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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차라리 아무것도 안했으면…" 불통 교육부에 학부모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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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영어수업 금지·수능정책 오락가락…혼란만 키웠다

매일경제

교육부가 논란이 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정책 시행을 전면 보류했다. 최종 개선안은 1년 뒤인 내년 초에 내놓기로 했다. 대신 고액 영어 사교육 단속을 강화하고 영어 공교육의 내실을 강화하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학부모들과 현장의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발표한 지 3주 만에 또다시 '1년 유예' 카드를 꺼내들자 '날림 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설익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혼선만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앞서 가상화폐 규제 정책도 '폐쇄다' '아니다'로 오락가락을 반복한 데다 주요 정책들마다 유관 부처 간 엇박자를 내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여론이 팽배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16일 교육부 관계자는 "국민의 우려와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여 유아 등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영어 사교육과 불법 관행 개선에 주력하고 유치원 방과후 과정 운영 기준은 내년 초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결정을 1년 유예한 셈이다.

그러나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은 고수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의 유치원 영어 교육에 대한 '지양' 원칙은 수십 년간 이어져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학부모, 전문가 등 의견을 두루 수렴해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부모들과 교육계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말장난을 하는 것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작년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을 발표한 뒤 국민의 반발에 결정을 1년 유예했던 일을 거론하며 "국민을 기만한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한 학부모는 "금지를 하긴 할 건데 당장은 아니고 1년 뒤에 하겠다는 얘기 아니냐"며 "여론이 좋지 않으니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속셈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다른 학부모 역시 "수능 제도 개편 때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똑같다"며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미룬 것을 모를 줄 아느냐.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선거로 심판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부는 우선 '부작용 해소'를 위해 유아를 대상으로 한 고액 영어 사교육을 강력히 단속하고 제재를 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학부모들과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단속과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영어수업 금지'라는 기조를 유지하는 한 사교육으로의 '풍선 효과'는 당연한 결과라는 게 주된 반응이다.

실제로 자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방과후 영어수업을 듣고 있는 학부모 대다수는 영어수업을 금지하면 별도의 영어 사교육을 진행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어교육 전문기업 윤선생이 지난 5~10일 자녀를 유치원(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부모 41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영어수업이 금지될 경우 영어 정규 과정인 초등학교 3학년 이전까지 별도의 영어 사교육을 진행할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88.9%가 '있다'고 응답했다.

교육계 전문가들도 교육부의 지속되는 '날림 정책'에 우려를 표시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를 발표하기에 앞서 영어 사교육 규제 방안과 초·중·고교 영어교육 개선 방안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어야 한다"며 "종합적인 검토 없이 설익은 정책을 쏟아내다 보니 정부 정책 발표 이후 100만원이 넘는,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이 판을 치는 혼란이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무작정 정책을 발표하고 반대에 부딪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하면 현 정부의 교육 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성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뜨거운 감자인 '가상화폐' 정책에 대해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또 다른 주인공은 법무부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일 최근 '투기 논란'이 일고 있는 가상화폐를 사실상 도박으로 규정하고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발표 직후 가상화폐 가격은 폭락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를 반대하는 글이 쇄도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곧장 "사전 조율된 발언이 아니다"고 표명했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부 부처 간 엇박자 속에 혼란이 이어지자 가상화폐 가격은 크게 출렁였고, 가상화폐 투자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이게 벌써 몇 번째냐"며 정부 정책에 불만을 터트리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김효혜 기자 / 송광섭 기자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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