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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논설위원이 간다] 내달부터 ‘코딩’ 정규 수업 … 대치동엔 벌써 학원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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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규 교과 편성을 계기로

학원가에 새로운 시장 생겨나

“초등 17시간, 중학 34시간으로는

제대로 된 코딩 교육 불가능” 지적

교육부·학교 미온적 태도 속에

학원에 학생 몰리는 부작용 우려

이상언의 사회탐구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간다 2/19


다음달에 새 학년이 시작하면 컴퓨터 소프트웨어(SW)의 구성 원리와 기초적 제작 기능을 배우는 ‘코딩’을 학교에서 정규 교과로 가르치게 된다. 3년 전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교육이라며 내놓은 계획에 따른 일이다. 올해는 우선 중학교에서 정규 수업이 이뤄지고, 내년에는 초등학교로 확대된다.

그런데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코딩 수업을 하는 중학교는 전체의 약 40%(서울은 46%)다. 절반 이상이 수업 시작을 내년으로 미뤘다. 아직 준비가 충분치 않다는 게 주요 이유다. 이처럼 공교육이 머뭇거리는 동안 학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비롯한 학원 밀집 지역에는 코딩 학원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공교육의 ‘1패 추가’가 예견되는 코딩 교육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코딩은 컴퓨터가 일하는 순서를 정하는 일이에요. 집으로 치면 설계도를 만드는 것에 해당합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죠. 누구나 코딩을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세상이 왔어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코딩학원 원장 C씨는 코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리모컨을 눌러 대형 모니터의 전원을 켰다. 이 학원의 수업 과정을 설명하는 도표가 그 위로 펼쳐졌다. 지난 14일 초등생 학부모인 척하고 상담 받을 때의 상황이다.

이 학원 강좌는 수강생 수준에 따라 크게 3개로 나뉘어 있고, 전체 레벨은 14단계로 구성돼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원장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고 이 동네에서 초등생을 상대로 개별 수업을 하다 지난달에 학원을 차렸다고 했다. 원장실엔 그가 경시대회에서 입상시킨 ‘제자’들의 상장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기초반 수강료는 4주에 25만원이었다. 수업은 1주일에 한 번, 110분간 진행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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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원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코딩 학원의 상담실장은 대뜸 “그냥 기초 교육만 시키려는 건가요? 정보 올림피아드는 아니고요?”라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기초 교육은 앱(애플리케이션) 만드는 것 정도까지만 배운다고 보면 되고요, 올림피아드 나가려면 C언어는 기본으로 해야 해요.” 정보 올림피아드의 ‘효능’에 대해 묻자 “대학 입시 때 경시대회 입상 이력은 적지 못하게 돼 있지만 자기소개서에는 이런저런 활동 열심히 했다고 쓸 수 있어요. 코딩 잘하는 학생들 별도로 뽑는 대학도 있고요.” 40대 여성인 상담실장은 ‘학부모라면서 어떻게 이렇게 아는 게 없나’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학원 홍보 책자를 건네면서 “학생을 한 번 데려와 보세요”라고 말했다.

대치동에는 인터넷을 통해 홍보하는 코딩학원이 15개가 있다. 2년 전에 문을 열었다는 한 학원 원장 말에 따르면 서너 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최근 1년 새 생겨났다. 대개는 상가 건물의 한편에 강의실 네댓 개를 만들어 운영하는 형태인데, 두 달 전에 들어선 한 학원은 빌딩의 두 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현재 코딩학원은 서울 강남 일대에 30개 안팎, 서울 전체에는 50개가량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수강생들은 통상 초등 저학년생부터 중학생까지다. 수업은 일반적으로 한 주에 한 번이고, 수강료는 경시대회 준비반이 아닌 일반 기초반인 경우 한 달에 20만원대다. 수업은 주말에 많이 진행된다. 주 중에는 학생들이 다른 학원 수업 때문에 바빠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프렌차이즈형 학원들이 속속 생겨났고, 코딩학원을 차릴 사람을 모으는 사업설명회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처럼 사교육 시장에서는 코딩 교육이 새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학교의 정규 교과에 코딩이 포함된 게 결정적 계기다. 당장 올해부터 중학교에서 수업이 시작된다.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5·6학년생도 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받는다. 학원들은 부모의 선행학습 욕심과 공교육 불신을 파고든다. 이에 대해 코딩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부 융합교육팀의 정윤경 팀장은 “학생들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능을 익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적 사고 체계를 이해하고 습득하게 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사교육이 필요 없는 과정이다.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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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편성된 코딩 수업은 총 34시간이다. 1주일에 한 차례씩 45분짜리 수업을 두 학기만 들으면 된다. 학원 수업으로 환산하면 서너 달 분량이다. 초급 수준 벗어나기도 어려운 시간이다. 초등학교 수업 시간은 그 절반인 17시간이다. 5·6학년 동안 한 달에 한 번꼴로 40분짜리 수업을 듣는 셈이다. 초등학교에선 학급 담임교사가 실과 교과 시간의 일부를 활용해 코딩 수업을 하게 된다.

컴퓨터공학 전공자인 서정연 서강대 부총장은 “교육부가 코딩 정규 교육을 실제로는 하지 않으면서 하는 것처럼 눈속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7시간, 34시간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교육이다. 아마도 교육부의 업무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우리도 이제 미국·영국처럼 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오도(誤導)다.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 해도 정규 교육이라고 칭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 부총장은 “코딩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최소한 초등학교 3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1주일에 한 시간씩은 배워야 한다. 영국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코딩 공부를 시킨다. 영국 정부는 교사 양성과 교육 방법 개발 등을 위해 2014년부터 5년간 우리 돈으로 9조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왜 한국 학교의 코딩 수업은 이처럼 ‘무늬만 정규 교육’이라는 비판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3년 전 정부의 코딩 교육 의무화 작업에 참여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에는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미래부와 학계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1주일에 한 시간은 수업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교육부에서 교원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계속 언급했다. 결국 청와대의 조정으로 이 정도의 수업 시간이나마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부의 소트트웨어교육 태스크포스(TF)에 참여했던 김현철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도 교육부의 의지 부족을 지적했다. “교육부 관리들은 회의 때마다 교육과정에 넣을 틈이 없다, 기술·가정 수업을 줄여야 하는데 담당 교사들이 달려와 멱살을 잡을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에 배정된 시간 중에서 34시간을 빼냈다. 교육부에서 그것이 최대치라고 했다. ‘교과 이기주의’가 미래로 가는 아이들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한국 컴퓨터교육학회장을 맡은 김 교수의 말이다.

버락 오바마·빌 게이츠·스티브 잡스 등이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외친 코딩 교육이 이제 한국 학교에서도 실시된다. 그런데 정부와 학교는 마지못해 따라가는 형국이고, 학원들은 재빨리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 가서 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상식을 제공하는, 공교육 실패 전통은 여전히 굳건하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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