 있다며 자신의 합의는 훌륭한 것이라고 강변할까?

김정은과의 만남을 중매한 문재인 정부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혹시 그 책임을 김정은에게 묻겠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가능성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트럼프가 망신을 당했다고 여기면 '거대한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 북핵 합의들보다, 그리고 이란 핵협정보다 더 강력한 합의가 나올 수 있을까? 현재로선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트럼프 행정부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원칙적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CVID를 거부했던 북한이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마저 선언한 상태에서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김정은이 "선대의 유훈"이라고 말했다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한미일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창의적이고 담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파국을 피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

현실적으로 4월 말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예비회담'으로써의 성격이 짙다. 문재인 정부가 두 정상 회담 사이에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건은 단연 비핵화 문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관련국들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 파국을 면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반도 핵 문제 해법에 대한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남북한이 지대 내 당사국들로 이 조약을 체결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공식적인 핵보유국들도 자신들의 의무 사항을 명시하면서 서명 당사국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이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합의가 과거와는 달라야 하고 또 강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비핵지대 조약 체결은 과거에 한 번도 추진된 바 없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기할 수 있고 북한의 핵포기 약속에 국제법적 구속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 합의들보다 더 강력하다.

또 비핵지대 조약을 체결하면 미국 등 핵보유국들이 남북한에 안전보장을 해야 하고 핵무기 반입이나 일시 통과도 금지된다는 점에서 북한이 주장해온 "조선반도 비핵화"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물론 북한과 미국이 비핵지대 조약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은 자신의 핵 포기 약속에 국제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것에, 미국은 자신의 핵 기득권에 일부 제약을 가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비핵지대 조약이 필요하고 또한 가능할 수 있다. 미국은 전자의 매력 때문에, 북한은 후자의 이유 때문에 관심을 가질 법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요한 점도 있다. 앞선 글에서 다룬 것처럼, 오늘날 강대국들은 제2의 핵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심한 군비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앞선 글 보기 : 트럼프-김정은 만남의 끝은 전쟁일까, 평화일까)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은 이러한 신냉전의 부정적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냉전을 기우로 만드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다. 또한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은 일본의 참여 동기도 환기시켜 동북아 비핵지대로 확대시킬 수 있는 이정표도 세우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을 문제 해결의 원칙과 목표로 삼아 정상외교에 나설 필요가 있다. 북한 및 미국과의 정상급 양자 협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한반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기로 했다'는 정상 간의 합의가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위 글은 <내일신문> 3월 19일 자 기고를 보완한 것입니다.

기자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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