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4 (토)

가짜뉴스와 팩트체크, 과연 누구 힘이 더 셀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⑥ 가짜뉴스


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28일(현지시각) 한 인터뷰에서 “트위터는 가짜뉴스로부터 나를 방어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을 갈무리한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는 과거 어느 선거 때보다도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가짜뉴스는 특히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그야말로 순식간에 확산됐다고 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온라인상의 허위사실 공표·비방으로 분류한 가짜뉴스가 18대 대선의 여섯배에 달할 정도로 극성을 부리다 보니 각 후보와 정당도 가짜뉴스 차단에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민주당은 2만여 명으로 구성된 국민특보단을 꾸려 가짜뉴스 대응에 나섰고, 국민의당은 팩트안팩트라는 이름의 후보 팩트체크 센터를 운영했습니다. 자유한국당도 당 공식 누리집에 팩트체크 코너를 설치했습니다.

가짜뉴스가 주요 이슈가 된 건 한국만이 아닙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시엔엔>(CNN)이나 <뉴욕 타임스>를 상대로 “가짜뉴스”라며 정면으로 들이받았고, 거꾸로 많은 사람들은 가짜뉴스 덕에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며 분개합니다. 프랑스와 독일도 선거를 치르면서 가짜뉴스의 심각성에 점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선거일 앞두고 가짜뉴스 더 널리 퍼져

미국에서 가짜뉴스 개념을 널리 알린 데는 온라인 뉴스사이트 버즈피드의 선임기자 크레이그 실버먼의 역할이 컸습니다. 실버먼은 지난 미국 대선에서 진짜뉴스와 가짜뉴스 상위 20개가 각각 페이스북을 통해 얼마나 확산됐는지를 시점별로 추적했습니다. (‘가짜 선거뉴스가 진짜뉴스를 페이스북에서 압도’ <버즈피드>, https://goo.gl/C8z2Mt) [그림1]을 보면 선거일(2016년 11월8일)에서 꽤 떨어진 8월 이전에는 진짜뉴스가 가짜뉴스에 비해 서너배 이상 확산됐지만, 8월부터 선거일까지 기간에는 가짜뉴스에 대한 반응(공유, 댓글, ‘좋아요’ 누르기 등)이 급등해 오히려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더 널리 퍼졌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가짜뉴스는 단지 널리 퍼지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만들었다는 보고도 많았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미국 대선 직전 수행한 조사에 의하면, 많은 유권자들이 가짜뉴스를 접했고(10~22%), 이 중에서 이를 사실로 믿는 비중도 높았습니다(64~84%). 고려대 미디어학과 민영 교수 등의 연구에 의하면(‘가짜뉴스 효과의 조건’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https://goo.gl/kmwmk4), 한국 유권자들도 지난 대선에서 가짜뉴스에 많이 노출됐고(22~45%), 그중에서 사실로 받아들인 비중도 상당히 높았습니다(70~88%). 정체불명의 사이트에서 나온 “교황, 트럼프 지지선언”, “힐러리, ISIS에 무기 팔아 테러에 사용”, “문재인 부친 인민군 출신”, “안철수 회사 투표지 분류기 만들어” 등 제목만으로도 신뢰가 떨어지는 기사들이었는데도, 이들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더 위력을 떨쳤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가짜뉴스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앞선 조사 결과들에 문제제기를 하는 내용인데요. 뉴욕대와 스탠퍼드대의 경제학자 헌트 올콧 교수와 매슈 젠츠코 교수는 국민들의 기억에 의존한 설문조사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확인해봤습니다. (‘2016년 대선의 소셜 미디어와 가짜 뉴스’ <저널 오브 이코노믹 퍼스펙티브>, https://goo.gl/yKsrB2) 이를 위해 두 사람은 실제 유통됐던 가짜뉴스(‘진짜’ 가짜뉴스)뿐 아니라 실제로는 전혀 유통되지 않았던 가짜뉴스(‘가짜’ 가짜뉴스)를 만들어 응답자들을 상대로 본 기억이 있는지, 믿었던 기억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가 [그림2]에 나타나 있습니다. 전체 응답자 중에서 ‘실제로 유통됐던 가짜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고 답변한 비율과 최종적으로 믿기까지 했다고 답변한 비율은 각각 15.3%와 7.9%로, 비록 진짜뉴스보다는 낮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수치였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실제로는 유통되지 않았던 가짜뉴스’를 보거나 믿었다고 기억한 비율도 각각 14.1%와 8.3%로,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이를 통해 가짜뉴스에 대한 응답자들의 기억이 상당히 과장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가짜뉴스의 확산은 언론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저하, 정치적 양극화 심화 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니만큼, 이에 대한 치유 방법을 놓고서도 진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가짜정보를 접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줘 가짜뉴스의 위력을 줄이려는 시도입니다. 지난 대선 때 <한겨레>를 비롯한 주요 신문과 방송은 본격적인 팩트체크에 나섰고, 이런 움직임은 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팩트체크의 효과는 얼마나 될까요?

팩트체크의 역풍효과?

다트머스대학과 영국 엑서터대학의 정치학자 브렌던 나이핸과 제이슨 라이플러는 팩트체크가 별 효과가 없고 심지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사실 교정이 실패하는 경우’ <폴리티컬 비헤이비어>, https://goo.gl/YciqMb) 두 사람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험을 막기 위해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가짜뉴스)를 보여준 뒤, 이 중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당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보고서 내용을 알려줬습니다(팩트체크). 그리고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이 보고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효과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랐습니다. 애초 이라크전쟁에 더 회의적이었던 진보 성향 사람들의 경우, 예상대로 팩트체크를 통해 가짜뉴스를 신뢰하는 비율이 낮아졌지만(18%→3%), 보수 성향 사람들한테서는 반대로 가짜뉴스를 신뢰하는 비율이 오히려 높아졌습니다(32%→64%). 이외에 ‘세율 인하가 세수를 더 늘린다는 주장’(가짜뉴스)과 오히려 ‘세수가 대폭 줄어들었다는 사실’(팩트체크)을 놓고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나이핸과 라이플러는 이를 ‘팩트체크의 역풍효과’라고 명명했는데, 이것이 미국인들에게 던진 충격은 대단히 커서 ‘탈진실(post-truth) 사회’가 도래했다는 탄식이 넘쳐났습니다. 이후 역풍효과에 대한 연구가 점차 축적됐습니다. 오하이오주립대와 조지워싱턴대의 정치학자 토머스 우드와 이선 포터는 최근 1만명이 넘는 실험자를 모아서 주요 이슈 52개에 대해 매우 방대한 ‘가짜뉴스-팩트체크-역풍효과의 관계’ 규명에 나섰습니다. (‘찾기 어려운 역풍효과’ <폴리티컬 비헤이비어>, https://goo.gl/BomvT4) 이들에 따르면,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든 간에 팩트체크는 대체로 가짜뉴스의 영향력을 줄이며, 팩트체크의 역풍이 일어나는 경우는 설령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19대 대선 ‘가짜뉴스’ 2만여 건 극성
미 대선에서 진짜뉴스와 가짜뉴스의
페이스북 통한 확산과정 추적해보니
선거일 다가올수록 가짜뉴스가 ‘압도’

가짜뉴스의 ‘심각성’ 목소리 높지만
응답자의 기억 과장됐다는 연구도
팩트체크가 가짜뉴스 지지도 낮춰
언론의 신뢰 위기가 근본적 원인


이처럼 팩트체크의 역풍효과를 두고 엇갈리는 결과가 나오는 와중에, 주요 논자인 위 네 명은 한 팀을 이루어 정치적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하고 역풍의 가능성도 커지는 미국 대선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험을 해봤습니다. (‘사실 교정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워킹페이퍼>, https://goo.gl/pEKQiT)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미국의 범죄율이 치솟아 거의 재앙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공격한 바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통계에 의하면, 미국 범죄율은 1991년부터 2015년 사이에 절반 수준으로 대폭 하락했습니다. 실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됐습니다. 범죄율에 대한 트럼프의 메시지(가짜뉴스)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그중 일부에게는 연방수사국의 실제 범죄통계(팩트체크)를 제시했습니다. 나아가서 또 다른 일부에게는 트럼프 선거운동 책임자였던 폴 매너포트가 연방수사국을 신뢰할 수 없다면서 이 통계를 일축하는 메시지(팩트체크의 부정)까지 추가로 제시했습니다. 물론 가짜뉴스만 보여준 그룹도 당연히 존재했죠.

그 결과를 요약한 것이 [그림3]입니다. 그림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트럼프 지지자와 클린턴 지지자 두 그룹 모두에서 팩트체크가 가짜뉴스에 대한 지지도를 낮췄습니다. 또 추가적으로 팩트체크를 부정하는 메시지 역시 가짜뉴스를 ‘구출’해내는 데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언론 신뢰도 낮은 편

너무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짜뉴스 확산의 가장 큰 자양분은 기존 언론의 신뢰 위기입니다. 장기간에 걸친 공영방송의 공정성 하락, 끊이지 않는 ‘기레기 논쟁’ 등을 고려할 때 우리는 가짜뉴스 확산에 대해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제 비교를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뉴스 신뢰도 국제 비교에 의하면, 한국은 조사 대상 28개국 중 그리스와 더불어 최하위였고(<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 글로벌 여론조사 기관인 퓨 리서치의 미디어 만족도 조사에서도 37개 대상국 중 그리스 다음으로 뒤에서 둘째였습니다(<글로벌 애티튜드 프로젝트> 2017). 이뿐 아닙니다. [그림4]에서 보듯이 전문 언론기관(기존 언론사, 온라인 언론사 등) 신뢰도와, 내용의 질을 확인하기 어려운 플랫폼(에스엔에스 및 각종 검색 서비스 등) 신뢰도 사이의 격차도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낮은 편입니다. (<에덜먼 트러스트 바로미터>, https://goo.gl/GK6db9)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가짜뉴스 논란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고 지금도 양상이 급변하고 있는 영역이어서, 아직 확고한 정설이 자리잡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음 몇가지는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짜뉴스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팩트체크를 통한 교정도 제한적이고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렇지만 아직 선거 또는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만큼 거대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 지금이라도 가짜뉴스의 발호를 막기 위해서는 신뢰를 상실한 언론인들의 반성과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등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눈 크게 뜨고 함께해주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