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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자동차·반도체로 번질라, 통상 적극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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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WTO 제소 검토” 왜

청와대 “안보와 통상은 따로 가야”

대북정책 공조하며 통상 해결 숙제

양국 소통 부재 결과란 지적 나와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고 GM 군산공장 폐쇄에 따른 대책과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한 대응을 주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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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을 놓고 미국과의 공조를 강조해 온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통상 분야에선 ‘국익 최우선’을 지시했다.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미국발 통상 압박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를 검토하라면서다. 이날 오전 11시쯤 산업통상자원부가 미국의 한국산 철강 규제를 WTO에 제소할지 여부에 대해 “제소 방침을 결정한 바 없다”는 입장문을 낸 지 3시간 만의 강수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안보 논리와 통상 논리는 다르고, 서로 달리 궤도를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남북 접촉 이후 북·미 대화 문제가 굴러가고 있더라도 이는 통상과 따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로서는 안보와 통상의 분리 대응이 불가피하다. ‘일자리 정부’를 최우선 과제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야권과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인상 등을 시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만 개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통상보복 조치에 수세적으로 대응할 경우 일자리 정부의 기치가 위협받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통상 압박 도미노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철강·알루미늄 등을 겨냥한 보복 관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자동차까지 통상 압박이 확산될 수 있어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철강에서 전례가 만들어지면 향후 자동차·반도체 등 주력 업종으로 줄줄이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발 통상 압력이 구체화할 경우 곧 있을 6월 지방선거를 포함해 국내 정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여야 정치권은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조치 이후 태스크포스(TF)를 만드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한국 등 12개국의 철강 제품에 최대 53%의 관세를 부과하는 미 상무부의 제안이 현실화될 경우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트럼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통상 충돌은 예견돼 왔다. 지난해 6월 워싱턴에서의 첫 한·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나 철강의 무역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다. 한국에 중국의 철강 덤핑 수출을 허용하지 말아 달라고 촉구했다”고 공개했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문 대통령이 해당 물량은 (대미) 수출의 2%에 불과하다는 수치를 제시하고 이해를 구했다. 지난 8일 방한했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에겐 미 정부가 한국산 세탁기 등을 겨냥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한 데 대해 ‘이를 풀어 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통상과 안보를 분리하는 지침을 내놨지만 한·미 간에는 대북정책을 놓고 긴밀한 공조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동시에 통상 분야에선 힘싸움을 벌여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북한을 겨냥해 ‘최고의 압박’을 내건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남북 정상회담의 순기능을 설득하면서 통상 분야에선 한국의 국익을 관철시켜야 하는 이중의 숙제가 문재인 정부 2년차에 주어진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미국발 통상 압박이 한·미 간 소통 부재의 결과물이란 지적도 나온다. 민감한 통상 이슈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채 양국 정상이 공개적·구체적으로 거론하게 된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전후한 대북 유화 국면에서 누적된 ‘불편함’이 통상 불협화음으로 나타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미국과 중국에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정부는 지난해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이후 경제보복을 한 데 대해서는 WTO 제소 방침을 세웠지만 제소를 철회했다. 반면 지난달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직후에는 즉각 제소 방침을 세웠고, 다음달 실제 제소가 이뤄진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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