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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墨香 반세기, 경주에서 꽃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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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독도` (21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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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아트센터 1층에 들어서자마자 폭 7m가 넘는 압도적인 수묵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눈 덮인 불국사를 그린 '효설(曉雪)'이다. 대담한 먹선과 채색이 경주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박대성,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 전은 화법과 소재, 규모 등에서 근래에 보기 드문 위용을 자랑하는 한국화 전시였다.

3월 4일까지 가나아트센터의 1호 전속작가인 박대성(74)의 개인전이 열린다. 2015년 경주솔거미술관 개관전 이후 3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소감을 박 화백은 "남달리 별난 삶이었다. 시대의 아픔을 한 몸에 겪고 나름대로 헤쳐오면서 한번도 붓을 놓지 않았는데 벌써 74세가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박대성은 18세부터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무학의 화가다. 그럼에도 겸재 정선, 소정 변관식, 청전 이상범의 실경산수 계보를 잇는 한국화 거장으로 꼽힌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여의고 자신의 왼쪽 팔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묵화부터 고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연습을 거듭하는 고행의 길을 걸으며 반세기 화업을 이어왔다. 묵향 반세기를 결산하는 전시의 주요 작품이 경주의 능과, 절, 자연을 담은 건 경주가 그를 불렀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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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에게 현대미술 메카가 어디냐 물었더니 뉴욕이랍디다. 영어도 못하면서 무작정 떠나서 소호(SOHO)에 1년을 살았지요. 거기서 그림을 본 교수가 잉크와 브러시가 뭐냐고 묻더라구요. 여긴 필묵(筆墨)도 모르는구나 싶어 짐을 싸서 불국사로 와서 내리 1년간 그림만 그렸죠. 그렇게 경주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지금도 경주에서 살면서 그림을 그린다. 윤범모 미술평론가와 7~8년 히말라야 원시마을을 여행했는데, 그곳에서 세상과 자연과 인생에 대한 자신의 오랜 질문의 답을 찾았다. 이때 어디서 살까 생각하다 부산, 남해 등을 떠돌다 정착한 곳이 경주다. 그는 "옛 유물도 많고 역사가 짙은 곳이어서가 아닐까. 밤마다 혼령이 나를 부른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글씨에 놀라는 이들도 있을 듯 싶다. 갑골문자부터, 행서, 해서, 초서를 넘나들며 서예가라 해도 믿을 만큼 글씨를 많이 썼다. 그는 "실크로드에서 만난 상형문자를 많이 스케치했다. 이 그림이 글씨의 원형이 아닐까 싶었다. 서화가 아니라 화서인 거다. 화가 먼저였다"고 말했다.

독특한 원근법으로 표현한 금강산, 독도, 황소 등을 보고 있노라니, 기획자가 '수묵'과 '모더니즘'이란 이질적인 단어에서 접점을 찾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3층 전시장에선 성철스님의 법의가 그려져 있었다. 법의 배경엔 흰 글자가 빼곡했다. 먹으로 글씨의 테두리를 그려 쓴 독특한 화법이다.

그는 "성철스님을 생각하며, 글을 한 획 한 획 그렸다"고 했다.

글과 그림, 수묵화와 채색화까지 실험을 이어가는 그가 최종적으로 향하는 화업의 경지는 어디일까.

"서양미술이 오늘 발전한 건 아프리카의 원시미술을 수입한 덕분이었죠. 우리도 민화를 봐야 합니다. 여기 해답이 있어요. 여백의 미를 가지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그려야죠. 서양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제 우리 것도 좋아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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